항목 ID | GC06700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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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府 |
영어공식명칭 | Samcheokb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조선 초기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개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3년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이라 하여 그때까지의 삼척군을 삼척부로 읍격을 승격시켰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척시는 조선태조이성계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우선 삼척시는 이성계의 고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와 그의 부친 이양무(李陽茂)[?~1231]가 전주에서 이주해 와 살던 곳이다. 이안사는 고려 때인 1236년(고종 23) 겨울 또는 1237년(고종 24) 봄부터 1253년(고종 40) 겨울 또는 1254년(고종 41) 봄까지 약 17년 동안 삼척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척시는 목조비(穆祖妃) 효공왕후(孝恭王后) 이씨의 외외향(外外鄕)이었다. 즉 삼척시는 효공왕후 모친인 돌산군부인(突山郡夫人) 정씨의 외조 김인궤(金仁軌)의 본관이었다. 여기다가 삼척시는 목조이안사의 부모, 즉 이양무 부부가 사망하여 장사를 지낸 곳이었다. 지금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에 있는 준경묘(濬慶墓)는 목조 부친 이양무의 묘이고, 미로면 영경로 270에 있는 영경묘(永慶墓)는 목조 모친 돌산군부인 정씨의 묘이다. 이처럼 삼척시는 조선의 건국을 잉태한 곳이라 해도 지나치지 아닐 정도로 조선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태조이성계는 1393년(태조 2) 삼척 지역이 목조이안사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三陟郡)에서 삼척부(三陟府)로 읍격을 승격시켰다. 이와 함께 목조의 외가 후손에게 홍서대(紅犀帶)를 하사하였다. 이처럼 삼척 지역은 합리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실과의 특별한 인연에 의하여 군(郡)에서 부(府)로 승격되었다.
[관련 기록]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를 비롯한 삼척 지역 읍지에는 1393년에 삼척 지역이 목조의 외향이라 하여 삼척부로 승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척주선생안』에는 1393년에 삼척 지역이 목조비 효공왕후 이씨의 외외향이라 하여 부사(府使)로 승격시키고 홍서대, 모자, 의복을 하사하였다고 하였다.·
[내용]
1393년 삼척군에서 삼척부로 읍격이 승격된 후 어떤 관등의 지방관이 파견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척주선생안』에 따르면 지군사(知郡事) 대신 부사가 파견되었다. 이와 함께 파견되는 지방관의 품계도 높아졌다. 1393년 당시 삼척군 지군사이던 이제(李堤)는 삼척부로 승격될 때 정4품 봉정대부(奉正大夫)에서 종3품 중직대부(中直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이후 삼척부로 존재하던 시기에 임명된 부사의 품계를 보면 종2품인 가선대부(嘉善大夫)가 6명,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가 3명,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가 1명, 종3품인 중훈대부(中訓大夫)가 3명이었다.
[변천]
삼척부는 1413년(태종 13) 지방 제도가 개혁될 때 다시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의의와 평가]
1393년 삼척군에서 삼척부로의 승격은 인구 수나 면적 등 합리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실과의 특별한 인연에 따라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