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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유호의 유고 시문집. 1857년(철종 8)에 유호(柳灝)[1576~1646]의 글들을 모아서 6대손인 유진호(柳震浩)가 간행하였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의 저본은 1857년 목활자로 간행된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4권 1책이며,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뇌천집(磊川集)이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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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원 출신 양성지의 시문집.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자는 순부(純夫)이고 호는 눌재(訥齋) 또는 송파(松坡)라고도 한다.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정조가 1791년에 각신 서영보로 하여금 유고를 모아 정유자로 간행하게 하였다. 《초간본》 저자의 시문은 원래 주의(奏議) 10권·가집(家集) 6권이 있었다고 하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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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학자 김지백의 유고 시문집. 남원에서 태어난 김지백(金之白)[1623~1670]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평생 명리를 구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한 인물로, 사부일기류인 『유두류산기(遊頭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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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황위(黃暐)[1605~1664]의 유고 시문집. 황위는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한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후손이다. 사마(司馬) 문과(文科)를 거쳐 기성서윤(箕城庶尹)에 이르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원에서 창의한 지사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남원 풍계사(楓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역대 충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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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삭녕최씨(朔寧崔氏) 5인의 시문 합철집. 『대방세고(帶方世稿)』는 최익효(崔翊孝)가 최상중의 『미능재집(未能齋集)』과 최연의 『성만집(星灣集)』, 최온의 『폄재집(砭齋集)』, 최휘지의 『오주집(鰲洲集)』, 최유지의 『간호집(艮湖集)』 등 남원에 세거한 최씨 일가의 시문집을 합철하여 편차한 것이다. 최연과 최온은 최상중의 아들이며, 최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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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 간행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인 변사정의 유고 시문집. 변사정(邊士貞)[1529~1596]은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83년(선조 16)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병 2천 여 명을 사살하고, 그 공으로 1595년 첨정(僉正)으로 승진되었으나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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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의 학자 김인식의 유고 시문집. 김인식(金仁植)[1864~1939]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흥(士興), 호는 독수재(篤守齋), 초명(初名)은 복경(復經)이다. 김성진(金聲辰)의 후손으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독수재유고(篤守齋遺稿)』는 1958년 김인식의 손자 김영기(金永基)가 발문을 붙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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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최시옹의 유고 시문집. 최시옹(崔是翁)[1646~1730]의 자는 한신(漢臣), 호는 동강(東岡)이다.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의 후손으로 임실(현재의 남원시) 출신이다. 최시옹의 사후 1백여 년이 지난 1858년경, 후학들이 공의 유고를 모아 서유훈(徐有薰)의 서(序)를 붙여 간행하였다. 전남대학교 도서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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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순의 유고 시문집. 이이순(李以恂)[1567~?]의 자는 희지(熙之), 호는 동림(東林)이며, 활계(活溪) 이대유(李大유)의 아들이다. 『동림유고』는 이대유의 문집인 『활계유고(活溪遺稿)』 뒤에 합철되어 있다. 『동림유고』는 김상현(金尙鉉)·이교영(李喬榮)의 발(跋)을 붙여 1940년 부친 이대유의 문집 뒤에 합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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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용징의 유고 시문집. 이용징(李龍徵)[1650~1726]의 자는 성오(聖五), 호는 득우정(得寓亭)이며,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득우정선생실기(得寓亭先生實記)』는 이용징의 시문을 모아 3권 1책으로 간행한 책으로, 『득우정선생가고(得寓亭先生家稿)』와 합철되어 있다. 언제 간행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3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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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오명후의 유고 시문집. 오명후(吳命厚)[1682~1752]의 자는 중여(重汝), 호는 만오(晩悟)이며, 이수항(李壽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암군수와 양산군수 등을 지냈으며, 남원으로 낙향한 뒤로는 학문에 전념하며,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지냈다고 한다. 『만오공문집(晩悟公文集)』은 오명후의 6대손인 오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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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인물인 서현하의 유고 시문집. 서현하(徐顯夏)[1772~1823]가 생전에 남긴 글을 모아서 후손 서병관(徐炳琯)이 1980년 간행하였다. 서현하는 남원시 사매면 오류동 출신이다. 조선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980년 석판본으로 간행된 전남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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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염의 시문집. 정염(丁焰)[1524~1609]은 임진왜란과 정여립의 난 등 조선이 위기에 봉착했던 시기에 변함없는 우국충정을 보여 준 인물이다. 『만헌집(晩軒集)』에는 나라와 시대를 근심하고 최선의 대안을 찾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잘 나타나 있다. 『만헌집』의 편찬 과정이나 발간 연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본서의 저본은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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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에 간행된 조선 후기 학자인 양달교의 유고 시문집. 양달교(梁達敎)[1794~1876]는 남원 출신으로 자는 경회(警誨), 호는 면재(勉齋)이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후손인 양병하(梁炳夏)가 이응진(李應辰)·정상현(丁常鉉)의 서(序)와 이풍호(李豊鎬)의 발(跋)을 붙여 1900년경 목판본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계명대학교 도서관과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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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양주익의 시문집과 행록(行錄)을 엮은 책. 『무극집(无極集)』은 남원 출신으로 문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양주익(梁周翊)[1722~1802]의 필사본 시문집 16권 8책과 그의 행록을 기록한 『무극선생행록(无極先生行錄)』 1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필사 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 본서의 저본은 1929년에 후사(後寫)된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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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양처제의 유고 시문집. 양처제(梁處濟)[1643~1716]의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묵재(黙齋)이다. 함양(咸陽)에서 출생하여 남원으로 이거한 후 주로 남원에서 활동하였다. 9세손 양재윤(梁在允)이 책머리에 기노장(奇老章)의 서문을, 끝에 자신의 발문과 「동간록(同刊錄)」을 수록하여 1959년에 간행하였다. 계명대학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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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오도형의 유고 시문집. 남원에서 주로 활동한 오도형(吳道炯)의 시문집으로, 유진찬(兪鎭贊)의 서(序)와 후손 오석용(吳錫容)·오민수(吳民銖)의 발(跋)을 붙여 1941년 간행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941년 목활자로 간행된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2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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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시인 이창회의 유고 시집. 이창회(李昌會)의 자는 성규(聖揆), 호는 문봉(文峯)이며, 관향은 광주(廣州)이다. 남원에서 태어났는데, 시(詩)로 이름이 높았다. 김종가(金鍾嘉)의 서(序)와 이승래(李昇來)의 발(跋)을 붙여 1974년 석판본 1책으로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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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간행된 일제강점기의 학자인 이연회의 유고 시문집. 이연회(李淵會)[1867~1939]의 자는 내실, 호는 물재(勿齋)이다. 남원 출신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77년 권용현(權龍鉉)의 서(序)를 붙여 석판본 5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과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의 저본은 석판본으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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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선의 유고 시문집. 김선(金宣)[1564~1614]의 자는 성시(聖始), 호는 백졸(百拙)·최락당(最樂堂)이며,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졸집(百拙集)』은 김선의 손자들인 김익환(金益煥)·김익래(金益來)·김태기(金兌淇)가 편집하여 1882년(고종 19)에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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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동형(朴東衡)[1749~1808]의 유고 시문집. 박동형은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학문에만 정진했던 학자이다.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贈職)을 받았다. 1966년 6세손인 박환준(朴煥俊)이 김윤동(金潤東)의 서(序)와 박중식(朴仲植)의 발(跋)을 붙여 석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국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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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장경세의 유고 시문집. 남원 출신 유학자인 장경세(張經世)[1547~1615]의 자는 겸선(兼善), 호는 사촌(沙村)이다. 경사백가에 두루 통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당시 덕행과 문명이 높았던 노진(盧禛)·김복흥(金復興)·양사형(楊士衡)·최상중(崔尙重) 등과 교유하였다. 1806년(순조 6)에 7대손 장윤(張玧)이 유고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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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무인 조경남의 유고 시문집. 조경남(趙慶男)[1570~1641]은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남원 지방에서 창의하여 학행과 절의로 이름을 떨친 의병장이다. 자는 선술(善述), 호는 산서(山西)·산서병옹(山西病翁)·산서처사·주몽당주인(晝夢堂主人)이며,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당시를 기록한 『난중잡록(亂中雜錄)』을 남기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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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유학자인 안경각의 유고 시문집. 안경각(安景珏)[1790~1846]의 자는 여형(汝珩), 호는 산암(山庵)이며, 관향은 광주(廣州)이다. 남원 출신으로, 학행으로 이름이 높다. 노병인(盧秉仁)의 서(序)와 증손 안용원(安容遠)의 발(跋)을 붙여 1897년(광무1) 2권 1책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계명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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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간행된 조선 말기 학자인 김재홍의 문집. 김재홍(金在洪)의 자는 윤범(允範), 호는 영송(嶺松)이다. 남원시 송동면 영촌마을에서 출생하여, 연재(淵齋)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산야문답(山野問答)』은 김재홍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을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1970년대에 신연활자본 1책으로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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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희석의 유고 시문집. 이희석(李熙奭)[1820~1883]의 자는 주보(周輔), 호는 서초(瑞樵)이며, 쌍유(雙柳)에서 출생하여 남원으로 옮겨 와 살았다. ‘서초’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생 명리를 구하지 않고 담박한 삶을 살았으나, 1862년에 올린 「삼정책(三政策)」과 1866년에 올린 만동묘 철거 반대 상소에서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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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이문재의 시문집. 이문재(李文載)[1615~1689]는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1648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사직서(社稷署)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평생 학문에 힘을 쏟았다. 정기(鄭琦)의 서(序)와 이남의(李南儀)의 발(跋)을 붙여 1937년 임실에 있는 이로재(履露齋)에서 간행되었다.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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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간행된 두병민의 유고 시집. 두병민(杜炳敏)[1891~1963]의 자는 연빈(硯彬), 호는 소계(小溪)이며, 시해(詩海) 두진계(杜晉桂)[1860~1904]의 아들이다. 『소계집(小溪集)』은 석인본 『시해집(詩海集)』에 부록된 두병민의 시고이다. 두진계의 시문집인 『시해집』 2권 2책 속에 부록되어 있다. 『시해집』은 두진계의 손자 두용균(杜用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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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박주현의 유고 시문집. 박주현(朴周鉉)[1844~1910]의 자는 내수(乃壽), 호는 송곡(松谷)이다.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비서승(秘書丞)에 올랐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손자 박정식(朴政植)과 박천식(朴天植) 등이 윤희구(尹喜求)의 서(序)와 정순문(鄭淳文)의 발(跋)을 붙여 1964년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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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유학자 최찬의 유고 시문집. 최찬(崔纘)[1777~1869]의 자는 화언(華彦), 호는 송와(松窩)이다.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최찬의 4대손 최정섭(崔鼎燮)과 최용섭(崔鏞燮) 등을 비롯해 5대손 최평(崔坪) 등이 유문을 모으고 발(跋)을 붙여 1919년에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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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의 유학자인 허섭의 유고 시문집. 허섭(許燮)[1834~1900]의 자는 여진(汝珍), 호는 수학(睡鶴)이다.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는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홍진표(洪震杓)의 서(序)와 김교성(金敎成)의 후기(後記)를 붙여 1974년에 간행되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영인본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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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유학자 김한충의 유고 시문집. 김한충(金漢忠)[1801~1873]의 자는 효백(孝白), 호는 습정(習靜)이다. 만동묘(萬東廟)의 철폐에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조손(祖孫) 김병재(金炳梓)의 서(序)와 김환정(金煥正)·김형돈(金炯敦)의 발(跋)을 붙여 1938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전주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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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유학자 정희진의 유고 시문집. 정희진(鄭熙鎭)[1822~1891]의 자는 대수(大綏), 호는 담서(潭西), 또는 신회(愼晦)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학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곽종석(郭鍾錫)의 서(序)와 문인 이한룡(李漢龍)의 발(跋)을 붙여 1905년에 후손 정규철(鄭圭喆)이 5권 2책으로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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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인물인 최관의 유고 시문집. 남원 노봉(露峰) 출신인 최관(崔瓘)[1724~1774]의 자는 계옥(季玉), 호는 심시재(尋是齋)이며,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의 후손이다. 7대손 최용신(崔容臣)이 발(跋)을 붙여 1976년에 간행하였다. 상하(上下) 2권 1책이며, 석판본이다. 표제는 심시재유고(尋是齋遺稿)이다. 서문은 없고 뒷부분에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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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인물인 이복겸의 유고 시문집. 이복겸(李福謙)[1744~1823]의 호는 양정재(養正齋)로, 남원군 이백면 초동마을 출신이다. 아들 이형규(李馨奎)와 이형대(李馨大), 손자 이백효(李伯孝) 등이 편집한 것을 1933년 6세손 이정우(李整雨)가 간행하였다. 연세대학교 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등에 소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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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학자 하만리의 유고 시문집. 하만리(河萬里)[1597~1599]의 자는 자장(子長), 호는 양진(養眞)이며, 관향(貫鄕)은 진주(晉州)이다. 남원 출신의 유학자로, 학행과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8대손 하진천(河鎭天)과 9대손 하영진(河永晋) 등이 편집하여 1911년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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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발간된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덕열의 유고 시문집. 이덕열(李德悅)[1534~1599]의 자는 득지(得之), 호는 양호당(養浩堂)이며, 남원부 주포방(현 남원시 주생면 유매리)에서 살았다. 1567년 진사시를 거쳐 수찬(修撰)과 승지(承旨) 등을 역임했다. 김홍락(金鴻洛)의 서(序)와 증손 이웅징(李熊徵), 권명섭(權命燮), 10세손 이병수(李秉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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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간행된 화순최씨(和順崔氏) 7인의 시문집. 『오성세고(烏城世稿)』는 남원군 대산면(大山面) 죽곡(竹谷)에 살았던 최상문(崔象汶), 최항(崔迒), 최봉의(崔鳳儀), 최현(崔玹), 최강(崔綱), 최식(崔湜), 최경(崔逕) 등 화순최씨 일가 7인의 시문을 합철한 책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서(序)와 후손 최익호(崔翼浩), 최중섭(崔重燮)의 발(跋)을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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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에 간행된 죽산박씨(竹山朴氏) 5인의 전기(傳記)를 모은 책. 『오충전(五忠傳)』은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의 죽산박씨 문중에서 충(忠)으로 명성을 떨친 박문수(朴門壽)·박계성(朴繼成)·박신룡(朴信龍)·박성룡(朴成龍)·박명룡(朴命龍) 등 다섯 사람의 전기를 모은 책이다. 김병창(金炳昌)의 서(序)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발(跋)을 붙여 189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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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장복겸의 유고 시문집. 장복겸(張復謙)[1617~1703]의 자는 익재(益哉), 호는 옥경헌(玉鏡軒)이다. 학문에 두루 통달하고 시와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1931년 7세손 장진욱(張鎭旭)이 선대 이래 종가에서 소장해 온 문헌과, 남원 지역 유림들이 간행한 문헌집에 수록된 시문을 모아 4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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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학자인 양해기(梁海驥)와 그의 손자 양병옥의 회갑 축시를 모은 시집. 권두에 양홍근(梁洪謹)·양종호(梁鍾浩)의 서와 양병옥(梁炳玉)의 자서(自序), 권미에 한현석(韓賢錫)·양병길(梁炳吉)의 후기를 붙여서 1966년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남원에서 간행되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연활자로 간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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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희문의 유고 시문집. 조희문(趙希文)[1527~1578]의 자는 경범(景范), 호는 월계(月溪)이다. 남원 출신으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당시 기대승(奇大升)·정철(鄭澈)·백광훈(白光勳) 등과 교유하였다. 1798년(정조 22)에 후손 조중관(趙重瓘)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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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양경우의 시문집. 양경우(梁慶遇)[1568~?]는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다.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蓼汀)·태암(泰巖)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였는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임진왜란을 당해서 부친 양대박과 동생 양형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양경우는 생전의 시문을 모아 스스로 편차한 뒤에 시 2책, 문 1책으로 정리하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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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양대박의 시문집. 양대박(梁大撲)[1543~1592]은 자가 사진(士眞)이고 호가 송암(松巖)·죽암(竹巖)·청계도인(淸溪道人) 등으로 사용하였는데 본관이 남원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저자의 시문을 4권 2책에 정사한 고본이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활발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저자가 군무 과로로 전주에서 죽음에 부친을 따라 함께 거의한 아들 양경우와 양형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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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율(仲律). 충숙공(忠肅公) 문극겸(文克謙)의 후손이고, 진사(進士) 문치주(文致周)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문형(文炯)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 등을 역임하였다. 정유재란 때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의 중군(中軍)이 되어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다가 순절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사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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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술(而述), 호는 초곡(草谷). 관찰사(觀察使) 행촌(杏村) 박자량(朴子良)의 후예로 참의(參議) 박숭조(朴崇祖)의 손자이다. 박계성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예(禮)로써 몸을 다스려 당세에 이름을 떨쳤으며, 관직은 사직(司直)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털어 병기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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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성(密城). 호는 백헌(栢軒). 증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조부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박이(朴頤), 부는 박경(朴慶)이다. 박기화는 성품이 굳세고 절개가 꿋꿋하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학식이 깊었다. 농암(聾庵) 이현보(李賢輔)와 교제하였다.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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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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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석윤(錫胤), 호는 구암(龜巖).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遜)의 후손이며, 밀양군(密陽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흥남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있고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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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현감(縣監) 방구성(房九成)의 후손이며,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방원진은 오정길(吳廷吉)·장경세(張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16세의 나이로 양대박(梁大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가 아버지 상을 당하여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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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안대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9살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큰아들 안사오(安嗣吳)와 함께 권율 장군의 막하에 들어가 왜군과 싸우다가 여원치(女院峙)에서 부자가 함께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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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호는 호은(湖隱). 충숙왕 때 참지정사를 지낸 문인공(文仁公) 양일(梁溢)의 후손이다. 양사철은 고려시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평리(門下評理) 삼중대광(三重大匡)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 등에서 그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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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원주. 호는 창암(蒼菴). 녹야당(綠野堂) 원계관(元繼寬)의 손자이다. 선조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의 자리를 거쳐 좌승지(左承旨)를 지냈고,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올랐다. 사후에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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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복(于復).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이다.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는 갑사(甲士) 출신으로,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자진 출전하여, 난이 끝나자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468년 왕위에 오른 예종에게 남이의 언행과 시를 빌미삼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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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문화(文化). 호(號)는 뇌천(磊川). 할아버지는 석헌(石軒) 유옥(柳沃)이고, 아버지는 유홍원(柳洪源)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평생을 안빈낙도하면서 입신 출세를 구하지 않았다. 『뇌천집(磊川集)』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덕행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드날렸지만 병자호란이란 국가적 치욕을 당하면서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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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충렬왕(忠烈王) 때 태어났고, 1319년(충숙왕 6) 어사대부(御史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벼슬을 하였다. 죽은 뒤에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제수되었고 시호는 문경공(文景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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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호는 오소(吾巢)이다. 이윤수는 1838년(헌종 4)에 태어나 27세 되던 1864년(고종 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형조참의(刑曹參議)를 거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하였고,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摠管)에 올랐다. 사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간공(忠簡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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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팽년(李彭年)이다. 아우 이경신(李敬信)은 훈련판관(訓鍊判官)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전함을 수리하고 공로가 많았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간성군수로 의병을 모아 충주 달천(達川)에서 신립(申砬)과 함께 싸우다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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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寧川)[현재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부 관할이었음]. 영천이씨(寧川李氏)의 시조인 이능간의 3세손이다. 이탕휴(李湯休)는 고려조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으나,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자신이 살던 곳을 스스로 방화하고 자손을 고향인 남원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자신은 관과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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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용회(用晦), 호는 회산(檜山). 아버지는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 정세명(丁世明)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전적(承文院典籍)이 되었다. 성균관전적·호조좌랑을 거쳐 1537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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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계회(季晦), 호는 유헌(遊軒), 시호는 충간(忠簡). 아버지는 필산감역(匹山監役) 정세명(丁世名)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정황은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지평·병조정랑·형조정랑 등을 지냈다. 1544년 정랑으로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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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동생 정효종(鄭孝終)은 2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승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54년(단종 2)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다. 경연사경(經筵司經)으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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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아호는 율정(栗亭)이다. 고려 말기인 1376년(우왕 2)에 태어났으며, 26세 되던 1402년(태종 2)에 문과를 급제하였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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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조한은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몸소 토석을 운반하여 묘를 이루고, 3년 동안 육식을 끊고 마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정려(旌閭)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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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옹(德翁), 호는 송헌(松軒), 진취(陳就)의 후예이며, 진몽일(陳夢日)의 아들이다. 진대수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자 형 진희수(陳稀壽)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구환(救患)하였다. 초시(初試)를 치르러 갔다가 장내가 혼란함을 보고 부끄럽게 여겨 과거보기를 단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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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화암(和庵).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생원 채원상(蔡元祥)이다. 활쏘기 솜씨가 뛰어났던 채희연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출전하였다. 채희연은 만약 자신이 전사하면 시체를 거둘 때 신원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늘 푸른색 도포를 입었다고 한다. 채희연은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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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삭녕최씨의 전라북도 남원 입향조(入鄕祖). 본관은 삭녕(朔寧), 호는 운경(雲卿). 할아버지는 영의정 영성부원군 최항(崔恒)이며, 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낸 최영린(崔永潾)이고, 어머니는 고령박씨이다. 부인은 진주하씨(晋州河氏) 사직(司直) 하응(河應)의 딸이다. 최수웅은 일찍이 음사(蔭仕)로 충의위정략장군(忠義衛定略將軍)에 올랐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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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명나라 장수. 세심당(洗心堂)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명나라 무강자사로 재임하며 부러움 없는 영화를 누렸으나 이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다섯 아들과 함께 조선에 들어와 왜군과 싸웠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웠고, 마침내 적의 총탄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전주를 사수한 장군이다. 본관은 추계(秋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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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협계(陜溪), 본래 발해 왕 대조영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태응진은 벼슬이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금암리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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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상지(常之).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손자이다. 한계상은 음사(蔭仕)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야수(野叟) 채홍국(蔡弘國)과 함께 흥덕(興德)·남당(南塘)에서 뭉쳐서 호남을 지켰다. 또 정유재란 때에는 부안 호벌치(胡伐峙)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중상을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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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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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옥(大玉). 판서(判書) 형규(邢珪)의 후손이며, 진사(進士) 형우안(邢友顔)의 증손이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남원성이 포위당하자 입고 있던 비단옷에 “죽어도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 된 직분(死不避亂 臣子職分)”이라는 여덟 글자와 이름을 혈서로 쓴 뒤 성으로 달려갔다. 남원부사 임현(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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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