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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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朱-興-旗歲拜-文化-茂朱茂豊縣內里旗-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마을의 상징인 농기를 앞세워 마을의 서열에 따라 마을 농기로 신년의 세배를 올리는 민속놀이.
[무풍현의 풍수지리와 십승지지(十勝之地)]
무풍현은 신라 때 무산현(茂山縣)이라 불렸다. 무풍현의 진산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추측할 따름이다. 무풍현의 진산은 흔히 남향으로 자리 잡는다면 백운산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백운산보다는 대덕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훨씬 진산으로써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국무총리와 국회 의원의 출신이 대덕산 줄기인 사동 마을과 석항 마을인데, 이 점이 더욱 대덕산으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대덕산 줄기는 ‘당곡재’라 일컫는 줄기까지 이어져 현재 무풍 초등학교에 명당 판을 형성시켜 놓았다. 명당수는 백운산에서 출발한 적천이며, 안산은 ‘삿갓봉’이라 말할 수 있다. 무풍현의 진산을 대덕산으로 하면 북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된다. 진산의 위치가 일반적으로 남향이 많으나 북향인 경우도 있다. 즉 현의 남쪽에 진산이 있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무안현의 승달산, 제주목의 한라산, 순천 도호부의 인제산, 곡산군의 남산 등이 그 예이다.
무풍현은 병화(兵火)와 흉년이 없는 피난·보신(保身)의 땅을 일컬어 십승지지라 한다. 십승지지는 민중의 풍수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병난(兵難)과 흉년을 벗어나 보자는 생각은 대부분의 민중이 절실하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감결에서 “무주 무봉산(舞鳳山) 북동방상동(北銅傍相洞)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무풍면에 ‘방상동’이란 지명이 현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유사한 지명은 방곡, 덕동 등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무봉산’이란 지명도 남아 있지 않다. 흔히 이러한 십승지지는 일반적으로 방어상, 피난지로서의 유리함을 가진 지역인데, 무주는 어느 곳이나 이와 같은 곳에 부합되는 곳이다. 특히 무풍면 전체가 십승지지에 해당하는 형세이며, 지역 사람들도 이를 강하게 믿고 있다. 요즘 무풍면은 십승지지를 ‘휴(休) 무풍승지’라는 브랜드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무풍현 현내리 기절놀이 유래와 복원]
기절놀이가 행하여지는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는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무풍면 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현내리에는 원촌, 고도(古島), 상하, 북리 등 4개 마을이 있다. 그런데 기절놀이는 4개 마을에서 행하여지는 것은 아니고 북리 마을과 고도 마을이 함께 진행한다. 북리 마을은 본래 상북 마을에 속하였는데 분리 독립되었다. 고도 마을은 현내리 한복판에 위치하며, 지형상 섬과 같이 생긴 데서 유래하였다. 북리는 현의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뒷담’이라고도 불린다.
기는 일반적으로 ‘농기(農旗)’, ‘농상기’, ‘큰기’, ‘용기’, ‘두레기’ 등으로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양하다. 기는 장대[기죽] 꼭대기에 꽂는 꿩장목, 용을 비롯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기폭, 기를 묶기 위한 기죽(旗竹), 기 방울 등으로 구분된다. ‘기세배’는 마을의 상징인 농기를 앞세워 농기의 서열에 따라 어른 농기에게 신년에 세배를 올리는 민속놀이를 말한다. ‘농기맞이’라고도 불린다. 기절놀이는 기세배와 놀이 문화가 결합된 용어이나 실제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기놀이’는 기를 가지고 힘과 재간을 자랑하는 것으로 술멕이 판에서 벌어진다. 기놀이 때 기를 든 사람이 한 손에 기죽을 잡고 다른 손에 기 끈과 용꼬리를 쥐고 건들거리며 이리저리 뛰기도 하고, 아예 줄을 놓고 양팔을 벌려 놀기도 한다. 또 지면에 기가 닿을 듯 말 듯 하게 내려 깔아 원을 그리거나 파도처럼 요동치기도 한다. 또한 머리, 어깨, 손 등 신체 부위에 기를 올려 떨어뜨리지 않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연출한다. 이렇듯 기놀이의 동작은 매우 다양하나 그것은 기를 가지고 노는 이의 힘과 재량에 달렸다.
‘기싸움’은 기를 겨루는 것으로, 술과 힘자랑 때문에 벌어진다. 기싸움은 합굿을 치는 과정에서 기꾼들이 술기운을 빌어 서로 힘자랑을 하면서 벌어지는데, 기가 땅에 닿으면 승패가 갈린다. 기싸움은 술멕이가 끝날 무렵에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마을의 술멕이에서 기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마을 합굿을 칠 때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깃고사’는 기를 세우고 제의를 행하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 성격을 띤다.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가정 마을 농기 올리기도 깃고사와 같은 성격이다.
특히 기세배는 정월 대보름, 백중 여름 두레 먹는 날 등 상하가 분명하여 올리는 기세배는 어른 농기가 있는 마을로 찾아가는 형태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농기 문화가 발달하여 농기 문화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곳은 익산시 금마의 기세배, 함열의 기싸움, 전주의 기절놀이, 진안군의 깃고사, 장수군의 기절놀이,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기절놀이와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가정 마을 농기 올리기 등이 있다. 무풍면 현내리에서도 북리 마을과 고도 마을에서 일찍이 기절놀이가 전승되어 왔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단절되었다가 광복 이후 복원되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시 단절되었다가 무주 반딧불 축제를 계기로 2008년부터 복원되어 해마다 시연되고 있다.
[무풍현 현내리 기절놀이 놀이마당]
기놀이, 기절놀이, 깃고사 등은 기본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또한 여기에는 놀이적 성격이 함께한다. 그래서 마을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웃 마을과 함께 행사가 진행되는 대동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 가장 일반적인 기놀이는 술멕이 판에서 존재했다. 그러므로 기놀이는 기본적으로 술멕이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그래서 술멕이는 준비 과정, 합굿, 기놀이, 마당밟이, 정리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기는 각 마을을 대표할 뿐 아니라 역동적인 판을 벌이는 데에 중심이 되었다. 예컨대, 다른 마을로 전령을 띄울 때에 영기를 앞세웠고, 깃고사를 지냄으로써 본격적인 술멕이를 시작하였다. 또한 이웃 마을과 합굿을 칠 때도 그 마을의 기가 나가 다른 마을의 기를 맞이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간에 자존심을 걸고 기놀이, 기싸움 등을 벌이기도 했다.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는 북리 마을과 고도 마을 농기로 이루어진다. 무풍면 장터를 중심으로 북리 마을은 윗마을[뒷담], 고도 마을은 아랫마을[앞담]로 구분한다. 과거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북리 마을 농기가 대장기인데 고도 마을 농기를 만나게 되면 먼저 고도 마을 농기가 대장기인 북리 마을 농기에 절을 하고, 대장기가 답례를 하게 된다. 농기의 서열은 농기를 제작한 순서에 의하여 정해진다.
현행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는 2008년부터 복원되면서 행하여진 모습이다. 기절놀이 과정은 당산제, 기절놀이, 줄다리기, 뒤풀이 굿 순으로 행해진다. 먼저 당산제는 용기를 세우고 당산 앞에 제를 모신다. 우선 제관은 생기복덕에 맞추어 궂은일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선출한다. 제물은 시루떡, 돼지머리, 삼색실과, 주, 포, 소지 종이 등을 준비된다. 유교식 절차에 의하여 진행되며,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무병,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리면서 제가 마무리 된다. 이후 기절놀이가 진행된다.
기절놀이는 축제 성격으로 화합을 다지는 과정이다. 기절놀이는 두 마을이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무풍면 사무소 공터에서 마주 서게 한다. 마을에서 미리 정해 둔 좌상의 지시에 따라 아랫마을 할머니 당산기가 윗담 할아버지 당산기를 향해 깃대를 세 번 숙이며 절을 하고 나면 이때 바로 윗담 할아버지 당산기는 세 번 반 배로 답을 하게 된다. 기절을 할 때마다 상쇠의 지시에 따라 풍물을 짧게 울려 준다.
기절놀이가 끝나고 나면 풍물을 치면서 신명나게 다시 광장을 한 바퀴 돌아서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의 궁극적 목적은 풍요로운 삶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집단적으로 경쟁하는 것이며, 그 경쟁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이 이루어진다. 줄다리기는 원래 남녀 두 편으로 나누어서 여자 편이 이기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이때는 세 번을 당기게 되는데, 이긴 마을은 그해 재앙이 없고 풍년이 든다고 기뻐서 줄을 메고 신명 나게 놀고, 진 마을은 땅을 치며 통곡한다. 줄다리기가 진행되는 동안 풍물패와 주민들은 자기편을 응원한다. 그러나 줄다리기는 승패를 떠나 공동체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인 것이다. 이후 뒤풀이 굿이 진행되는데, 두 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신명 나게 놀면서 기절놀이는 끝을 맺는다.
[무풍현 현내리 기절놀이 의미와 타지역 비교]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상리 마을, 중리 마을, 북리 마을, 하리 마을 등에서도 기세배가 행하여졌다. 마을에서는 깃고사라고 하지만 기세배와 같은 의미이다. 음력 정월 보름날 무렵에 행하여진 기세배는 네 마을 중 가장 어른인 상리 마을로 나머지 마을에서 풍물을 치면서 기를 모시고 가서 세배를 드린다. 이때 상리 마을에서는 기를 들고 마중을 나가 세배를 받고 답례한다. 이렇게 기세배를 한 후에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무주읍 읍내리 기세배와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는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같은 무주군이라 하더라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가정 마을 농기 올리기는 매우 차이가 크다. 농기 자체를 당산제 신체로 모시면서 제를 모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인근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능길 마을과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상백암 마을에서 행하여지는 깃고사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능길 마을 깃고사는 마을 회관 앞에 기를 세우고 제의를 행하는 마을 단위 행사이다. 이 깃고사는 정적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능길 마을의 깃고사는 ‘대산지[큰산제]’로 어른을 모시는 것이어서 그 이전에 개인적인 고사는 지내지 않는다. 각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절이나 무당을 찾는 것은 깃고사를 마친 후에나 가능한데, 능길 마을 깃고사의 당산제적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장수 기절은 장수군 장수읍 13개 자연 마을이 함께했던 놀이다. 부모기를 비롯한 아들기의 순서는 기의 제작 연대를 따르는데, 가장 먼저 만들어져 오래된 기가 영감기이고 그 다음이 부인기, 장남기, 차남기 등의 순서이다. 간단히 제의를 마치면 기절이 시작된다. 기절은 영감기와 부인기의 맞절로 시작된다. 영감기와 부인기의 인사가 끝나면 각 마을의 아들기가 큰아들부터 막내아들 기까지 순서대로 부모기인 영감기와 부인기에게 절을 한다. 장수군의 기절놀이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고을 공동체로 확대된 대동 놀이이다.
[무풍현 현내리 기절놀이의 현대적 의미]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는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4개 마을 중 북리 마을과 고도 마을만 참여하여 지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절놀이, 기세배는 가까운 주변 마을과 함께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즉 생활권이 근접하여 서로의 농경지와 생활 공간이 같은 경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마을이라면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모든 마을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농촌 및 어촌 지역 마을의 상황이 그러하듯이 노령화로 인하여 마을 자체적으로 민속놀이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도 마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복원된 것이 아니다. 무주 반딧불 축제의 일환으로 무주군 일원의 민속놀이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발굴 복원된 것이다. 그래서 그 원형이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원형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는 북리 마을과 고도 마을에서만 행하여졌으나 최근에는 마을 분들이 노령화되어 제대로 기절놀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 작년부터는 무풍면 청년회에서 맡아 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무주 무풍 현내리 기절놀이를 단순히 현내리에 있는 2개 마을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무풍면 전체 마을로 확대하여 실시하는 방안을 강구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