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2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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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瞻慕齋[大項里]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5길 43[대항리 3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강진 |
건립 시기/일시 | 1845년 - 첨모재[대항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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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2년 - 첨모재[대항리] 중수 |
현 소재지 | 첨모재[대항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5길 43[대항리 331] |
원소재지 | 금곡장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중항 선영 아래 |
성격 | 재실 |
양식 | 목조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장수황씨 밀양 대항문중 |
관리자 | 장수황씨 밀양 대항문중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중항에 있는 장수황씨 선대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 재실.
[개설]
첨모재(瞻慕齋)[대항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중항에 전거한 장수황씨 호군(護軍) 황학(黃鶴)의 후손 황용원(黃龍源)이 1845년 중건한 재실이다.
입향조 황학은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의 증손자이자 호안공파 파조 황치신의 손자로 중종 때 경기도 파주(坡州)에서 처가인 대항리로 옮겨 터를 잡았다. 입향조의 7세손 첨모 황종구(黃鍾耈)[1659~1746]는 만년인 1742년(영조 18) 고조할아버지 황근(黃謹)의 묘소 아래에 초옥을 지어 금곡장(金谷庄)이라 칭하였다. 이후 학업을 닦는 장소로 삼는 동시에 선영 묘제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하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순조 때인 1824~1825년의 큰 기근으로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여 쓰러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황용원이 경비를 마련하여 1845년(헌종 11) 정월 초 현재 위치에 공사를 시작하여 초여름 무렵 목조 기와집 형태로 건립하였다. 88세로 동지중추를 수직받은 황종구의 호를 따서 ‘첨모당(瞻慕堂)’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이때 서쪽 처마는 복유재(復攸齋), 동쪽 처마에는 몽양재(蒙養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재 내벽에는 ‘첨모재’와 ‘첨모당’ 편액을 비롯하여 황종구의 현손이자 황용원의 팔촌 형으로 사헌부 집의로 있던 황기원(黃起源)[1794~1862]이 지은 「첨모당 이건기」와 사손(嗣孫) 황의철(黃義哲)의 발문인 「첨모재중건 실사 소지」[1962]가 걸려 있다. 황의철은 독립운동가 황문익(黃文益)[1879~1953]의 아들이다. 정문인 외삼문의 편액 이름은 ‘앙혜문(仰惠門)’이다.
[위치]
첨모재[대항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331번지에 있다. 중항마을 북쪽 끝에 재실이 있고, 담장 뒤쪽 언덕에는 선조들의 묘소를 집단 조성한 화포원(華圃園)이 있다.
[변천]
첨모재[대항리]는 입향조의 7세손 황종구가 1742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고조할아버지 황근의 묘소 아래 초옥으로 지었는데, 황종구의 현손 황용원이 1845년 현재의 위치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331로 옮겨 목조 건물로 새로 지었다. 100여 년이 흘러 건물이 매우 낡자 1962년 중수하였다.
[형태]
첨모재[대항리]는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1동과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첨모재[대항리]는 장수황씨 후손들이 집거하는 마을에 있고 문중 유사가 관리를 맡고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첨모재[대항리]를 통하여 장수황씨의 경상남도 밀양 입촌 내력과 밀양 재지 사족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