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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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追遠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제대리 7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강진 |
건립 시기/일시 | 1818년 - 밀양 추원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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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8월 6일 - 추원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12월 20일 - 추원재에서 밀양 추원재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밀양 추원재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추원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제대리 701] |
성격 | 재실 |
소유자 | 일선김씨 문충공파 대종회 |
관리자 | 일선김씨 문충공파 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개설]
밀양 추원재(密陽追遠齋)는 선산김씨 경상남도 밀양 입향조인 강호산인 김숙자(金叔滋)[1389~1456]가 처음 터를 잡고 점필재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성장한 곳에 지은 건물이다.
김숙자는 시조 김선궁(金宣弓)의 15세손으로, 김숙자가 입촌한 계기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지동리에 살던 박천경의 차남 박홍신(朴弘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숙자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출처한 뒤 대마도 정벌에서 순국한 박홍신의 무남독녀[1400~1479]를 1420년 재취로 맞이함으로써 처향인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로 이사하였다.
김숙자의 다섯째 아들 점필재 김종직은 부북면 제대리의 대동 외가에서 태어난 뒤 지동에서 성장하였다. 사후 밀양시 상남면 무량원(無量院)리에 묻혔다가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되었고, 1507년 복권된 이후 재실 뒷산에 분묘를 다시 조성하였다.
[변천]
여러 차례 사화를 거치면서 선산김씨 자손들이 흩어져 묘제(墓祭)를 제대로 지낼 수 없어 1810년 경상북도 고령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재물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6칸의 재실을 1818년 비로소 지었다. 재실 편액은 ‘추원재(追遠齋)’라 하고, 당호는 ‘전심당(傳心堂)’이라 했다. ‘전심(傳心)’은 조선의 성리학, 곧 심학(心學)은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정여창으로 전해지고, 계보상 김종직이 성리학의 종장(宗長)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밀양 추원재는 1986년 8월 6일 추원재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12월 20일 밀양 추원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밀양 추원재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에 있다.
[현황]
밀양 추원재는 김종직의 도학적 위상에 비하여 건물 규모나 부속 건물의 공간 배치가 협소하지만,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재실 내벽에는 양산군수 김유헌(金裕憲)의 「추원재 상량문」[1818], 후손 김계선(金繼善)의 「전심당 창건기」[1819], 밀양군수 이구섭(李球燮)의 「추원재 중수기」[1988]가 걸려 있다. 재실 앞에는 점필재 연보비와 흉상이 있으며,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마을 초입에는 1635년에 세운 ‘문충공점필재김선생신도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추원재를 통해 선산김씨의 경상남도 밀양 정착과 조선 전기 밀양 향촌사회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