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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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宗直 |
영어공식명칭 | Kim Jongjik |
이칭/별칭 | 효관,계온,점필재,문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경수 |
출생 시기/일시 | 1431년 6월 8일 - 김종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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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9년 - 김종직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492년 8월 19일 - 김종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06년 - 김종직 신원 |
추모 시기/일시 | 1689년 - 김종직 영의정 추증 |
출생지 | 추원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제대리 701] |
묘소|단소 | 추원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제대리 701] |
사당|배향지 | 밀양 예림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 |
성격 | 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선산 |
대표 관직 | 이조참판|공조참판|병조참판|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형조판서|홍문관대제학|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 문신이자 학자.
[가계]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효관(孝盥)·계온(季昷)이고,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다. 김종직의 할아버지는 김관(金琯)이고, 아버지는 사예(司藝) 벼슬을 한 강호(江湖) 김숙자(金叔子)이며, 어머니는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1431년(세종 13) 6월 8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종직은 1453년 진사에 합격하고 1459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다.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함양군수(咸陽郡守), 선산부사(善山府使),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조참판(吏曹參判),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1492년(성종 23) 8월 19일 고향 밀양의 집에서 세상을 떴다.
김종직(金宗直)은 조선 전기 사림파(士林派)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학자이다. 김종직은 사림으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뛰어난 문장력으로 학자들의 영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절의를 높이고 의리를 숭상하는 김종직의 정신은 제자들에게 전하여져 조선시대 사림파의 큰 줄기를 형성하였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풍자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으나, 후일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조의제문」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조선시대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史禍)의 원인이 되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제자들이 대부분 연루되어 죽거나 유배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이미 세상을 떠난 김종직도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종직은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학(史學)에도 능통하여 절의와 도학을 중시하는 조선시대 사림파 도학의 맥을 구축하였다. 저서로 『점필재집(佔畢齋集)』, 『회당고(悔堂稿)』, 『청구풍아(靑丘風雅)』, 『동문수(東文粹)』, 『유두류록(遊頭流錄)』,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고, 편집한 책으로는 『일선지(日善誌)』, 『이존록(彛尊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있다.
[묘소]
김종직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701에 있는 생가 추원재(追遠齋)[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안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종직은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되었다가 1506년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신원되었다. 이후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 외에도 선산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 백연서원(栢淵書院), 김천 경렴서원(景濂書院), 개령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89년(숙종 15)에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