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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강림사에 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탐라지(耽羅志)』의 제주목 불우조에는 ‘강림사주동함덕포구(江臨寺州東咸德浦口)’라 하여 “강림사는 제주 동쪽 함덕 포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601년(선조 34) 김상헌이 편찬한 『남사록(南槎錄)』에도 “곧 원(元) 때 세운 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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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부사를 역임한 문신. 고려 고종 때에 제주부사로 재임하였다. 1223년(고종 10) 읍호가 이미 탐라에서 주(州)의 명칭이 붙은 제주(濟州)로 개편·승격됨에 따라 수령은 제주부사가 파견되고 있었다. 제주부사로는 “앞서는 경세봉(慶世封)이요, 후에는 김지석(金之錫)이다.”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경세봉과 김지석(金之錫)은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에게 숭앙받았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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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고려 원종(元宗) 때에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진도에 웅거(雄據)하였다. 이에 원종이 사랑 고여림 등을 탐라에 보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방비하게 함에 따라 환해장성을 쌓게 되었다. 『고지도첩(古地圖帖)』 중 「탐라전도」에는 애월개의 동쪽에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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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시호는 문충(文忠). 아버지는 상호군 고봉지(高鳳智)[?~1411]이며, 조천읍 교래리에서 태어났다. 1413년(태종 13) 효행이 두터워서 직장(直長)에 천거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지냈다. 1427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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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안무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탐라성주 고신걸(高臣傑)이며, 동생은 고봉지(高鳳智)이다. 1386년(우왕 12) 탐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회유하기 위하여 제주에 파견된 전의부정(典醫副正) 이행(李行)과 대호군(大護軍) 진여의(陳如儀)가 임무를 마치고 개경으로 갈 때 동행하였고, 1388년(우왕 14)에 고려 조정으로부터 제주축마 겸 안무별감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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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 성주. 본관은 제주. 호는 청파(靑坡). 초명은 고보개(高寶開)이다. 1369년(공민왕 18)에 문과에 급제하고 서도부천호(西道副千戶)를 지냈다.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이 탐라에서 일어난 목호(牧胡) 난을 진압하고 떠난 이듬해에 제주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불태우고 제주안무사 임완(林完)과 제주목사 박윤청(朴允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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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삼별초를 토벌한 무신. 1268년(원종 9)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김준(金俊)의 휘하에 있었으나, 임연(林衍)이 김준을 제거할 때 김준의 편에 서지 않았다. 1270년(원종 11) 고려가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가 봉기하여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대몽 항전을 계속하였다. 고려 조정이 진도에 있는 삼별초 토벌을 명하자 고여림은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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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곤을마을 해안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도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854년(헌종 11)까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증축,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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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관음사지는 조천읍 조천리 포구의 동쪽에 있는 옛 사찰 터이다. 현재 관음사지의 추정지는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도자기편이 발견되었다. 1960년대 말경에 경작지를 갈아엎은 적이 있는데 그때 주초석으로 보이는 석제 유물들이 나왔다고 전한다. 『한국의 지명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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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말을 명나라에 바친 무신. 14세기 후반은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로서 명나라는 원나라의 잔존 세력을 정벌하는 데 필요한 전마(戰馬)를 확보하기 위해 고려 조정에 제주 말을 보낼 것을 자주 요구하였다. 반면, 제주의 목호(牧胡), 즉 몽고가 제주에 설치한 국립 목장의 우두머리 세력은 제주 말을 거두려는 고려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고려가 명나라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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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판관을 지낸 문신. 본관은 부령.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초명은 김백일(金百鎰)이다. 아버지는 김의(金宜)이다. 1232년(고종 19)에 실시된 과거시험에서 2등으로 합격하였다. 애초 김구는 정원부(定遠府: 현재 평안북도 정주군 사록(司祿)에 보임되었으나, 평소 김구와 감정이 좋지 않던 고향 사람 황각보(黃閣寶)가 가문의 결점을 들어 해당 관청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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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운(汝雲), 호는 척재(惕齋) 혹은 월포(月浦). 일명 김경흥(金景興)이라고도 한다. 고려 충정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도첨의사사헌납을 지냈으며, 공민왕 때 밀직사대언이 되었고, 자제위(子弟衛)에서 일하였다. 신돈(辛旽)[?~1371]이 조정에 들어오자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1366년(공민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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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를 평정한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본연(本然). 아버지는 병부상서를 지낸 김효인(金孝印)[?~1253]이다. 1270년(원종 11) 고려 정부가 몽고와 강화를 맺자 배중손(裵仲孫) 등이 삼별초 난을 일으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를 근거지로 삼아 항전을 계속하였다. 김방경은 1271년(원종 12) 몽고 장수 흔도(炘都)·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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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안무사로 파견된 관리.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서 목호(牧胡: 원나라의 牧子)들의 횡포가 심하여 백성의 생활이 심한 위협에 처하였다. 이에 고려 정부는 1369년(공민왕 18) 9월에 제주도민을 위로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김세봉을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로 파견하였다. 김세봉은 제주목사 박윤청(朴允淸)과 함께 어명을 수행하고자 하였으나 목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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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부사를 지낸 문신. 1257년(고종 44) 제주부사로 부임하였다. 그 동안 제주에서는 15세 이상 남자와 수백 명에 달하는 관리들이 해마다 콩 10말과 말 1필씩을 세금으로 바치면, 그 세금을 제주에 파견된 외관(外官)인 제주부사와 제주판관이 나누어 가졌다. 이로 인해 비록 가난한 외관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부를 이루었을 만큼 폐단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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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이끈 장수. 1270년(원종 11) 고려 조정은 몽고와 강화를 맺고 몽고가 요구해 왔던 개경 환도를 하기로 하였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배중손(裵仲孫) 등을 중심으로 대몽 항전을 결의하였다. 그 후 삼별초는 황해 일대를 경략하면서 진도로 내려가 진도를 거점으로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몽고와 고려에 완강히 저항하였다. 또한 삼별초 소속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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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있는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해 쌓았던 성. 동복환해장성은 구좌읍 동복리 해안을 돌아가며 돌담으로 단단히 쌓은 150m에 이르는 성을 말한다. 1270년(원종 11)에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삼자 고려 조정에서는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을 제주도에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쌓아 삼별초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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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나라가 제주에 만든 목장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 아막은 부대, 조합, 부락, 단체, 주군(州郡)을 의미하는 몽골어로, 한문식으로 표기하여 애마(愛馬)라고도 한다. 제주 지역의 동과 서에 설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동서아막이라고 불렀다. 제주 지역에는 목축에 유리한 완경사의 지형과 초지가 동쪽과 서쪽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어서 두 곳에 각각 아막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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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불 입상. 동자복은 만수사 옛터인 민가 주택 안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으로, ‘복신미륵’, ‘자복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옛 제주성의 동쪽에 성안을 수호하듯 세워져 있었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의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의 한 양상인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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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270년(원종 11) 삼별초와 고려 관군이 결전을 벌였던 격전지. 대몽 항쟁을 전개하던 전라남도 진도 삼별초의 이문경 부대가 1270년(원종 11) 제주 지역에 들어와 왕정 복고를 꾀하는 개경 정부측이 보낸 관군과 맞서기 위해 진을 쳤던 곳이다. 이문경은 전라남도 진도의 삼별초 정부가 제주 지역을 확보하고자 보낸 장군이다.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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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제주도의 몽골족 목호(牧胡) 세력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 제주 지역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단행되는 1356년(공민왕 5)부터 몽골족 목호 세력과 고려가 수차례 맞부딪치는 현장이 되었다. 특히 양자의 충돌은 명나라가 개입함에 따라 1374년에 총력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로써 목호 세력은 최후를 맞이했고, 제주 지역은 제주 사람들이 큰 희생을 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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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 항아리[四耳壺]. 고려시대 몽골의 병사들이 주로 사용하였다고 해서 몽고병(蒙古甁)이라 부르기도 하며,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2~13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와 제주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원대의 무역 도자품으로 추정된다. 그릇에 귀가 네 개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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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 왕자. 본관은 남평. 이명은 문창유(文昌裕) 또는 문창우(文昌佑)이다. 제주의 남평문씨 남제공파 5세손이며 아버지는 문신(文愼)이다. 아내는 원주원씨와 제주고씨이다. 1270년(원종 11) 김통정(金通精)이 고려의 마지막 항몽 세력인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에 들어와 항몽 활동을 시작하자, 1272년(원종 13) 탐라성주(耽羅星主) 고인단(高仁旦)[일명 高仁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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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7년(원종 8) 문행노(文幸奴)가 제주 동북부 지역에서 사람들을 규합해 일으킨 민란. 무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통적으로 문관을 임명하던 외관직에 하급 무관까지 논공행상의 차원에서 대거 등용되었는데, 외관직에 임명된 하급 무관들은 이전 외관들보다 더욱 가혹하게 백성들을 수탈함으로써 전국적으로 대규모 민란이 들끓게 되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반정부 봉기와 갈등의 직접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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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도로 망명한 원나라 왕족. 14세기 후반 원명교체기에 탐라에는 원나라의 왕족 세력이 자발적으로 망명해 왔다. 또한 명나라가 잔존 세력으로 버티던 원나라의 왕족을 평정하여 탐라에 유배를 보냈다. 귀순한 원나라 왕실의 수많은 자손들도 탐라로 보냈다. 1388년(창왕 1) 명나라는 귀순한 원나라 왕족 달달친왕(達達親王) 등 80여 호를 탐라에 보낸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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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년(신종 5) 10월 제주 지역에서 번석(煩石)·번수(煩守) 형제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란. 1170년(명종 즉위년) 무신들의 반란으로 무신 정권이 수립된 뒤 하극상, 고관 축출 등 신분 질서의 해이와 집권자들의 토지 점탈 등으로 사회가 동요하자 전국 각지에서 농민·천민들의 난이 잇달아 일어났다. 탐라는 이미 명종 초기에 탐욕스러운 지방관의 교체를 요구한 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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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년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활용되어 1845년(헌종 11)까지 증축, 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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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주택가 내와 제주시 용담동 용화사 내에 세워져 있는 두 기의 석불 입상. 이 두 기의 석불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는 한 쌍의 복신미륵으로, 동자복과 서자복을 말한다. 구전으로는 ‘자복신(재물과 복의 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고,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두 미륵이 성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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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북촌리에 있는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해 돌담으로 쌓은 성. 김상헌은 그의 저서 『남사록(南槎錄)』에 환해장성에 대해 “바닷가 일대에는 또 돌로 성을 쌓았는데 연달아 이어지며 끊어지지 않는다. 섬을 돌아가며 곳곳이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에 쌓은 만리장성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왜구의 침입에 대해서는 “전후하여 왜적이 들어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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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말사. 불탑사는 고려 시대 사찰 터인 원당사지에 1914년 무렵 중창되었다. 그 뒤 1923년에 안봉려관과 안도월이 3칸 규모의 초가 법당 1동을 새로 지으면서 본격적인 불법 설파에 나서게 되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불탑사의 사찰 계출일은 1930년 3월 25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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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년(충숙왕 5) 제주 지역에서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이 일으킨 민란. 1318년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은 대호군(大護軍)장공윤(張公允)과 제주부사 장윤화(張允和)의 탐욕과 행패에 대한 저항으로 민란을 일으키고, 탐라의 최고위 토착 세력인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도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달아난 성주와 왕자는 고려 조정에 민란 사실을 알렸고,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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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을 항몽의 최후 거점으로 삼았던 고려 무신정권 때의 특수 부대. 1. 송담천 전투 삼별초는 무신 정권의 무력적 보위 기구이자, 40여 년 지속된 대몽 항쟁의 핵심 부대였다. 이들은 원에 굴복하여 강화를 맺은 정부에 반기를 들어 1270년(원종 11) 진도를 거점으로 새 정부를 세웠다. 삼별초는 진도에 거점을 정한지 3개월 후인 1270년 11월 이문경(李文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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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적인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제주도는 일생에 한 번은 꼭 찾아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환상의 섬’이다. 21세기 해양 시대를 맞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소위 베세토(beseto) 라인의 중심축에 제주가 위치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중심 지역으로 제주가 부상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의 이면에는 제주인들의 처절한 항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항쟁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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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271년(원종 12)에 제주도에 들어와 항파두리 토성을 거점으로 삼은 삼별초의 물자 운반용 포구. ‘도근포’, 혹은 ‘외도포’라고도 불리는 제주시 외도동 해안 지대의 포구이다. 1271년 전라남도 진도 용장산성이 여몽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이후 제주도에 들어왔던 김통정 장군 통솔의 삼별초군이 물자 운반용 포구로서 이용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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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던 성으로 활용되어 1845년(헌종 11)까지 증축, 수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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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와요지. 항파두리 토성 북쪽 200m 지점에 있었던 상귀리 와요지는 고려 후기 삼별초 군사가 항파두성 안에 기와지붕 건물을 지을 때 기와를 생산, 보급했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고성리에서 장전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항파두성 북쪽에 장수물과 구시물이 보인다. 이 구시물 서북쪽으로 제주도 농업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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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봉개동 동회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본향당. ‘새미하로산또’를 모시는 전형적인 산신당이다. 현재 제주시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굿이 전승되는 곳이며, 당굿을 할 때 산신 놀이를 벌인다. 제일은 음력 1월 14일에 신과세제, 7월 14일 백중마불림제를 한다. 당 왼쪽 대나무에는 다른 지역의 여성들이 시집오기 전 마을의 본향신을 모시는 중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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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용화사 내에 있는 석불 입상. 서자복은 제주시 용담동 해륜사지 옛터에 보존되어 있는 미륵으로, ‘복신미륵’, ‘자복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옛 제주성의 서쪽에 성안을 수호하듯 세워져 있었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의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의 한 양상인 것으로 보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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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석기는 충혜왕의 서자로서, 1352년 충혜왕과 사기 그릇 장수인 임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정왕은 석기를 승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맡겼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석기를 소환할 것이라고 생각한 공민왕은 만덕사에서 석기를 데려왔다. 1356년(공민왕 5) 6월, 전호군 임중보가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반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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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년(원종11) 11월 삼별초의 이문경 부대와 고려 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무신 정권 몰락 후 고려는 왕정복고를 이루면서 개경 환도를 단행했던 한편, 삼별초는 계속적인 대몽 항쟁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건립하였으며 진도로 내려가 용장산성을 구축하고 통치 기반을 다져 나갔다. 삼별초가 진도에 거점을 잡자 고려 정부는 이러한 삼별초의 행동에 상당히 긴장하였으며, 제주마저 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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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가 80여 년간 원의 지배를 받던 시기. 제주는 남송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이에 원은 제주를 남송과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와 병참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눈독을 들여왔다. 그러던 중 원은 제주에 들어와 웅거하던 항몽 삼별초를 1273년(원종 14) 고려와 연합하여 평정한 것을 계기로 이곳을 직할령으로 삼게 된다. 이후 원은 제주를 남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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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찰 터. 원당사 창건에 대한 전설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기황후(奇皇后)는 원나라로 끌려간 뒤 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가 되었다.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한 스님이 북두의 명맥이 비추는 삼첩칠봉(三疊七峰)에 사찰을 짓고 탑을 세워 불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풍수가들까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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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3세기 후반 원나라가 제주도를 지배할 때 설치했던 관아 터. 몽골족의 나라 원(元)은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 들어와 있었던 고려의 마지막 항몽 세력인 삼별초(三別抄)를 고려와 연합해 평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제주 지역을 직할령으로 삼고, 관부(官府)를 설치했는데, 그 터가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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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새미 오름 북쪽에 있는 고려 후기 김수 장군의 묘로 불리는 무덤. 유적이 위치한 산새미 오름은 해발 650m의 높은 곳이다. 항파두리성 내성에서 남쪽으로 약 5㎞ 정도 떨어져 있다. 김수 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이 오름의 북쪽에 있다. 산새미 오름은 1270년 9월 고려 정부군의 영광부사 김수 장군과 그 휘하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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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주도한 무신. 1258년(고종 45) 최씨정권이 붕괴되는 무오정변에 낭장(郎將)으로 참여하였는데, 이후 승진이 빠른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대몽 항전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세울 때 대장군으로서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다. 좌승선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문학적 소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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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무신. 1200년(신종 3) 진주의 공노비와 사노비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소부감(少府監) 조통(趙通)과 함께 진주로 내려가 중랑장(中郎將)으로 안무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202년(신종 5) 탐라에서 번석(煩石)과 번수(煩守)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소부소감 장윤문(張允文)과 함께 중랑장으로 탐라에 안무사로 파견되었다. 번석·번수의 난은 탐라현령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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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삼별초의 장군을 지낸 무신. 1270년(원종 11) 삼별초는 진도를 거점으로 삼은 지 3개월 만에 제주를 배후 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문경 부대를 파견하였다. 당시 제주에는 전라도 안찰사 권단(權呾)의 지휘 아래 영암부사 김수(金須)가 2백여 명의 군인과 현지 주민을 동원해 방비하고 있었다. 고려의 개경 정부는 삼별초의 위협이 높아지자 고여림(高汝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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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선무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길안. 자는 원질(元質). 길안임씨의 시조이다.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병법에 밝아 원수 김득배(金得培)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이공수(李公遂)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 당시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이 왕위를 탐내어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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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에서 지내는 제의. 장군제는 근대화 이후 무속이 거의 자취를 감춘 추자면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마을 제사이다. 보통 정월 초하루에 최영 장군 사당에서 사당제를 드리고, 2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장군제를 지내는데, 2월 영등제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최영 장군 사당은, 최영 장군이 추자도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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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문신. 식목녹사로 재임 중이던 1186년(명종16) 탐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어 탐라현령에 임명되었다. 탐라의 반란은 무고였음이 드러났지만, 장윤문의 탐라현령 임명은 그대로 시행되었고 전임자는 면직되었다. 장윤문의 묘지명에 의하면, 과거 급제 출신이 탐라현령으로 부임하여 은혜와 위엄이 있는 시정을 펼쳐 탐라민이 늦게 부임해 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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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목사를 지낸 문신.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반원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던 해에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고려의 반원정책은 제주의 목호(牧胡) 세력에게 직접적인 압박이 되었다. 제주의 목호는 그간 원나라가 설치한 탐라목장을 관할하면서 위세가 등등하였다. 고려는 임명권이 원나라에 속하였던 만호 대신에 고려 국왕이 임명하는 제주도 순문사 윤시우(尹時遇)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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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을 지은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아버지는 정신중(鄭臣重)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삼사도사·공조정랑·예조정랑·전교부령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가 되었다. 1398년(태조 7) 이첨(李詹)·조용(趙庸) 등과 함께 군왕의 정치에 도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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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 불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제주도에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1993년 11월에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었다. 탑은 고려시대 충렬왕 때 창건되었던 원당사(元堂寺) 터에 세워졌는데, 절은 조선시대 중기에 폐사되었다. 현재 1914년 무렵 원당사지에 새로 지은 불탑사에 자리 잡고 있다. 원당사지가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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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 제주 지역에 설치된 특수 관직. 토관은 제주도를 비롯한 평안도·함경도 등의 일부 지역의 토착 세력에게 특별하게 주었던 관직이다. 제주도에 토관제가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없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토관제에 관한 첫 기록은 1394년(태조 3)에 나타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그 전에 이미 제주도에 토관제가 설치·운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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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있는 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인 유적지. 13세기에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에 저항하여 싸운 삼별초의 최후의 항쟁지이다. 1271년(원종 12) 5월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온 김통정 장군은 이곳에 내·외성으로 된 항파두성을 축조했다. 외성은 길이가 15㎞에 이르는 토성이었고, 내성은 둘레 800m의 석성이었다. 이 성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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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년 제주에서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주도하여 일으킨 민란. 차현유는 13세기 전반부터 이미 탐라에 정착해 있던 토착민으로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차현유의 난은 1374년(공민왕 23) 10월 6일에 일어났는데, 이는 9월 23일 최영이 목호 세력을 평정하고 탐라를 떠난 지 13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차현유의 난에는 원나라의 추종 세력인 목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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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청동제 등잔. 법화사지는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있다.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발굴 조사를 통하여 고려 전기에 창건되어 후기에 중창된 이후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중·개축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사찰에서의 출토 유물로는 각종 기와류, 도자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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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청자 병. 병의 주둥이 중간에 볼록한 것을 표주박형 병이라 부르며, 고려 청자에 많이 나타나는 기형으로,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3~14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주박 모양의 병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청색을 띠고 있다. 아래 몸체가 크며 아래 몸체와 비스듬히 연결된 목은 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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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간섭기에 제주에 파견된 탐라국초토사의 장관직. 1273년(원종 14) 고려군과 연합하여 제주의 삼별초를 평정한 원이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은 뒤 처음 설치한 관부가 탐라국초토사(耽羅國招討司)이다. 여기에 장관으로 파견되었던 관인이 초토사(招討使)이다. 원의 소용대장군(昭勇大將軍) 실리백(失里伯)이 장관인 초토사로, 한족(漢族) 윤방보(尹邦寶)가 차관인 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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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목호의 난을 진압한 무신. 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홍건적,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우왕 말기에는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을 결정하고 정벌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지만, 이성계가 단행한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숙청되었다. 본관은 동주(철원). 아버지는 사헌규정 최원직(崔元直)이며 어머니는 삼한국대부인 지씨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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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에서 고려 후기부터 어업 수호신으로 최영 장군을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 최영 장군 사당에서 지내는 당제는 원래 음력 섣달 말일과 멸치 성어기인 음력 7월에 지냈으나 근래 들어 음력 2월 보름에 지내고 있다. 제사 방식은 유교식으로 지내며, 제관을 미리 선출해 7일 전부터 부정 타지 않게 몸가짐을 단속한다. 이 제사를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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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에서 탐라 지역에 설치한 탐라총관부의 장관. 다루가치는 원(元)에서 총독·지사(知事) 등을 지칭한 직명으로 한자로는 달노화적[達魯花赤]으로 표기한다. 어원은 몽골어의 ‘진압하다’ 또는 ‘속박하다’라는 뜻을 지닌 ‘daru'에 명사 어미 ‘gha’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chi’를 붙여 ‘진압에 종사하는 사람’, ‘속박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그것이 다시 총독·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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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군민만호부의 장관, 혹은 군사 지휘관의 직함. 만호는 고려와 조선시대 무관직의 하나인데, 애초 만호란 만호부의 장관이며 만호부는 원나라의 제도에서 유래했다. 만호에는 고려 관인이 나아갔지만 이미 원으로부터 만호의 직위를 받았던 자들만이 나아갈 수 있었던 만큼, 그 임명에 원이 직접·간접으로 관여했으며, 이 점은 탐라만호부도 마찬가지였다. 만호부의 설치는 고려가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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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의 탐라 지배기 때 탐라에 주둔했던 고려군과 몽골군을 아울러 이르는 말. 몽골은 1273년(원종 14) 탐라 삼별초를 정벌한 뒤 상당수 고려군과 몽골군을 탐라에 주둔토록 했으며, 이들 탐라진수군은 1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이들은 몽골의 탐라 지배를 가능케 함과 동시에, 탐라가 일본과 남송(南宋) 정벌의 전초 기지로서 경영되었던 데에 따른 것이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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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간섭기에 원이 제주도를 직접 관할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원은 원래 삼별초를 평정한 직후 제주에 탐라국초토사(耽羅國招討司)를 설치하였다가 곧이어 이를 탐라국군민도달로화적총관부(耽羅國軍民都達魯花赤摠管府)로 개편하였다. 이것이 탐라총관부로, 개편 시기는 1275년(충렬왕 원년)경이다. 총관부의 장관인 다루가치[達魯花赤]에는 몽고족 인물이 파견되었지만 휘하 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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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환해장성. 평대리 환해장성은 고려 시대에 구좌읍 평대리에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빙 둘러 쌓은 성을 일컫는다. 고려(高麗) 원종(元宗) 때에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진도에 웅거(雄據)하였다. 이에 원종이 사랑 고여림을 탐라(耽羅)에 보내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방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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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항파두리성 내 북쪽 200m 지점에 위치한다. 항파두리 기왓가마터 남쪽에는 구시물, 서쪽에는 장수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항파두리 기왓가마터의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가마는 지형을 따라서 축조된 듯하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것은 화구(火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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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시대의 토성. 항파두리 토성은 제주 지역의 삼별초 지휘부가 들어섰던 곳으로 항몽의 주요 거점이었다. 성을 축조할 때는 방어의 일차적 요소인 지형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음용수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항파두리 토성의 음용수는 성의 북서쪽 외곽에 발달된 구시물 등의 용천수와 각 하천의 웅덩이 등에 고인 담천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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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사찰의 터. 제주시 해안동 마을 주거 지역 서남쪽에는 ‘당동산’이라는 구릉이 있는데, 해안동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이곳 일대가 해안동 사지로 추정된다. 해안동 사지는 고려시대 중기경에 창건되어 조선시대 중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보이는 사찰의 터이다. 해안동 사지 남쪽에는 해안산이라 불리는 높은 구릉이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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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지방 교육 기관.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학교조(學校條)」 말미에 “우유향학당(又有鄕學堂)”, 즉 “또 향학당이 있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향학당은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지방 교육 기관으로 파악된다. 『탐라지(耽羅誌)』의 「항교조(鄕校條)」 심연원 서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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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선사(禪師). 고려 충렬왕 무렵인 1275년에서 1308년 사이에 제주에 머물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겨 시승(詩僧)으로 불리는 선사이다. 혜일은 제주 전역을 두루 다니며 수행을 하였는데, 특히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산방굴사와 인연이 깊어 산방 법사라고도 불린다. 산방굴사는 혜일이 산방산 해발 150미터 지경에 있는 자연 석굴에 안에 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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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몽고인. 홀고탁은 1356년(공민왕 5) 10월 제주의 목장 관리인 목호(牧胡) 가을치(加乙赤)와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 파견되어 온 도순무사 윤시우(尹時遇), 제주목사 장천년(張天年), 그리고 제주판관 이양길(李陽吉) 등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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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제주도 바닷가에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한 성으로 활용되어 1854(헌종 11)까지 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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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에 축조된 고려 후기 석성. 고려 시대에 원종은 진도에서 제주도까지 거점을 확보하려는 삼별초 군사들의 작전을 막기 위해 고려 군사들을 제주에 파견하여 방어하도록 하였다. 환해장성은 그런 당시 상황 속에서 고려 군사들에 의해 축조되었다. 불과 2~3개월 후 삼별초 군사들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여몽 연합군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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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지역의 삼별초군을 진압한 원나라의 장수.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삼별초의 난 당시 고려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군의 지휘관이었다. 강화도에서 제주로 옮긴 삼별초군은 원나라에 맞서 일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에 1271년(원종 12) 고려와 원은 각각 김방경(金方慶)과 흔도를 지휘관으로 하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삼별초군을 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