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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집안에 위치하는 신적 존재인 집의 신에게 가정의 평안과 무사를 의탁하는 민간 신앙. 가정 신앙이란 마을 공동체 구성원의 대동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와는 달리 가내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의례이다. 하동 지역에서 가신 신앙으로 모셔지는 신으로는 조상신, 성주신, 조왕신, 삼신,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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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579년(선조 12) 영계서원을 세우고 행정 구역 명칭을 정하면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주나라 소공(召公)의 시 「팥배나무[甘棠木]」 중 “무성한 팥배나무[蔽柴甘棠]/ 자르지도 꺾지도 말라[勿剪勿伐]/ 소백이 쉬시던 곳이다[召伯所息].”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감당나무 아래가 쉬기 좋은 곳이라 하였으므로 감당리(甘棠里)라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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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최원추(崔元樞), 최상순(崔相淳) 및 창녕 성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최상순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1838년(헌종 4) 출생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후하며 인자하여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일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처리하였다. 부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와 함께 병약한 노부모를 모시며 효도를 다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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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개항기 정기(鄭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귀후재(歸厚齋)는 이 고장에 처음으로 입향한 정기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 정기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율리(栗里)이다.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며, 젊어서부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문하에서 배웠다. 겸재가 왕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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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효자 김광언을 기리는 비. 김광언 효행비(金光彦孝行碑)는 김광언(金光彦)이 극빈한 가정 형편에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한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김광언 효행비는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1154-2번지 반계마을 노거수 아래에 있다. 팔각지붕의 덮개와 받침대가 있으며, 비석의 전체는 화강암이다. 비석의 크기는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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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주 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남편의 병에 정성을 다한 용궁 김씨(龍宮金氏) 김병희(金炳希)의 처 전주 전씨(全州全氏)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비를 세웠다. 김병희 처 전주 전씨 열행비(金炳希妻全州全氏烈行碑)는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919-4번지 서촌마을 어귀 농로 변 새마을 창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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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민(善敏). 호는 창정(滄亭). 문민공(文敏公)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다. 김세규(金世奎)[1862~?]는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수하고 타고난 자질이 똑똑하여 문리를 일찍 깨쳤다. 부모를 모심에 효를 다하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이 나면 다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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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성지(聲之), 호는 구정(龜亭).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남중(金南重)의 후손이다. 김시복(金始復)[1778~1847]은 천성이 순후하고 지기(志氣)가 강직하였다. 효를 다해 부모님을 모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슬픔으로 예를 다하였다. 장례를 치를 때 권세가에서 소송을 걸어 무려 10년 동안 시달렸는데, 결국 주인이 보석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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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시복(金始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시복은 본관이 함창(咸昌)이며, 자는 성지(聲之), 호는 구정(龜亭)이다. 형조판서 김남중(金南重)의 후손이다. 1778년(정조 2)에 태어나 열 살에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통달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후하며 강직하고, 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갑작스럽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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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중빈(仲賓), 호는 성와(省窩). 김재주(金載周)는 1756년(영조 3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효성스러워서 어릴 때부터 혼정신성(昏定晨省)하는 효를 어김없이 다하였다. 7년간 병든 아버지를 모시면서 약이란 약은 다 구해서 올렸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버지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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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있는 김재주(金載周)의 효행을 기리는 비. 조선 영조 때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에 거주하던 효자 김재주는 병환 중의 아버지를 7년간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묘소를 오가며 살피고 애통해 하였다. 천하의 효자로 이름을 내고 세상을 뜨니, 조정에서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추증하였다. 이에 후손들과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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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현(士見), 호는 귤은(橘隱).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친아버지는 김성두(金星斗), 친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며, 양아버지는 김문두(金文斗), 양어머니는 강성 문씨(江城 文氏)[남평 문씨]다. 김현주(金顯周)는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나, 훗날 진교면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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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 저녁에 달집을 태우면서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풍습. 달집태우기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대나무로 기둥을 세운 후 생솔가지나 나뭇더미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으로 문을 낸 달집을 짓고 달이 떠오르면 불을 놓아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이를 달집그을기, 달맞이, 달집불, 달불놀이, 달끄실르기, 망우리불[망울이불], 달망우리, 망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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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토봉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덕암사는 1972년에 정갑용 보살이 토봉산 지역에 머무르며 기도하면서 창건하였고, 계속해서 여러 승려가 거쳐 가면서 법당과 요사채를 건축하였다. 주지 동곡(東谷)은 일붕 서경보에게 출가하였으며, 1990년부터 미얀마와 스리랑카, 인도 등지에서 수행하였다. 그 경험을 살려서 덕암사를 찾는 불자들에게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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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신에게 기원하는 신앙 행위. 마을 신앙은 마을 의례 문화에서 제일 잘 나타나는데, 그 범주가 대체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 의례로서 가장 사회적이고 공동적인 신앙이 당산제[동제]이고, 이외에 기우제도 마을 신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하동 지역의 마을 신앙은 일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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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민간 신앙은 교조나 종교의 시작 시기 등이 불명확하고, 고등 종교와 달리 체계적인 교리나 교단 등도 없이 오래도록 민간에 전승되어 온 신앙을 말한다. 원시 시대의 자연 숭배, 정령 숭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무속과 동제, 가신 신앙 등이 이에 속한다. 민간 신앙은 민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신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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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지역에서 오랜 옛날부터 행해 온 민중의 생활에 관한 습관을 의미한다. 때문에 민속의 가장 큰 특징은 지속성과 전승성이라 할 수 있다. 민속에는 의식주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속, 세시 풍속, 평생 의례, 민간 신앙, 구비 전승, 민속놀이 등 매우 많은 영역이 포함된다.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영남과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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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2월에 바람을 관장하는 ‘바람할매 신’에게 올리는 고사. 바람할매[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20일에 승천한다고 믿는 신령이다. 바람할매 올리기는 각 가정에서 풍재를 면하기 위해서 지내는 고사이다. 이를 하동군 하동읍에서는 풍신제(風神祭), 영등제, 지석할매 모시기, 바람 올리기 등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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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수문장을 지낸 이씨 성을 지닌 이가 거주하면서 밤이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 달동[月洞]이라 불렀는데,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밝은 달’을 박달(朴達)이라 음차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 말 서양곡면(西良谷面)으로 박달촌·봉곡촌·성치촌·세곡촌·반계촌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보면 박달리가 되었다. 개편 당시 봉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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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반계에 있는 함창 김씨 동성 마을.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에 넓적한 바위가 많아, 바위가 많은 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반계(磻溪)라 하였다. 지난날 이웃 세곡(細谷)[일명 가느실]에 속했을 때는 반계땀이었다가 행정 마을로 분리되면서 반계가 되었다. 마을 부근에 지석묘가 있고 민무늬 토기, 항아리 조각, 사기 조각 등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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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방암사는 150년 전부터 보살이 기도하던 곳이었는데, 1920년에 방암사로 등록을 하였고, 그 후 여러 승려들이 거쳐 가면서 대웅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의 불사를 하였다. 2007년부터 정각(正覺)이 주석하면서 병자를 위한 구제 활동을 하고 있다. 인법당,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방암사에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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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음력 12월 30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섣달’은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새해의 설날을 맞이하기 위한 ‘서웃달’의 준말이며, ‘그믐’은 만월의 보름달이 날마다 줄어들어 눈썹같이 가늘게 되다가 이윽고 모두 소진하여 없어진다는 순 우리말 ‘그믈다’의 명사형이다. 따라서 섣달그믐은 한 해를 다 보내는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섣달그믐을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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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서양곡면(西良谷面)의 ‘양’자와 외횡보면(外橫甫面)의 ‘보’자를 따서 양보면(良甫面)이라 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 신문왕이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하였을 때 청주(菁州)[오늘의 진주]의 한다사군(韓多沙郡)에 속한 외횡보면·서양곡면 지역이었고, 경덕왕이 한다사군을 하동군으로 개칭함에 따라 하동군 외횡보면·서양곡면 지역이 되었다. 조선 말까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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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문약(文若), 호는 석촌(石村). 판관(判官)을 지낸 여수희(余壽禧)의 9세손이다. 여수엽(余守燁)은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무척이나 효성스러워서 평소에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올렸다. 아버지가 4년간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의원이 개의 쓸개를 쓰면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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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에 있던 조선 전기의 서원. 문헌공(文獻公)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관향(貫鄕)이 하동(河東)이므로, 하동에 서원을 창건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발의하여 지역 유림과 하동 정씨(河東鄭氏) 후손들이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때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순찰사(巡察使)로 부임하여 적극적으로 서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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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존중을 시조로 하고 김태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용궁 김씨의 시조인 경숙공(景肅公) 김존중(金存中)은 고려조에 좌승선 태자소보(左丞宣太子小保)를 역임한 후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용궁(龍宮)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루었다.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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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한 도사가 마을을 지나면서 지세(地勢)를 두루 살펴보고 소 여섯 마리가 누워 있는 와우형(臥牛形)이라고 한 데서 마을 이름을 우복(牛伏)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우(牛)’자를 ‘우(愚)’자로 고쳤다. 조선 말 외횡보면의 하성사촌(下聲寺村)·상서촌(上西村)·상동촌(上東村)·차현(車峴)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차현이 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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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운암영당(雲岩影堂)은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중심 소재지에서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로 넘어가는 궁단재의 지내마을에 위치한다. 고운(孤雲) 최치원[857~?]의 진영은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최초로 봉안된 뒤, 사본들이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과 하동의 옥천사(玉泉寺) 앞 학사대(學士臺)에 안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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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운산촌(雲山村), 지내촌(池內村), 상명석촌(上鳴石村), 진암촌(陣岩村)이 양보면 운암리로 통합·개편되었다. 이때 상명석촌은 수척(水尺)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높이 140m 정도의 성지봉[일명 굴뫼]이 장암리와 운암리 경계를 이루고, 와우산이 통정리와 박달리 경계를 이루며, 서남단으로는 고전면 명교리 성평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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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운산에 있는 김해 김씨 동성 마을. 마을 뒷산인 비룡산(飛龍山)이 구름 속에서 용이 나는 형국이어서 마을 이름을 구름뫼라 하였다가 소리가 변하여 굴미가 되었다. 행정 구역 개편과 함께 마을 이름을 한자화할 때 구름뫼의 한자 표기인 운산(雲山)으로 고쳤다. 삼한 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이루어졌고, 고려 때 서양곡면의 중심 지역이었다. 조선 연산군 때 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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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지내에 있는 경주 최씨 동성 마을. 마을 앞에 있는 오래된 못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못안이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못 지(池)’자와 ‘안 내(內)’자를 써서 지내라 하였다. 조선 중기 효자로 이름을 떨친 최윤추(崔允樞)의 아들 가선대부 최상순(崔相淳)이 곤양에서 옮겨 와 정착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경주 최씨 집성촌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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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1. 16세기 하동군의 유학자를 출생 시기별로 살펴보면 우선 가장 앞선 시기의 인물로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를 들 수 있다. 조지서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로 있을 때 스승의 직책을 맡아 엄격하게 지도하다가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조지서는 연산군이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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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시징(時徵). 태조 이성계의 사위인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이기서(李麒瑞)는 1699년(숙종 2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원박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느 해 할머니가 화상창(火傷瘡)으로 고통을 받자 입으로 빨아서 치료하였다. 또 어느 땐가 어머니가 병환 중에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하늘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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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에 있는 이시분의 유허비. 이시분(李時芬)의 본관은 합천이다. 조선 시대에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를 역임하고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되었다. 치적이 많고 행적이 뚜렷한 이시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재실(齋室)을 마련하고 그를 현창하는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이시분 유허비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영계마을 마을회관에서 북서편으로 300m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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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희숙(喜淑), 호는 이효당(二囂堂). 문질공(文質公) 이예(李芮)의 후손이다. 이양윤(李陽胤)은 1704년(숙종 30)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신정마을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으며,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부모의 이름을 드날렸다. 6년간 지성으로 시묘를 살았는데, 시묘를 사는 6년 동안 서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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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1. 지리적 위치 하동군은 북위 35° 19′에서 34° 55′, 동경 127° 56′에서 127° 35′에 걸쳐있으며, 경상남도에서 가장 서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675.5㎢로서 경상남도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동서 간 28㎞, 남북 간 44㎞이다. 지리적 입지는, 북쪽으로 백두대간의 종점인 지리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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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주교천 변에 길고 큰 바위가 있어 긴바위라 하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장암(長岩)이라 하였다. 조선 말 외횡보면(外橫甫面)의 북단동(北丹洞)·우동촌(于洞村)·하장암촌[일명 아랫멸대심]·상장암촌[일명 웃멸대심]·하쌍계촌[일명 쌍계새터]·중쌍계촌[일명 쌍계중땀]·상쌍계촌[일명 쌍계웃땀]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북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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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성에 있는 용궁 김씨 동성 마을. 본디 우동(愚洞)이라 하였다가 주민들이 ‘어리석을 우(愚)’자를 꺼려 우동(牛洞)으로 고쳤고, ‘소 우(牛)’자 때문에 소가 사는 동네로 지칭되자 다시 우동(于洞)으로 고쳤다. 1988년 행정 구역상 시(市)의 동(洞)과 농어촌 마을의 동이 혼동되므로 농어촌 마을의 ‘동’을 모두 고치라는 지침에 따라 우성(牛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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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이경(彛卿), 호는 학산(學山).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명(鄭源命)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웠고, 어려서부터 가훈을 잘 이어받아 품행이 단정하였다.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었으며, 물질적 봉양도 빠뜨리지 않았다. 부모님의 병시중을 드는 7년 사이 모든 약을 다해 드리고 온갖 방법의 치료를 하였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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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효자 정원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원철(鄭源喆)은 본관이 진양(晉陽)이며, 자는 응원(應元)이고, 호는 모헌(慕軒)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정원철 효행비(鄭源喆孝行碑)는 정원철의 효행을 기릴 뿐 아니라 인륜이 무너지는 세태에 그의 행적을 보여 줌으로써 효도가 백행(百行)의 근본임을 알리기 위해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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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 있는 효열부 밀양 손씨의 정려비. 개항기인 1878년(고종 15) 무렵 정환탁(鄭煥倬)의 처 밀양 손씨는 곤궁한 가운데 남편이 병이 깊어 몸져눕자,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집안을 꾸리며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어느 날 병이 깊어진 남편이 하루를 넘기지 못할 듯하자 손씨 부인은 남편과 죽음을 함께 하겠다며 음독 자결로 목숨을 버렸는데 나이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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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산지에서 발원하여 고전면 전도리에서 고전천과 만나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금남면 고하리(古河里)에 섰던 큰 시장에 가려면 배[舟]를 이용하여 내를 건넜으므로 그곳 이름을 배다리[舟橋]라 하였고, 그 내를 주교천이라 하였다. 주교천은 양보면과 북천면의 경계가 되는 능선에서 발원하여 통정천·박달천·지례천 등의 지류를 합한 다음 양보면을 벗어나 고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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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성촌에 김씨 성을 가진 부호가 정착하면서 지내골[지금의 예성(禮城)]을 한자로 지례곡(知禮谷)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전해 온다. 조선 말 서양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모고리촌·장성촌·예동땀이 예성으로, 가락골·사기점이 가락(佳樂)으로, 구무고개·화촌촌이 화촌(花村)으로, 꽁매·만지동이 만지(晩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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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화촌에 있는 광산 김씨 동성 마을. 꽃봉오리를 뜻하는 화봉산(花峰山)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화촌이라 하였다. 화촌은 삼한 시대 이전에 형성된 마을로 여겨지며, 임진왜란 당시 광산 김씨 김장(金章)·김광(金光) 형제가 경상북도 안동에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광산 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 중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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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를 ‘동성마을’, ‘동족촌(同族村)’이라고도 한다. 즉 집성촌은 특정 성씨가 함께 모여 촌락을 이룬 경우를 말한다. 동족 마을은 조상을 같이 함으로써 비롯된 혈연관계의 주민들이 특정 지역에 한 마을을 이루어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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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 서양곡면(西良谷面) 구청촌(舊靑村)[일명 밤실]·신청천촌(新靑川村)[일명 신청내]·통정촌(桶井村)[일명 통새미골]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보면 통정리가 되었다. 마을 중앙에 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이명산을 등지고 구청마을이, 서쪽으로 퇴병산[일명 토끼봉]을 등지고 구청마을이, 동쪽으로 삼발봉 기슭에 신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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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지리산 쌍계사의 말사. 학방암(鶴芳庵)은 봉학산(鳳鶴山)에 있는 절로 ‘학이 깃든 절’이라고도 한다. 학방암의 대웅전 정면으로 849m의 금오산(金鰲山)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남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암자이다. 1974년 7월 26일 경상남도도지사가 발행한 사찰 등록증에는 이 사찰이 고려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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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에 있는 허분선(許分善)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허분선은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아버지는 허신득(許辛得)이다. 1902년(고종 39)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서 태어났다. 진양 정씨(晉陽鄭氏) 정원선(鄭源善)과 혼인하여 가난한 살림을 잘 꾸렸다. 병석에 누운 남편의 병간호와 시부모의 부양을 극진히 하였다. 허분선이 효행으로 고을 유림(儒林)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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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전통 시대에 경남 하동 지역에서 지극한 효행을 실천한 효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따라서 그와 같은 효자 중에서 특출한 행적이 있어 나라로부터 정려가 내려지거나 신이한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에 의해 칭송되어진 사실들을 우선으로 서술하였다. 하동 지역 효자들이 행한 효행의 행적을 중심된 사건에 따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