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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의 유래와 지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C020103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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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1리 마을 표지석

동원1리 일대는 역사적인 유래가 깊은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큰 사찰이 있었고, 신풍현의 치소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 만큼 동원1리 원골에는 흥미로운 지명유래가 많이 전해진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원골’이란 마을명에서 나타나는 ‘원’에 관한 전설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마을에 옛날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역원이 있어서 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지명총람』(1974년, 국어학회)에는 옛 신풍현이 있던 터이기 때문에 원골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님이 살았다’는 이야기와도 연관이 있다. 지명상으로 고려시대 향교터가 원골에 있었다거나, 원골 앞 창골도 『한국지명총람』에 진덕창이 있어서 환곡 223석을 저장하였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도 그러한 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한편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역원이 있어서 원골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고려~조선시대 역원로를 살펴보면, ‘신풍역’은 없고 공주의 일신 - 광정 - 유구로 이어지는 도로가 전부이다. 그러나 유구역신풍현에 속해 있어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군현인 ‘신풍현’의 치폐와 관련하여 원골이라는 지명유래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겠다.

그 밖에 원골마을에 있는 지명유래가 있는 동리 이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골 은 원골마을 입구 오른쪽에 위치하는 작은 골짜기로 현재 2가구만이 살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금단지를 발견한 일이 있어서 주민들은 금단지골이라고도 부른다.

창골(倉골) (마을)은 원골마을 입구 왼쪽에 있으며, 환지쌀 223석을 저장한 진덕창(賑德倉)이라 부르는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 창골 또는 창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향교골(鄕校골) (마을)은 원골 초입 부근에 있는데, 고려 때 신풍현의 향교가 있었던 마을이라 향교골 또는 향교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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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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