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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한마리로 한우농장을 일궈낸 김승태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B04010004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태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은 전통적인 벼농사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오히려 신토불이라는 힘찬 구호가 무색하리만큼 농촌의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1980년대 초 한우 한 마리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우농장을 일궈낸 사연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승진농장의 한우사랑]

내산 1리의 이장을 맡고 있는 김승태씨는 제대를 앞두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전역 할 때 즈음, 남자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과연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마음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모두가 더 잘 살아보겠다고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나가는데 나라고 못하겠는가!’ 제대를 앞 둔 젊은 혈기로 한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고향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콧날이 시큰해지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 고향에 가자.’ 고민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 소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84년 10월, 고향에 돌아온 김승태씨는 궁리 끝에 매일 우시장을 찾아 다녔다. 싸구려 송아지를 사다가 잘 키우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였다. 장날마다 우시장에 출근했다. 몇 개월 동안은 우시장에 얼쩡거리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병들고 야윈 소나 못난 송아지는 모두 김승태씨 차지였지만 그것도 가격흥정만 하다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시장 상인들도 뭔가 부족한 송아지가 있으면 ‘저기 저 사람한테 가보슈’라고 말할 정도로 우시장에서 나는 못난 송아지만 찾는 사람으로 통했다. 워낙 소 값이 떨어져서 그런 소들은 값싸게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사들인 소들을 구충제를 먹여가며 치료하고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다해 돌보았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잘 자라주는 소가 있으면 가슴 뿌듯했지만 몇 달을 버티지 못하는 소들도 있었다. 그때는 온 가족이 아파했다. 이렇게 2년이 지나자 건강한 소 12마리로 불어났다. 뭐든 열심히만 하면 헤쳐 나갈 길은 보이는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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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태 씨

[다시 일으켜 세운 한우농장]

노력한 보람도 잠시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정성껏 키워온 한우를 모두 처분하게 되었다. 그땐 텅 빈 축사만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가끔 빈 축사를 바라보면 아버지가 망연자실 서 계셨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김승태 씨는 다시 우시장에 나갔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야위고 못생긴 송아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소 값을 흥정하던 예전의 자신을 생각하며 눈물도 흘렸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키워온 노하우가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마침 10년 주기로 소 값은 다시 떨어졌고 해를 거듭할수록 텅 빈 축사는 하나둘씩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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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목장

축사에 야윈 송아지들이 몇 마리 자라고 있을 무렵 IMF가 찾아왔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소 값보다 사료비가 더 들어갔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능한데로 활용했다. 사료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풀을 베어다 먹였다. 하루에 바지게로 꼬박 4짐씩 베어야만 했다. 비가 와도 어쩔 수없이 비를 맞았다. 시골에서 소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구해왔다. 천안까지 가서 비지를 실어다 먹였고, 운임을 절약하기 위해 사료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사료를 운반해왔다. 그리고 정부의 축사지원정책이 있어서 임대토지에 축사도 새로 지었다. 지금의 축사는 바로 이때 지은 것이다. 새로 지은 축사에 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른 일반 한우농가는 번식과 비육을 동시에 하고 있었지만 김승태 씨는 경험을 바탕으로 번식 위주로 키워나갔다. 번식우를 선택하려면 조사료보다는 건초류를 많이 먹어야 암소나 송아지가 튼튼하게 잘 자란다.

2000년 즈음에는 소 값도 어느 정도 올라간 데다가 규모도 제법 커져서 일부를 출하시켜 농사지을 땅도 샀다. 그리고 그의 한우사랑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미 FTA체결로 인해 수입쇠고기가 한우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이럴 때가 바로 한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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