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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의사 허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B02020007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허임의 생애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부모는 관노와 사비였는데, 특히 부친은 악공으로 당대 최고의 피리꾼이었으며, 만년에는 거문고에도 능했던 만능 음악인이었다. 또한 학춤을 잘 추었다. 가무(歌舞)의 재능을 동시에 겸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미천한 신분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은 허임은 임진왜란이라는 변수로 인해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광해군을 모시고 침구의로, 치종교수로 전란의 상흔을 위무하여 당상관에 오르고 위성공신에 책봉되었다. 광해군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성에서 가까운 경기 중요 고을의 목민관을 역임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인생이 반전되어 관직에서 쫓겨나고 공신호는 삭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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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묘 출토 유물 -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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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묘 출토 유물 - 토기

허임은 임진왜란의 전란 속에서 공주와 깊은 연고를 지니게 되었고, 위성공신 3등에 책봉되면서 공주지역에 사패지를 하사받아 공주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허임의 후손들과 그의 제자 최우량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공주 부전동허임이 만년에 정착하여 《침구경험방》을 집필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지나온 인생을 조용히 관조(觀照)한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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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허씨 합동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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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허씨 합동묘

[실록에 나타난 허임의 침술]

허임이 내의원의 침의에 올라 지금까지도 조선 최고의 명의로 손꼽히는 허준과 함께 국왕을 치료하는 실록의 장면을 살펴보자. 선조실록은 이러한 장면을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선조실록』권178 선조 37년 9월 경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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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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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허임 관련 기사

1경 말에 상[선조]이 앓아 오던 편두통(偏頭痛)이 갑작스럽게 발작하였으므로 직숙(直宿)하는 의관(醫官)에게 전교하여 침을 맞으려 하였는데, 입직(入直)하고 있던 승지가 아뢰기를,

“의관들만 단독으로 입시(入侍)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입직한 승지 및 사관(史官)이 함께 입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국왕이) 전교하기를,

“침을 맞으려는 것이 아니라 증세를 물으려는 것이니, 승지 등은 입시하지 말라.”

하였다. 또 (승지가) 아뢰기를,

허임이 이미 합문(閤門)에 와 있습니다.”

하니, 들여보내라고 전교하였다. (허임이) 2경(更) 3점(點)에 편전(便殿)으로 들어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허준이 아뢰기를,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차례 침을 맞으시는 것이 미안하기는 합니다마는, 침의(針醫)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熱氣)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小臣)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하였다.

상이 병풍을 치라고 명하였는데, 왕세자 및 의관은 방안에 입시하고 제조(提調) 이하는 모두 방 밖에 있었다. 남영이 혈(穴)을 정하고 허임이 침을 들었다. 상이 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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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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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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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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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과 숫돌

[허임의 『침구경험방』]

허임허준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허준의 『동의보감』은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명저로 각광받고 있는데 반해 동양 최고의 침술에 관한 책인 『침구경험방』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실정이다. 『침구경험방』(1644년 초판 간행)은 우리나라 침구전문서의 효시이다. 조선 사람의 임상을 바탕으로 편찬하여 조선 의학의 창출을 선도해 나가는데 분수령 같은 역할을 한 책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침구의서는 대부분 중국 의서를 수입하여 그대로 쓰거나, 베껴서 간행하거나, 재편집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침구경험방』보다 30여 년 앞서 나온 『동의보감』도 임상의학 창출보다는 의학경전 재구성을 통한 집대성의 의미가 클 뿐이다. 반면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침구술을 정리한 침구전문서이다. 따라서 조선의 침뜸의학 서적은 허임의 『침구경험방』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임이 쓴 『침구경험방』은 어떠한 책이고 당대에는 현재와는 달리 어떠한 평가가 이루어졌는지 알아보자. 『침구경험방』의 발문을 쓴 당대의 문필가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허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태의 허임은 평소에 신(神)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평생 동안 치료한 사람은 꼽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경우도 많아 일세에 명성을 떨쳤으며 침의(鍼醫)들에게서는 으뜸으로 추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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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침구경험방』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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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침구경험방』 발문

이번에는 허임 자신이 직접 쓴 『침구경험방』의 서문을 살펴보자.

“명민하지 못한 내가 어려서 부모의 병환으로 의원 댁에서 일하면서, 오랜 세월 공부한 것이 축적되어 조금이나마 의술을 깨닫게 되었는데 지금은 늙고 허약하니 (내가 터득한) 침술의 올바른 방법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할까 근심하고 있다. 이에… 감히 스스로를 고인의 저술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평생을 고심한 것을 차마 스스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뜻을 더해서 위급함에서 구하고 생명에 활기를 되찾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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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침구경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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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침구경험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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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침구경험방』 서문

허임 자신이 직접 쓴 서문과 이경석이 지은 발문을 통해 『침구경험방』(1644)은 저자의 오랜 침술경험을 바탕으로 쓰여 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과연 효험이 있었을까. 이는 후대에 중국과 일본에서 간행된 침구의서들이 『침구경험방』을 토대로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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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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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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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필사본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정한 『침구경험방』]

이러한 사실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한 오사카 출신 의사인 산센준안(山川淳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산센준안은 조선의 『침구경험방』을 본국에 가져가서 1725년 간행하였던 것이다. 그가 쓴 서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젊은 시절 조선에 유학하였다. 면학하는 틈틈이 의인(醫人)을 접하여 자주 침구(鍼灸)가 의가(醫家)의 요체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실제로 병을 고치는데 그 효험이 가장 빠른 것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치료방법으로써 첫째가 모두 허씨(許氏)의 경험방을 배워서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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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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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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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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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경험방』 서문

허임의 『침구경험방』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 의사가 조선에 유학을 와서 느낀 침의 허임에 대한 인상은 매우 호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허임 개인의 저술이 일가를 이룰 정도로 당시 조선에서는 『침구경험방』이 널리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산센준안은 허임에 대해 “평소 중국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는 말이 정말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간 산센준안은 1725년 『침구경험방』을 간행하였다. 중국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말기 『침구경험방』을 표절하여 간행했다. 1874년에 랴오륜홍[廖潤鴻]이라는 침구의원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던 침구집성(鍼灸集成)이 실제로는 허임의 『침구경험방』 등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책은 청대(淸代)의 대표적 침구의서 중 하나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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