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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명칭의 유래, 구멍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A03010003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지영

공암마을 동쪽에는 높이가 20척에 너비가 12척, 깊이 30척 되는 공암굴이 있다. 공암이란 마을 이름도 ‘구멍 바위[孔岩]’라고 부르는 이 굴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굴 하나에 여러 가지 이야기와 설이 난무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 후기 분청사기를 만들기 위한 석회의 원산지로서 재료를 채취하느라 파여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굴의 모양이나 겉표면을 보면 돌을 떼어난 자국처럼 보이고 이 굴 근처인 학봉리에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는 것으로 보면 그 설이 맞는 듯도 하다.

이 굴에는 공암리에 입향한 고청 서기와 관련한 이야기도 전한다. 고청 서기가 이 굴에서 서울 대궐에 난 화재를 예견하고 물을 뿜어 화재를 진압했다는 이야기, 공암에 학소인 연정을 세우고 공부를 하던 시절 여름날의 더위를 피하여 공부하던 곳이라는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이야기들로 이곳은 ‘서고청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고청서기의 후손들은 이와 같은 전설을 안내판에 새겨 굴 앞에 세워 놓았다.

그밖에 풍수지리 상 계룡산이 남성산이라는 형세에 비겨 공암굴이 여성의 음부 모양을 하고 있어 성혈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때문에 무속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한데 때때로 이곳을 방문해 보면 무속인들이 소원을 빌며 사용하는 각종 인형 및 도구들이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굴 내부 벽에는 작은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들이 성혈과 관련한 흔적인지 아니면 돌을 캐내기 위해 뚫어 놓은 흔적인지 정확하진 않다. 다만 지금도 공부로 출세를 하기를 비는 사람들, 또는 무속인들이 찾고 있는 흔적을 볼 수 있어 공암굴이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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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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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굴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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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굴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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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굴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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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굴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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