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3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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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福吳氏三位孝烈旌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산35-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범 |
건립 시기/일시 | 18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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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5년 11월 -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산226-9에서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산35-7로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6월 5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31호에서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동복오씨 삼위 효열 정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산226-9![]() |
원소재지 | 동복오씨 삼위 효열 정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산35-7![]() |
성격 |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이익공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남원윤씨 종중 |
관리자 | 남원윤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동복오씨 3대 열녀의 정려.
[개설]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同福吳氏三位孝烈旌閭)는 1869년(고종 6)에 건립된 것으로, 오횡(吳竑)[1606~1626]의 처 남원윤씨(南原尹氏), 오정창(吳挺昌)[1634~1680]의 처 해주정씨(海州鄭氏), 오시원(吳始元)[1658~1673]의 처 진주유씨(晉州柳氏)의 정려를 모시고 있다.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위치]
공주 시내에서 우성면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가다가 우성면 소재지에 못 미쳐 단지리 월굴 동향 사면 도로변 오른쪽에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가 있다.
[변천]
남원윤씨는 찰방 윤형준의 딸로 할아버지는 판서 윤돈이다. 남편 오횡이 병을 얻어 후사 없이 죽자 조카였던 오정원을 양자로 삼고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에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했다고 한다. 해주정씨는 판서 정익의 딸이다. 남편인 오정창은 관찰사 오단의 아들로 숙종 대에 주요 요직을 거친 인물이다. 예송 논쟁에서 윤휴(尹鑴)의 설에 따라 예론을 주장했고, 탁남의 중용이 활발해지면서 예조판서에까지 올랐다.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오정창과 그의 아들 오시원이 정원로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이에 오정창의 부인 해주정씨와 오시원의 부인 진주유씨도 함께 자결하였다. 정조 집권 초기 남인이 복권되면서 그의 후손들이 향촌 사회에서 지위를 강화하였는데, 이러한 배경 속에 고종 연간 해주정씨와 진주유씨는 열녀로 포장되었다.
[형태]
동복오씨삼위효열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이익공 건물이다.
[현황]
정려각 내에 동복오씨 가문에서 배출한 열녀 3인의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중앙에 ‘열녀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예문관제학 오정정처 정부인 해주정씨지문(烈女 資憲大夫 禮曹判書 兼 知經筵藝文館提學 吳挺晶妻 貞夫人 海州鄭氏之門)’이란 현판이 있고, 우측에 ‘열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오확 처 증정부인남원윤씨지문(烈女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使 五衛都摠府副摠官 吳擴 妻 贈貞夫人南原尹氏之門)’, 좌측에 ‘효부 통덕랑 오시원처 공인진주유씨지문(孝婦 通德郎 吳始元妻 恭人晋州柳氏之門)’ 현판이 걸려 있는데, 현판 외에 아무런 자료가 없어서 명정 연대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공주 지역 남인 지배층이 당쟁의 여파로 어떠한 향촌 사회 활동이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