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3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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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州博約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연정길 25-3[공암리 415-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범 |
건립 시기/일시 | 17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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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12월 2일 - 공주 박약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공주 박약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공주 박약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공주 박약재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연정길 25-3[공암리 415-3]![]() |
원소재지 | 공주 박약재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연정길 25-3[공암리 415-3] |
성격 | 건조물 |
양식 | 단층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이천서씨 종중 |
관리자 | 이천서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서기가 유생을 가르쳤던 서당 건물.
[개설]
공주 박약재(公州博約齋)는 충현서원(忠賢書院)의 모태가 된 건물로 서기(徐起)[1523~1591]가 1574년(선조 7)부터 1591년(선조 24)까지 유생들을 가르치던 서당 건물을 가리킨다. 서기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지금의 공주 박약재는 1794년(정조 18)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공주 박약재는 2019년 12월 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공주 박약재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다.
[변천]
서기는 1573년(선조 6)경 공주의 공암에 터를 잡고 유생들을 가르쳤다. 서기의 명성이 널리 전해지자 공암에 찾아와 서기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공암정사를 다시 세우고 그 건물 이름을 박약재라고 불렀다. 박약(博約)이란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줄임말로 “배워서 지식을 넓히고 실행하되 예의에 맞게 하라”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서기가 죽은 이후 박약재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박약재는 한동안 폐허처럼 방치되었다가 1794년에 이천서씨 종중에서 새로 짓고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형태]
공주 박약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무출목 초익공 계통의 건축 양식을 띤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공주 박약재는 18세기 말 충청도 지역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