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3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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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退石金仁謙歌碑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범 |
건립 시기/일시 |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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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퇴석 김인겸 가비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
원소재지 | 퇴석 김인겸 가비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김인겸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일동장유가」를 지은 김인겸을 기리기 위하여 1989년 금강교 옆에 세운 비석.
[개설]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1707~1772]은 1763년(영조 39) 일본 통신사 조엄(趙曮)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의 풍속을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순국문으로 기록하였는데, 이때 지은 기행 가사가 바로 「일동장유가」이다.
[건립 경위]
「일동장유가」를 지은 지 225년이 되는 1989년 전국의 국문학자들이 발기하고 출연하여 퇴석 김인겸 가비(退石金仁謙歌碑)를 세웠다.
[위치]
퇴석 김인겸 가비는 공주시 신관동 금강철교 북단 옆에 세워져 있다.
[형태]
비석 하단에는 ‘퇴석 김인겸 가비’를 전서의 형식으로 써 놓았으며, 비석 상단에는 기문(記文)을 기록하였다.
[금석문]
퇴석 김인겸 가비의 기문에는 “오늘 선생의 인품과 유운(遺韻)을 사모하는 후진들이 정성을 모아, 생시의 선생이 옷자락 펄럭이며 건너 다니시던 이 오얏나루 언덕에 조그만 한 덩이 돌을 세워 기린다.”라고 적혀 있다. 순 오석으로 된 상단에는 작품명과, 저자가 조선통신사 서기로 사행했을 때 일본인이 그려 주었다는 저자의 초상 좌측에 「일동장유가」의 마지막 장 구절을 세로로 새겨 놓았다.
[의의와 평가]
「일동장유가」는 국문학 자료로서는 물론, 일본 통신사의 규모와 일본의 풍속 및 외교의 방법 등 한일 외교사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가사체로 된 기행문이라는 특성 때문에 서정적 가사라기보다 기행 수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