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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분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31001
한자 公州分朝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93년 12월 1일 - 광해군 공주 도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94년 2월 22일 - 광해군 홍주로 떠남

[정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임시로 설치된 조정.

[개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피난을 떠난 선조(宣祖)는, 전세가 갈수록 악화하자 자신은 요동으로 옮겨 갈 생각을 하고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에게 조선에 머물도록 하여 조정(朝廷)을 나누었다. 이 기간 광해군이 공주에 임시로 조정을 두었는데 이를 공주 분조(公州分朝)라고 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난길에 오른 선조는, 개성을 떠나 평산, 봉산, 황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하였다. 전세가 갈수록 악화하자 다시 평양을 버리고 안주를 거쳐 영변에 도착하였다. 영변에서 선조는 세자였던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며 임시로 국사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분조는 기존의 비변사(備邊司)와 호송하는 신하들을 나누어 분비변사(分備邊司)를 구성하였고, 광해군은 종묘와 사직을 받들고 일본군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국가를 부흥하기 위한 업무를 맡았다.

[내용]

1593년(선조 26) 2월, 행주산성 전투에서 대패를 당한 왜군은 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광해군은 같은 해 평안도를 순회하다가 그해 윤11월 직산에서 온양을 거쳐 유구역을 지나 12월 1일 공주에 도착하였다. 광해군은 공주에서 13일을 머물다가 떠났다. 전주의 민심을 수습하고 다시 공주로 돌아왔는데, 광해군이 정확하게 공주에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1594년(선조 27) 1월부터 2월 21일까지 50여 일간 공주에서 머무르다 홍주로 떠났다.

[의의와 평가]

광해군은 공주에 머무르면서 분조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공주가 군량과 관련하여 중요한 지역이었고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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