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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664
영어의미역 Somul Well
이칭/별칭 소우물,우정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목천길 302[목천리 6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재현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6월 5일연표보기 - 소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소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3호에서 공주시 기념물로 변경
성격 우물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관련인물 인조
둘레 21~22m 정도
깊이 2m 정도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목천길 302[목천리 656]지도보기
소유자 노흥선
관리자 노흥선
문화재 지정번호 공주시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개설]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우물이다. 한자로 ‘우정(牛井)’이라 하였으며, 소물이 위치한 곳의 행정명은 우정면이라 하였다. 우정면은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두면과 합해지며 우성면이 되었다.

공주의 정안면우성면 일대에는 인조와 관련된 유적과 설화가 다수 전한다. 인조는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해 2월 8일 궁궐을 떠나 12일에 천안, 13일에 정안면 광정, 14일에 공산성에 체류하였다가 18일에 돌아갔다. 소물과 관련된 설화도 1624년 2월 13일에서 14일 사이에 있었던 일로 추정된다. 『공산지(公山誌)』제2권 36장에 “仁祖大王……馬極駕牛間關過木洞村直一路邊之井駐蹕飮牛 命名曰牛井牛井之(인조대왕이……말이 지치고 수레를 끄는 소가 지쳤는데, 목동촌(木洞村)을 지나 길가에 있는 우물을 만났다. 임금이 소에게 물을 먹이고 이름을 명하여 우정(牛井)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공주시에서 북쪽 방향으로 6.6㎞ 정도 떨어진 목천리 월곡의 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550~600m 정도 떨어진 들판 가운데 있다.

[형태]

위쪽의 평면 형태는 모를 죽인 정사각형이고, 전체 형태는 밑은 넓고 위는 좁은 상광하협(上廣下狹)의 역사다리꼴이다.

[현황]

소물은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목천리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60~70년 전까지 소물을 식수로 이용하였으나, 5년 전쯤 주변 농경지를 정리하면서 현재 물이 마른 상태라고 한다. 공주시에서 우물터 앞에 향나무를 심고, 표지판을 세우는 등 유적지로 조성, 관리해 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소물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남하하면서 파생된 유적 중 하나이다. 소에게 물을 먹이는 흔한 장면이지만 백성들에게는 국왕의 행차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소물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우정은 공주의 지명으로 남았으며, 조선시대 우정면을 거쳐 현재 우성면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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