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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애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39
한자 蒼厓遺稿
영어의미역 Posthumous Works of Changa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김수항(金壽恒)[1629~1689]
저자 김순동(金舜東)[1898~1972]
편자 조종업(趙鍾業)|김창현(金彰顯)
간행자 어문연구학회
저술연도/일시 1972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89년 8월 30일
간행연도/일시 1989년 8월 30일연표보기
권수 3권
책수 1책
사용활자 활판인쇄
가로 17㎝
세로 25㎝
표제 蒼厓遺稿
간행처 충남대학교 어문연구회
소장처 충남대학교 도서관

[정의]

1989년에 간행된 문인 학자 김순동의 문집.

[개설]

김순동(金舜東)[1898~1972]은 가학을 전수받아 한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윤용구(尹用求)에게 서법을 익혀 명필로서 명성이 높았다. 광복 후, 국학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여 국학을 강의하였다. 6·25 동란 후 대전에 거주하며 충남대학의 창설에 기여하였고, 교수로 부임하여 한문학, 국사학, 서예를 가르쳐 많은 후학을 양성하면서 이곳 충청 지역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외가(外家)가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였던 까닭에 공주와의 인연이 있다.

부친 김영한(金甯漢)은 생부 김홍진(金鴻鎭)과 대구서씨를 모친으로 하여 공주의 공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9세 때 김석진(金奭鎭)에게 입양되었다. 또한 6대 종가(宗家) 선조의 후손인 김은동(金殷東)·김노동(金魯東)·김명동(金明東) 제씨 등이 공주의 명망 있는 인사로서 거주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공주 지역과의 출입이 매우 잦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김상헌의 6대 손이고, 공주에는 김상용의 6대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편찬/발간경위]

저자의 사후에 문인 조종업(趙鍾業)과 서예가인 조카 김창현(金彰顯)이 자료를 모으고, 어문연구학회가 주관하여 1989년 8월 30일에 3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형태]

3권 1책이며 표제는 『창애유고(蒼厓遺稿)』이다. 4·6배판 인쇄본으로서 책의 크기는 가로 17㎝이고, 세로 25㎝이다. 양장본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창애선생유상(蒼崖先生遺像)’ 사진을 두었고, 이어 문인 조종업의 간행사가 있다. 뒤에 창애유고 총목이 있고, 3권의 본문이 실려 있다. 부록에 묘표와 유묵을 실었으며, 저자의 아들 김강현(金康顯)이 발을 붙였다. 권 1에는 시 47수가 실려 있으며, 권 2에는 비명 11편, 묘갈 4편, 묘표 11편, 묘지 2편, 행장 1편, 고문(告文) 4편, 제문 2편 등을 담았다. 권 3은 서(序) 10편, 기(記) 5편, 제발(題跋) 6편, 설(說) 1편, 명(銘) 1편으로 구성되었다. 부록에 묘표, 제문(5수), 만사(9수), 수장(15수), 별시(4수), 유묵 40여 점을 실었다.

『창애유고』에는 김순동이 공주를 노래한 시가 실려 있는데, 바로 칠언율시인 「공주갑사(公州甲寺)」이다. 또한 그는 6·25 전쟁 시 대전으로 피난한 당시에 지은 시로 「다시 국학을 강의함[重講國學]」이 있다. 이 시에서, “학교는 옛 그대로 푸른 산 위에 있는데/ 똑똑한 재주 지닌 인재들 천명이나 되는구나./ 옛날 일 돌이켜 보니 아득히 꿈만 같아/ 오늘에 또 이러한 좋은 일 어찌 기약할 수 있었더냐(黌堂依舊碧山顚 濟濟英才數以千 回憶往年渾似夢 那期今日又斯筵).” 라고 하여 육영(育英)의 기쁨을 읊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창애유고』의 시문은 비록 그 작품 수는 많지 않으나, 현대까지 생존했던 문인의 글로써 전통 한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문집의 부록에 실은 저자의 유묵(遺墨)은 서예 면에서도 한층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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