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유몽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533
한자 惟夢集
영어의미역 Posthumous Works of Yum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원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전우(田愚)[1841~1922]
저자 정인창(鄭寅昌)[1862~1928]
편자 정둔(鄭鈍)
간행자 정둔
저술연도/일시 1928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961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961년연표보기
권수 2권
책수 1책
가로 18.6㎝
세로 26㎝
표제 惟夢集

[정의]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정인창의 문집.

[형태]

『유몽집(惟夢集)』은 2권 1책이다. 장정법은 선장본이다.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1㎝이고, 세로가 21.7㎝이다. 행수는 1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5자이다.

[구성/내용]

서문은 정헌태(鄭憲泰)와 정인현(鄭寅賢)이 썼고, 조카인 정둔(鄭鈍)과 양윤석(梁允錫)의 발문이 각각 1편씩 붙어 있다. 권1은 서(書) 70편, 혼서 2편, 제고문(祭告文) 18편, 서(序) 8편, 기(記) 7편, 권2는 발 8편, 설 5편, 자사(字辭) 5편, 잠(箴) 4편, 명(銘) 6편, 찬(贊) 3편, 묘지명 1편, 묘갈명 1편, 잡저 8편, 부(賦) 3편, 시 110수로 이루어져 있다.

정인창(鄭寅昌)[1862~1928]은 32세 되던 해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나아가 사제의 연을 맺은 뒤로, 스승을 부모처럼 극진히 모셨으며 스승에게 올린 서(書)가 29편에 달한다. 특히 정인창은 생면부지였던 전우와 함께 공자에게 제사 드리는 꿈을 꾼 뒤 전우의 문하에서 수학하기를 청하였다 하며 「상간재선생(上艮齋先生)」을 지었다.

또한, 스승이 운명한 뒤 10일째 밤 꿈에 스승을 만나고 이를 고하는 「고선생문(告先生文)」을 지었고, 스승의 문집을 간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점 등을 살펴보면, 정인창과 전우와의 사제 관계가 유별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정인창은 「제선생문(祭先生文)」에서 “세상을 바로잡고 군왕을 보좌할 덕이 있었으나 한 시대에 쓰이지 못하셨고 오직 성인의 학문을 계승하고 후학을 깨쳐주는 일로서 스스로 한 몸의 과업으로 여기셨으니, 선생이 계심에 우리 도가 보존되고, 선생이 돌아가심에 우리 도도 사라진다(雖匡輔之德 不見用於一時 惟繼開之功 自爲任於隻身 先生之存 斯道之存 先生之沒 斯道之沒).”라고 하며 스승을 추모하였다.

시는 110여 수로서 그리 많지 않은데 「김을 매며 두 수를 짓다(耘二首)」와 같은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첫째 수는 “두어 이랑 산 밭 씨 뿌리고 김매지 않아/ 가시넝쿨 엉키고 풀넝쿨만 구름처럼 덮였네/ 마을 노인 소를 놓아 모두 밟았지만/ 게으른 영감 부끄러워 못 들은 척 하네.(數畝山田種不耘, 荊蔓纏繞草如雲, 村叟放牛來踏盡, 懶翁自愧若無聞)”

둘째 수는 “내년 봄 다시 씨 뿌리고 일찍 김매어/ 우리 곡식 구름처럼 풍성하게 자라게 하리/ 소를 놓으려 해도 응당 안 될 것이니/ 오늘 못들은 체 함은 무슨 상관이랴.(復種明春及早耘, 須令我穀盛如雲, 雖欲放牛應不得 何傷今日若無聞)”라고 하여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삶을 읊어 독자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의의와 평가]

조선 말기 호서·호남 지역에서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종주(宗主)로 하는 학파가 이루어졌거니와, 정인창 역시 그 문하에 들어 성리학설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음이 『유몽집』을 통해 드러난다. 곧 ‘인성본선인개가이위요순설(人性本善人皆可以爲堯舜說)’에서 스승 전우의 학설을 충실히 추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