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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182
한자 鷄龍山七月七夕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Service for the Seventh Day of the Seventh Month of the Lunar Calendar in Gyeryongsan Mountain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집필자 구중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칠월칠석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7월 7일
의례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용산구곡(龍山九曲) 일대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와 용산구곡에서 칠월칠석 밤에 도교의 신봉자들이 올리는 민간 의례.

[개설]

봉우사상연구소에서는 봉우사상연구소 창립기념 제1회 학술연구 발표회를 개최하고 그를 바탕으로 2001년 4월에 『봉우사상(鳳宇思想)』창간호를 내기도 했다. 창간호에는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1900~1994]의 생애와 사상을 비롯하여 정재서의 「봉우 권태훈과 한국 도교」, 윤명철의 「봉우 선생의 사상과 고구려 정신」, 박병운의 「정신과학으로 본 봉우사상」, 조성택의 「봉우 선생의 풍수지리사상」, 안석기의 「봉우 사상의 천부경」, 정재승의 「봉우 사상의 특성-예언의 구조분석」 등의 논문과 일화로 「안자(顔子) 이야기」, 「대황조(大皇祖) 이야기」, 「삼혼칠백(三魂七魄) 이야기」, 「대도인(大道人) 이야기」, 「산신(山神) 이야기」와 「봉우선생에의 회상」 등이 실렸다. 김영복(金榮福) 역으로 「삼현수간(三賢手簡)」이 연재되기도 했다.

봉우사상연구소에서 보는 계룡산에는 동자미(東紫微) 구성(九星)의 천상(天象)이 조응(照應)하는 원혈(元穴)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도교적 믿음은 계룡구선(鷄龍九仙)의 전설에서 그 근원을 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계룡산 칠월칠석제의 3일 기간은 계룡구선의 전설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계룡구선이란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1534~1584]을 비롯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 남명(南冥) 조식(曹植)[1501~1572],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고청(孤靑) 서기(徐起)[1523~1591],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 기허당(騎虛堂) 영규(靈圭)[?~1592] 등을 꼽고 있다.

이들은 생전에 계룡산에서 자주 만났는데 칠월칠석날을 전후하여 사흘간 계룡산 수정봉(水晶峰)에서 모여 선계인들과 함께 놀았다는 것이다. 이 놀이에서의 좌장은 구봉 송익필이었다는 것이다. 송익필수정봉에서 수련하여 성도(成道)한 뒤 국조단군(國祖檀君) 이래 면면히 내려오는 국선풍류(國仙風流)의 도맥(道脈)을 중흥시킨 장본인이라 한다.

특히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중봉 조헌·제봉 고경명·기허당 영규 등의 계룡구선과 이순신(李舜臣)[1545~1598], 광해군 때의 박엽(朴燁)[1570~1623], 남명 조식의 문인 정인홍(鄭仁弘)[1535~1623], 곽재우(郭再祐)[1552~1617], 정기룡(鄭起龍)[1562~1622], 김덕령(金德齡)[1567~1596] 등이다.

계룡구선은 재야인사들로 평화 시에는 조국의 명산대천을 무리지어 찾아다니며 심신을 연마하다가 위급 시에는 목숨을 버리며 국가를 지켰다. 이러한 정신은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들과 신라의 국선(國仙) 화랑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요체는 현대정신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맥을 잇는 사람이 봉우 권태훈이라는 것이다.

[절차]

매년 음력 7월6일부터 7월 8일까지 3일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와 용산구곡(龍山九曲) 일대에서 봉우사상연구회 소속의 전국 회원들이 계룡산 칠월칠석제를 올리고 있다. 계룡산 칠월칠석제는 봉우 권태훈이 죽은 뒤부터 이루어져 2007년까지 제13회를 열었으며, 계룡산 용산구곡에서 간단한 주과포(酒果脯)로 유교식 제의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만, 절을 2배하지 않고 4배하는 점이 일반 의례와 다르다. 이런 의례는 봉우 권태훈이 죽은 뒤부터 권태훈의 제자와 동호인들이 스스로 꾸몄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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