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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132
한자 堤川里-山神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in Jecheon-ri Jinhae Villag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
집필자 최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11월 1일
의례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
신당/신체 산제당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음력 11월 1일에 지낸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제천리 진해 산신제는 수백 년 전부터 전래되어온 의례이다. 매년 음력 동짓달 초하룻날 진해를 구성하는 양지촌(양달말)과 음지촌(음달말)에서 공동으로 산신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약 5년 전에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양지촌과 음지촌 사이의 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당집 내부에는 산신도 한 점이 봉안되어 있었다. 산제당을 삼봉산으로 옮긴 적도 있으나, 한 노인이 현몽하여 꾸짖어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고 한다. 꿈에 나타난 노인은 꿈속에서 ‘오곡백과가 모이는 곳에 산제당을 모셔야 한다고’고 말했다고 한다.

[절차]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양지촌과 음지촌에서 번갈아가면서 맡았는데, 제사 후에 쌀 한 가마니 정도를 수고료로 받았다. 먼저 음력 10월 25일 유사를 정한 후 일주일을 기도해서 일정을 잡았다. 제비(祭費)는 마을 기금의 일부를 꺾어서 사용했고, 이 비용으로 떡·쇠고기·삼색실과·술 등을 마련했다. 경우에 따라서 쇠고기 대신 통돼지를 올리기도 했다.

제사 당일에는 부정한 사람은 일체 가지 못했고 주민 중에 밖에 나가서 고기를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유사로 정해진 사람은 깨끗한 사람으로, 집안에 아이들도 없는 사람 중에 골랐다. 또 마을에 초상이라도 생기면 일정을 며칠씩 뒤로 미루었다. 이렇게 유사를 정하면 제사를 지내는 곳인 산제당으로 가서 술을 붓고, 떡을 올려놓는다.

쇠고기는 생고기로 근을 재지 않고 단칼에 자른 것으로 사용했다. 과일도 일반 제사를 지낼 때처럼 과일 윗면을 자르지 않고 일체 칼을 대지 않는 것으로 올려놓았다. 제천1리제천리가 대동계라고 계를 해서 대용금을 모았으며, 제관과 유사가 축문을 읽고 밤 12시경부터 새벽 1시까지 제사를 지냈다.

[축문]

“維歲次干支一一月干支朔一日干支 獻誠薺者 洞民一同 敢昭告于 洞神之前 日畇歟古 敢有不欽 神兮至靈 降之恩成 群誠伏禱 其應如欺 護我一同 掃除疾病 六畜繁殖 五穀登豊 神明所佑 各得人和 官災雲散 口舌風飛 淸酌庶羞 洋洋威應 百福斯亭 永賴神憲 尙 饗.”

[부대행사]

산신제를 마친 후에는 다음날을 파전날이라고 해서 마을 주민을 모두 불러 산제가 무사히 지냈음을 알리는 조촐한 행사를 했다. 서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었고, 다른 특별한 행사는 없이 간소하게 친목을 다지는 정도였다.

[현황]

원래 제천1리제천2리가 합동으로 산신제를 지냈다가 주민이 많이 줄어들고 유사를 정하기도 어려워 5년 전부터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지금은 행정도시 구역으로 설정되어 몇 가구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고, 특히 전에 제를 지냈던 제관인 이장이 사망한 뒤로는 제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축문은 산제당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산제당은 오랫동안 관리하지 못해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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