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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059
한자 校洞山神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Gyo-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23 교동초등학교 뒤 향교산지도보기
집필자 조훈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
의례시기/일시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
의례장소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23 교동초등학교 뒤 향교산
신당/신체 향교산 당집|산신도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의 향교산 제당에서 마을 공동으로 치러지는 산신제.

[개설]

교동 산신제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제사이다. 교동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향교가 소재한 곳이다. 그러므로 공주의 향교 전래 의례가 비교적 많이 전해진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산신제는 교동의 주민들로 구성된 대동계에서 주관한다. 대동계의 임원은 회장, 총무, 유사, 좌상, 감사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다. 그 중 유사가 산제를 주관한다.

임원의 임기는 대체로 1년이므로 제관도 매년 새로 교체되는 셈이다. 또 유사 이외에 축관 한 명, 짐꾼 두 명을 따로 뽑는다. 제사 비용은 동계기금의 일부를 내서 사용한다. 제의에 참석하는 사람으로 결정되면 그때부터 심신을 바로 하고, 담배를 삼가며, 목욕재계하고, 제사 당일(정월 초하루)에는 개인 차례(茶禮)도 지내지 않는다. 제관의 집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의 침입을 막는다.

[연원 및 변천]

교동 산신당에 대한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공주읍 교동에 살았던 농부가 뒷산에서 나무를 하여 시장에 나가 팔았다. 그는 부지런했지만 가난한 생활이 나아지지 않자 몹시 실망하여 울적해 있었다. 이런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뒷산에 수백 년 묵은 고목이 몇 그루 있으니 그걸 베어 팔면 아주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친구의 생각으로는 나무 한두 짐을 해서 파느니 큰 나무를 베어 파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 나무들은 아주 오래된 신령스런 나무라서 함부로 베어서 장에 내다 팔면 자신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화가 미칠 것이라고 말하였다.

친구들의 말에 농부는 결정을 짓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결국 고목을 베기로 결심을 한다. 다음날 그는 산에 올라가 그 오래된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그러자 내내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더니 맑던 하늘은 이내 먹구름이 몰려오고 뇌성벽력이 치기 시작하였다. 이에 놀란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그 농부와 가족은 고목을 함부로 벤 죄 때문인지 갑작스레 병에 걸려서 죽었고, 그 마을에도 몹쓸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그 재앙을 불러온 연원을 밝혔는데, 신령스러운 고목을 벤 것 때문에 마을에 동티가 났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동 주민들은 봄·가을로 뒷산에 올라가 정성껏 제물을 차리고 산신에게 잘못을 빌며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그렇게 산신제를 치른 후에야 비로소 마을은 평안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 설화는 교동 산신제의 연원이 된다. 그리하여 지금껏 교동에서는 산제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교동 산신제가 치러지는 산제당은 교동초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향교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향교산 당집 내부에는 산신도 한 점이 봉안되어 있다. 1980년대 이전 탱화는 도둑을 맞았고, 지금의 탱화는 공주 청양군 목면에서 다시 그려온 산신 탱화라고 한다. 분실하고 다시 탱화를 걸어놓았다는 것은 여전히 마을신앙의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는 말이 된다. 교동 주민들은 이 산신당을 신성시 여기고 있다.

[절차]

제의는 분향(焚香 : 향을 태움 ) → 재배(再拜 : 절을 함) → 헌잔(獻盞 : 잔을 올림) → 독축(讀祝 : 축을 읽음) → 재배 → 소지(燒紙) → 음복(飮福 : 제사 음식을 나눔) 순이다. 이때 산제에 바쳐지는 제물은 생(生)숫소머리, 메(밥), 대추 등을 올리고, 생선포(脯)와 나물(고사리, 도라지, 숙주), 청포묵, 시루떡을 쓰고, 청수는 교동의 우물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1992년부터는 건수(乾水)가 들어 지금은 의례에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제물은 부정 타는 것을 염려해, 산에 가서 직접 장만한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축을 읽고 나서 소지를 올리면 끝이 난다.

[축문]

維歲次 壬子正月初一日丙子 幼學○○○ 敢昭告于

山神之靈 伏以 惟我洞民 各盡誠敬 推郊祀天地之禮 軆望秩山川之儀 酒果載陳 敢冀至誠至能感 粢盛克粲 庶格明之德 惟馨請祝消哭之方 黙禱降福之義 占豊穰康寧之祜 降之疫 百祥祛氣 祲之夏安 此四里

尙饗

[부대행사]

매년 정월 초하루에 산신제를 지내는데, 이 산신제의 제사 비용은 동계기금 일부를 출연한 것이다. 동계기금은 교동계원 가운데 절손자(자손 없이 사망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제사를 위해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계원 중 자손이 없이 사망한 사람들이 희사한 기금이므로 이들을 위하여 동계에서는 따로 중양절(음력 9월 9일)을 맞아 제사를 치러준다. 그 제사는 공주 소재 봉정동 묘지에서 지낸다.

[현황]

교동 산신제의 전승은 주민들의 민간신앙적인 기능으로나 교동의 단합과 친선을 위한 목적에서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산신제는 대부분 도심과 멀거나, 혹은 있다 하더라도 그 전승이 점차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동의 산신제는 도심 접근성에서도 여타 다른 산신제와 달리 도심에 인접해 있다는 특성을 띠고 있어 마을 고유의 전통 민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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