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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594
한자 孝婦成氏旌閭碑閣
영어의미역 Memorial Monument for Filial Daughter-in-Law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 64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706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 647 지도보기
소유자 오인수
관리자 오인수
문화재 지정번호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9호
문화재 지정일 1997년 6월 5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부 오몽렬의 처 창녕성씨 정려.

[위치]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오른쪽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논산 방면으로 300m 정도 더 간 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다시 300m 정도 들어가면 신기동에 이른다. 효부 성씨 정려비각은 이 마을의 오른쪽 구릉지에 북향으로 서 있다.

[변천]

효부 성씨 정려비각오몽렬의 처 창녕성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695년(숙종 21)에 명정을 받아 11년 뒤인 1706년에 건립된 것으로, 건립 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효부 성씨 정려비각 건립 후 140여 년이 흐른 1850년대에 이르러 퇴락한 정려를 후손 오시영(吳始英) 등이 중수했고, 「사적기」를 추가, 보완하였다.

100여 년 후인 1958년에 다시 중수를 하였는데, 후손 오인수(吳寅洙)가 찬한 「정문 중수기」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가문이 영세하여 정려가 훼손되었지만 돌보지 못하다가 후손 오창선(吳昌先)이 기와 수백 매를 기증하고, 오몽렬의 11세손 오석우(吳錫禹)가 자금을 내어 중수하였다고 한다.

[형태]

효부 성씨 정려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화강암 주춧돌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고, 사방에 홍살을 둘렀으며 방풍막이 있다. 건물 중앙에는 효부 성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운 화강암의 호패형 비석 1기가 있다.

비석 앞면에는 정언 벼슬을 지낸 오자화(吳子華)의 7대손인 오몽렬의 처 효부 성씨가 살던 마을임을 적었고, 효부 성씨가 정승 성준득의 후손인 참봉 성언홍(成彦弘)의 딸임을 기록하였다. 뒷면에는 증손인 오덕망(吳德望), 오덕성(吳德成), 오덕형(吳德亨)이 주도하여 비석을 건립한 사실을 적었다. 건물 안 뒤쪽에는 창녕성씨의 사적을 기록한 「사적기」가 걸려 있고, 왼쪽에는 1958년에 정려를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중수기」가 걸려 있다.

[현황]

1997년 6월 5일에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효부 성씨 정려비각은 보성오씨의 사족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로, 오몽렬의 아들인 오복립이 공주향교 『청금록』에 기록되어 있고, 오몽렬창녕성씨가 명정을 받은 사실과 오몽렬의 현손 오명채가 급복과 증직을 받은 사실이 「정려 중수기」 등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보성오씨가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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