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855
한자 韓泰東
영어음역 Han Taedong
영어의미역 Han Taedong
이칭/별칭 노첨(魯瞻),시와(是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성별
생년 1646년연표보기
몰년 1687년연표보기
본관 청주(淸州)
대표관직 사간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활동사항]

1666년(현종 7) 생원이 되었고 1669년(현종 10) 정시(庭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73년(현종 14) 정언, 1680년(숙종 6) 지평이 되었다. 1682년(숙종 8) 장령과 집의를 거쳐 교리로 있을 때 서인의 김익훈(金益勳)김석주(金錫胄) 등이 남인의 발본색원을 위하여 남인역모설을 조작하였을 때 조지겸(趙持謙) 등 소장파와 함께 그들의 흉계를 폭로하고 처형을 주장하였다가 이듬해 파직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인은 김익훈 등을 옹호하는 노장파 중심의 노론과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하는 소장파 중심의 소론으로 나뉘었다. 한태동은 1684년(숙종 10) 집의로 복직되었는데, 정직하고 신실하며 준엄(峻嚴)한 성품으로 파직과 복직을 여러 차례 거듭하였다. 1685년(숙종 11)부터 부수찬·헌납·부교리를 지냈고, 1687년 사간이 되었다. 한태동의 장인인 영일정씨 정영한(鄭榮漢)이 공산현감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처가로 인하여 공주와의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시와유고(是窩遺稿)』가 있다.

[묘소]

『공산지(公山誌)』명석묘소(名碩墓所) 조에 공주시 남부면 혈봉 아래에 묘소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