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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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방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이 사림화한 부전동 사족들은 16세기에 이르러 동계를 창설했다. 그 후 17세기에 들어서 양난, 자연재해, 이괄의 난 등과 같은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이 지역의 사족들은 하민(下民)을 포섭하는 상하합계(上下合契) 형식의 동계를 1663년에 중수하였다. 이때 중수된 동계자료는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비록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변질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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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동의 대표적인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인 강화최씨 가에는 약 30점의 고문서가 대대로 전해 오고 있다. 강화최씨는 부전동의 세거성씨이었던 김석견(金錫堅)의 사위로 입향하게 되었는데, 입향시기는 입향조 김석견의 손자 방(逄)의 출생년이 1508년(중종3)인 것으로 보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전동 강화최씨 가의 고문서로 시기가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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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동의 지세와 형국으로 보아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헌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부전동에 살았던 주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초기부터이다. 태종조에 당진감무를 지낸 예안김씨 김숙량(金叔良)이 확인가능한 부전동 최초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입향동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아마 김숙량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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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지역에 처음 뿌리 내린 강화최씨는 최덕준(崔德峻)이라는 인물에서 시작되었다. 강화최씨가 부전동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이미 부전동에 자리잡고 있던 예안김씨와의 혼인관계를 통해서였다. 즉 최덕준이 김석견(金石堅)의 사위가 되면서 강화최씨들은 공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주의 강화최씨를 일명 뜸밭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후 강화최씨들은 지금까지 내산리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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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에 언제부터 허씨들이 살았는지는 자료상의 한계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그나마 당대 최고의 대금 연주자로 알려진 허억봉과 조선 최고의 침의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허임에 대한 사료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그 내력의 편린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허임의 저술인 『침구경험방』의 서문을 살펴보면 말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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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는 과거 수백 년간 ‘뜸밭[浮田洞]’이라고 불리우던 큰 마을에 속해 있다. 뜸밭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연미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의 4개 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전동의 남쪽 끝에는 연미산과 채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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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2리에서 한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10여분을 올라가면 오래전부터 전해지고 있는 노루목전설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다. 전설의 주인공은 허씨 가문의 효자인 허흠(許欽)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다만 노루목에 있던 허지의 무덤을 이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앞에는 노루의 무덤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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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는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연미터널을 지나면 바로 우측에 길게 펼쳐져 있는 마을이다. 버스는 오전에 3번 오후에 3번씩 하루에 6번 운행하며 공주시내에서 내산·한천행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곳은 400여 년의 전통과 음악을 간직해온 마을로 예전부터 ‘뜸밭’ 또는 ‘부전동’이라 불리었다. 지금도 내산리는 부전동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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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동의 명칭을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분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후기의 기록인 「부전대동계 문서」에서 부전동을 찾을 수 있다. 이 기록의 서문에 의하면 부전동에서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마을 계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부전이라는 이름도 조선초기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뜸밭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형국론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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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대동계가 운영되어 온 모습을 살펴보면, 먼저 17세기 부전동에서 동계를 중수하는 사족은 예안김씨와 그 사위 가문인 전주이씨·강화최씨·충원지씨들이었다. 그러나 18세기말 19세기에 이르면 동계를 주도했던 예안김씨·충원지씨 등은 부전동을 떠나가고 새로이 입향(入鄕)하는 풍천임씨(豊川任氏)·평산신씨(平山申氏)·만경노씨(萬頃盧氏) 등이 부각되고 있다. 대동계의 운영주체세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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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동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약 4㎞로 정도 가서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公州市) 우성면(牛城面)의 한천리(韓川里)·내산리(內山里)·도천리(道川里)·신웅리(新熊里)의 4개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되어 있다. 본래 부전동은 ‘뜸밭 열두동네’라 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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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에서 음력 10월 초이튿날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에는 무성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여러 마을들이 위치하는데, 이를 사람들은 ‘뜸박 열두동네’라고 부른다. 여기서 ‘열두동네’란 한천리(상·중·하)·내산리(안골·경석골·동석리·중말)·도천리·신웅리·월미리·영천리(2개 마을) 등의 마을을 말한다. 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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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 마을회관 에서 안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면 4기의 비석과 만나게 된다. 1기는 이상한 모양의 돌이라 하여 괴석(怪石)이라하고 그 옆에 괴석의 내력을 담은 비석이 있다. 방형의 화강석 위해 93㎝의 높이로 세워져 있는 이 괴석은 전주이씨의 부전동 입향조인 이세장과 관련이 있다. 부전동의 전주이씨는 한재 이목이 김수손의 사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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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 정사골 뒷산에는 일명 평사할머니묘로 통하는 무덤이 있다. 묘는 정사골 뒷산 정상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산순날이라 부르고 있다. 평사할머니의 후손인 김현진 씨는 이 무덤이 여기에 있게 된 데에는 비밀스런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평사할머니로 불리는 인물은 바로 한재 이목의 처이자 이세장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남편이 무오사화로 처형당하자 어린 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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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사림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찍이 사림화에 앞장섰던 부전동민들은 근대 신학문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부전 대동계에서는 일제시기인 1920년대에 장자동학교라는 강습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 학교는 약 3년간 유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때 신식교육 교사의 월급으로 산제답을 제외한 동답재산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부전동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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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밭골의 산신제는 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계가 결성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과연 현재의 산신제는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마을 내산리를 찾아 갔다. 흔히 산신제라 하면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산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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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문은 제사를 지낼 때 음색을 갖추어 신명께 고하는 글이다. 문헌기록상 임진왜란 이전부터 부전대동계의 실시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사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봉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전동에 전해오는 산제문은 기해년 음력 11월 겨울[己亥仲冬]에 미산(美山)이라는 사람이 베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산제문은 총 52구 20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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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현(崔光鉉)[1795~1872]은 강화최씨로 공주 부전동에 입향한 덕준(德俊)의 13대 손으로 자(字)는 성약(聖若)이다. 최광현의 이름이 족보에는 최광현(崔光鉉)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44세 때의 시권에서부터 70세 때의 시권까지 최광현(崔光顯)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족보가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최광현이 사마시 제술과에 입격한 초시는 1864년 7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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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의 창설당시에는 주자를 주향으로 석탄 이존오·한재 이목·동주 성제원을 배향하였다. 1628년에는 고청 서기를 별사에 제향하였으며, 효종조 중봉 조헌을 시작으로 사계 김장생,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 4인을 추향하였다. 처음부터 배향된 배향인물 3인의 행적과 배향동기는 다음과 같다.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341-1371]는 고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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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에는 오래전부터 강화최씨(江華崔氏)가 살고 있다. 이 강화최씨는 죽산에 거주하던 최순(崔淳)의 셋째 아들인 덕준(德峻)이 예안김씨의 사위가 되면서 전주이씨의 뒤를 부전동에 입향하였다. 그런데 이 최덕준의 고손자인 최우량은 허임에게서 침술을 배워 유명해졌다. 최우량[1599~1671]은 강화최씨 족보에 벼슬이 부사과(副司果, 종6품)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