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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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제작된 공주목의 지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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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남정네들이 놀이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던 민요. 각설이 타령의 본 고장답게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일원에는 각설이 타령과 유사한 노래들이 다수 전승된다. 「뒷동산에 개박달나무」는 남정네들이 부를 때는 동살풀이 가락으로 부르고 여인들이 부를 때는 약간 느리고 흥겨운 굿거리와 유사하게 부른다. 남정네들이 부르는 「나가구 타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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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구치(鳩峙)고개가 뚫리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짐에 따라 구치(鳩峙)라 부르던 것을 아홉 내[川]가 합하는 곳이라 하여 구계(九溪)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구수동(九水洞) 일부가 통합되어 구계리가 되었고,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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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헌(金秉憲)은 1880년(고종 17) 1월 17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터에서 황병주(黃秉周)·이정춘(李正春) 등과 같이 장날에 모인 500여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 주동자인 황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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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高麗) 때부터 노씨(盧氏)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여 노동(盧洞)이라 하였다고도 하며, ‘갈대 노(蘆) 자’를 사용하여 ‘갈대[蘆]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의 ‘노동(蘆洞)’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천석동(千石洞)과 세동(細洞)이 통합되어 노동리가 되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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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녹문리(鹿文里)와 장천리(長川里)에서 ‘녹(鹿)’자와 ‘천(川)’자를 따 ‘녹천(鹿川)’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녹문리·성주리(聖住里)·상장천리(上長川里)·하장천리(下長川里)·목촌(木村)의 일부가 통합되어 녹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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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산악(山岳)에 바위가 있고 당(堂)이 있어 당곡(堂谷)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덕암리(德巖里)와 당곡리(堂谷里)에서 ‘덕(德)’자와 ‘곡(谷)’자를 따 ‘덕곡(德谷)’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덕암리·당곡리가 통합되어 덕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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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마을에 와서 좌우를 살펴보니 남쪽은 오룡쟁주(五龍爭株), 북쪽은 괘등(掛燈), 동쪽은 복호(伏虎), 서쪽은 선인격고(仙人擊鼓)의 형상이었다 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 물이 많지 않아 용이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여 그 물을 동해에서 끌어 온다는 말대로 마을 명칭을 도화동(桃花洞)에서 동해(東海)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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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을과 냇물이 있다하여 만천(萬川)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만년동(萬年洞)과 이천리(梨川里)에서 ‘만(萬)’자와 ‘천(川)’자를 따 ‘만천(萬川)’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만년동과 이천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만천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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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 마다 새 소리가 울창하여 명곡(鳴谷)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명우리(鳴牛里)와 이곡리(梨谷里)에서 ‘명(鳴)’자와 ‘곡(谷)’자를 따 ‘명곡(鳴谷)’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명우리·조산소(趙山所)·이곡리·달동리(澾洞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명곡리로 개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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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선좌체(仙坐體)라 하여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이라 하는 데, 여기에 금천(錦川)이 흘러 문인들의 비단 같은 마음이 따르는 곳이라 하여 문금(文錦)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문암리(文岩里)와 금천리(錦川里)에서 ‘문(文)’자와 ‘금(錦)’자를 따 ‘문금(文錦)’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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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흰 나무로 놓은 다리가 있어 흰 다리 또는 백교(白橋)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석남리(石南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백교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백교리가 되었다. 백교리의 중부와 서부에는 각각 해발 고도 100~200m의 산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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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석담리(石潭里)와 남방리(南坊里)에서 ‘석(石)’자와 ‘남(南)’자를 따 ‘석남(石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석담리·수촌리(水村里)·남방리·신하리(新下里)·백교리(白橋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석남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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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교회법상의 성당은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거룩한 건물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본당(parish, 신부가 상주하는 지역 신자들의 공동체) 혹은 천주교(Catholic church)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공주 지역의 성당은 1897년 5월 8일에 설립된 공주본당(公州本堂)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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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가는 골짜기에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세동(細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구수동(九水洞)의 일부가 통합되어 세동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가 되었다. 세동리의 동부와 서부로는 각각 해발 고도 200~500m의 산지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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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대리(新垈里)와 달동(達洞)에서 ‘신(新)’자와 ‘달(達)’자를 따 ‘신달(新達)’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신대리와 달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신달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신달리가 되었다. · 신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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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리(新里)와 월영리(月影里)에서 ‘신(新)’자와 ‘영(影)’자를 따 ‘신영(新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신리·팔십리(八十里)·월영리·수촌리(水村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신영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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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의 높은 산이 연(蓮)꽃 형세이므로 연(蓮)마루 또는 연종(蓮宗)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구수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연종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가 되었다. 연종리의 동부와 서부·남부로는 각각 해발 고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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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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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유구역(維鳩驛)이 설치되었고, 마을 뒷산이 비둘기 모양이므로 비득재 또는 유구(維鳩)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역리(驛里)·풍기리(豊基里)·창촌(倉忖)·남방리(南坊里)·석담리(石潭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유구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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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집성촌. 공주시의 다른 면들에 비해 유구읍의 동족마을은 현저히 적은데, 이는 유구읍이 조선시대부터 양반의 고장이 아닌, 역이 있던 상권과 교통이 발달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920년에 조사, 발간된 『조선의 성』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여기에 신하면 동족마을로 노동리의 경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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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현(李升鉉)은 1878년 10월 4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날 천도교인(天道敎人) 황병주(黃秉周)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에 유구 장터에 모인 군중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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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커다란 선돌이 있어 선돌 또는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神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서모리(西牟里)가 통합되어 입석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가 되었다. 입석리의 동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200~300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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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추동(秋洞)과 계봉리(鷄鳳里)에서 ‘추(秋)’자와 ‘계(鷄)’자를 따 ‘추계(秋鷄)’가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신상면 추동·계봉리·평촌(坪村)이 통합되어 추계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가 되었다. 추계리의 유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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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탑산리(塔山里)와 소곡리(小谷里)에서 ‘탑(塔)’자와 ‘곡(谷)’자를 따 ‘탑곡(塔谷)’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탑곡리(塔谷里)와 소곡리(小谷里)가 통합되어 탑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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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병주(黃秉周)는 1884년(고종 21) 11월 2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천도교 신자인 황병주는 1919년 3월에 교주인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체포된 사실을 알았으며, 고향인 공주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의 충청남도 공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