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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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었던 대통사(大通寺)를 짓게 된 유래 이야기. 「대통사 연기 전설」은 절의 건립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대통사는 526년(백제 성왕 4)에 창건된 사찰로 그 터가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의 봉황산에 남아 있다. 대통사에 대하여 『삼국유사』흥법조에는, “대통 원년, 즉 성왕 4년에 중국 양나라의 황제를 위해서 ‘대통사’라는 절을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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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환경은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비슷한 속성을 지니며,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갖는 자연적, 인문사회적 배경에 따라 마치 사투리와도 같은 삶의 모습이 그들의 독특한 생활 환경에 투영되고, 이것이 확대된 도시의 모습은 그들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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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웅천주에 설치되었던 지방 군사 조직. 통일신라시대 지방 군사 조직인 10정(十停)은 삼국시대의 정제도를 계승하여 확대된 영토를 9주로 구획하는 과정에서 설정된 제도이다. 10정은 통일신라의 구주(九州)를 기준으로 하여 지방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지인 주치(州治)에 가까운 곳에 설치되었다. 음리화정(音里火停)·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거사물정(居斯勿停)·삼량화정(參良火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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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의 웅주는 940년(태조 23) 공주(公州)로 개명되었다. 당시 전면적인 주(州)·부(府)·군(郡)·현(縣)의 명칭 개정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오늘날의 이름인 공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고려 초기에 공주도호부가 되었다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이 있으나 정사인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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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금강의 옛 나루터. 공주 고마나루는 한 어부가 인근 연미산(燕尾山)의 암곰에게 잡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도망가 버리자 그것을 비관한 암곰이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나루라고도 한다. 백제 웅진기의 지명인 고마나루는 한자로 웅진(熊津)이라 썼으며, 4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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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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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년(헌덕왕 14) 웅천주에서 김헌창이 일으킨 난. 김헌창(金憲昌)[?~822]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宣德王) 6년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780년(혜공왕 16)에 일어났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 덕에 아들 김헌창은 정부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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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남아 있는 절 터. 사지(寺址)는 과거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찰이었으나 기둥을 포함한 사찰의 상부구조가 멸실되고 기단, 초석, 적심시설 등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사찰의 터를 말한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지(寺址)가 남아 있다. 백제시대 공주에는 흥륜사, 대통사, 수원사, 옹산사 등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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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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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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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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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통일신라시대 지방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은 신라 중대에 귀족 세력의 부상으로 전제 왕권이 흔들리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전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 개혁을 시도하여 신라 문화의 절정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 시기 왕권 강화책의 하나로 전국의 지명에 대한 대대적인 개명 작업이 이루어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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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이래 현대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방 행정 체제. 현재의 공주시는 충청남도 2시 15군의 하나로, 1읍 10면 6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 도농 복합 형태의 시가 설치되면서 종전의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64년간 백제의 왕도에 해당하였고, 고려시대부터 계수관 고을로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