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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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川 書院 |
영어공식명칭 | Seongcheon Seowon Confucian School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계수나무길 18-47[월성리 92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종한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03년 - 성천 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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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시기/일시 | 1868년 - 성천 서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현 소재지 | 성천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924 |
성격 | 서원 |
관련 인물 |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
[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 세워졌던 서원.
[개설]
1703년(숙종 2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성천 서원(星川書院)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동춘당 송준길은 율곡과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서인[청서파(淸西派)]에 속했다. 진사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 찬선 등의 벼슬을 지냈다. 예설에 밝은 분으로 송시열 등과 뜻을 같이 했다. 공은 거창 마리면의 영승 서원과 문묘 등에 제향되어 있고, 『동춘당집』 등의 저술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지금도 월성 마을 뒤에는 초당과 비가 세워져 있다.
[건립 경위]
동춘당 송준길은 병자호란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에 북상의 월성에 와서 일시 우거한 일이 있었다. 초당을 짓고 공의 학문이나 명망을 듣고 몰려오는 후진들을 가르쳤다. 공은 월성에 와서 여러 해 동안 기거하였지만 구체적으로 몇 해인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 향토 유림에서는 성천 서원을 세워 제향했다. 처음에는 경상남도 거창군 현북 3리 오암(杇岩)에 세웠다가 뒤에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로 옮겼다. 처음 서원이 세워진 해는 숙종 계미라고 하니 1703년(숙종 29)에 해당된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계수나무길 18-47[월성리 924]에 위치했던 서원이다. 덕유 월성로를 타고 가다 월성 마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좌측으로 내계 대교가 나오며 이 다리를 건너 조금 더 진행하면 다산 초당에 진입하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다산 초당과 비가 세워져 있는 옛 성천 서원 터에 이른다.
[현황]
옛 성천 서원 터에 다산 초당과 유허비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서원으로 성천 서원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여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