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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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原泉亭 |
영어공식명칭 | Weoncheonjeong Shrine |
이칭/별칭 | 용천 서원,용천사,샘내 정자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원천1길 80[장기리 77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기용 |
건립 시기/일시 | 1588년 - 거창 원천정 원천 정사로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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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84년 - 거창 원천정 중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12년 - 용천사 건립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용천사,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2월 31일 - 거창 원천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원천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1년 - 용천사 중건 |
현 소재지 | 거창 원천정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778 |
성격 | 정자/서원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4칸[정자]|3칸[사당] |
측면 칸수 | 1칸[정자]|2칸[사당] |
소유자 | 죽산 전씨 원천공파 종중 |
관리자 | 죽산 전씨 원천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 있는 원천 전팔고가 조선 후기에 건립한 정자.
[개설]
거창 원천정은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의 문도 원천 전팔고(全八顧)[1540~1612]가 1587년(선조 20) 대를 쌓고 연못 조경을 하였으며, 1588년(선조 21)에 원천 정사(原泉精舍)로 창건하였다. 뒤에 건물이 퇴락하자 1684년(숙종 10)에 후학들이 힘을 모아 중창한 건물이다. 거창 원천정은 남명학파의 문도인 최영경(崔永慶)[1529~1590]·정구(鄭逑)[1543~1620]·김우옹(金宇顒)[1540~1603]·오장(吳長)[1565~1617]·문위(文緯)[1554~1631]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양성한 장소이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모아 대책을 논의한 사적지이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원천1길 80[장기리 778]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서북쪽 끝의 냇가에 정자가 있다.
[변천]
거창 원천정은 원천 전팔고가 1587년(선조 20)에 물가에 대를 쌓고 연못을 조경하여 개인 수양과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1588년(선조 21)에 원천 정사를 초가집으로 창건하였다. 이 무렵 원천과 가북 용산은 남명학파의 왕성한 활동으로 거창 유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중국 명군이 가조에 머물자 전팔고가 군량미를 제공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가 첨지 벼슬을, 선조는 대사헌 관직을 내렸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이후 옛 건물이 몇 칸 무너지자 1636년(인조 14)에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양쪽에 방을 한 칸씩 만들고 가운데 마루를 두 칸으로 하여 완성하고 후학 양성 장소로 사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다시 후학들이 재물을 모아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왼쪽에 마루를 두 칸으로, 오른쪽에 방을 두 칸으로 구조 변경하였다. 이때까지 정자 이름은 원천 정사(原泉精舍)였다. 1760년 간행된 『거창부 여지승람』에 거창 원천정(居昌原泉亭)이 등재된 것으로 보아 수차례 보수를 하고 18세기에 와서 거창 원천정으로 명칭을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84년 이후의 건물이며, 마루와 뒤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정자 뒤에 용천사가 있으며, 용천사는 1712년(숙종 38) 창건하여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2001년에 중창하여 형사보·류자우·전팔고·전팔급·서숙 등 5현을 배향하고 있다. 해마다 3월에 향례를 올린다.
[형태]
1588년에 원천 정사로 창건한 거창 원천정은 초가집으로 몇 칸이었는지 알 수 없다. 1636년에 목조 기와집으로 다시 지으면서 양쪽에 방을 1칸씩 만들고 가운데 마루를 2칸으로 하였다. 1684년 낡은 건물을 정면 4칸, 옆면 1칸 규모에 왼쪽 2칸은 마루, 오른쪽 2칸은 방으로 구조를 변경하여 만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루 부분과 뒤편 오른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계자 난간을 설치하여 안전성을 고려하여 건축하였다. 정자의 중방에는 서숙의 「원천 정사기」를 위시하여 임동익의 「원천 정사 중창 상량문」과 용주 조경의 「원천정」, 동계 정온의 「원천정운」 시가 걸려 있다.
부속 건물로는 3칸 대문채와 뒤편 ‘용천사’라는 사당이 있다. 용천사는 1712년에 창건하였으나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2002년에 국비로 중창하였다. 5현을 배향하고 음력 3월에 향례를 올린다. 대문채는 가운데가 대문이고 양 옆에 방을 1칸씩 두어 관리인이 기거할 수 있도록 하였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마당 왼쪽 가에 ‘사헌부 대사헌 원천 전선생 신도비’가 있다. 비문은 장악원 정 이휘령이 짓고 중추원 의관 김진식이 썼으며 전서는 초계인 정영호의 글씨다.
[현황]
거창 원천정은 1588년 원천 전팔고가 자기 수양과 후학 교육을 위하여 창건하여 조선 중기 거창 유림 문화의 중심지였다. 17세기 중창하고 18세기에 서원의 사당을 창건한 이후로는 선현 추모의 장소와 후학 양성의 공간으로 사용해 왔다. 현재는 선현 추모의 공간으로서 해마다 향례를 올리고 있다. 정자 앞에는 ‘용천 서원(龍泉書院)’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고, 서원처럼 담장을 두른 건물이 보인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맞은편에 정자가 있다. 정자는 뒤편의 용천사(龍泉祠)와 함께 평지에 지은 마을의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앞으로는 대문과 ‘사헌부 대사헌 원천 전선생 신도비’가 있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원천정은 남명학파 문인들이 학문을 논하던 조선 전기 거창 유림 문화의 중심지이자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회합을 하던 역사 유적지이다. 또한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형 정자로 정자 문화의 또 다른 단면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