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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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 白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익현 |
본관 | 수원(水原) - 경기도 수원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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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수원 백씨 거창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
세거|집성지 | 수원 백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
세거|집성지 | 수원 백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보광리 |
세거|집성지 | 수원 백씨 거창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오계리 |
묘소|세장지 | 수원 백씨 거창 세장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
성씨 시조 | 백우경(白宇經) |
입향 시조 | 백심(白沈) |
[정의]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개설]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수원(水原)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9만 8748가구, 31만 6535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원 백씨는 전국적으로 29개의 계파(系派) 및 분파(分派)가 있다.
[연원]
수원 백씨의 시조 백우경은 중국 당나라 소주 출신으로 벼슬이 첨의사(僉議事)와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자 당을 떠나 신라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불분명하여 신라 경덕왕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된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어 1세조로 한다. 거창 지역의 수원 백씨는 백장(白莊)의 후손인 정신재공파(靜愼齋公派), 백인호(白仁豪)의 후손인 별좌공파(別坐公派),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인 문경공파(文敬公派)가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거창 지역 수원 백씨 3개 파 중 정신재공파가 가장 먼저 입향했는데,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예산 현감을 지낸 백심(白沈)이 주상면 도평리로 입향하였다. 인조 20년(1642) 별좌공파 후손인 백의립(白儀立)과 백의직(白儀直) 형제가 전주에서 주상면 보광리로 들어와 살다가 백의립의 후손은 남상면 오계리로 옮겨가 정착하였으며, 백의직의 후손은 하보광 등에 정착하였다. 문경공파의 후손인 백이수가 숙종 15년(1689) 기사사화(己巳士禍)를 피해 주상면 보광리로 입향하였다.
[현황]
정신재공파는 주상면 도평리에서 470년간 터를 잡고 살아 왔다. 1934년 발간된 조선 총독부의 자료에 의하면 120가구의 수원 백씨가 도평리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동족 집성촌으로는 거창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마을이었다. 2003년 현재 거창에는 552가구 1,489명의 수원 백씨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후손들은 수원 백씨 거창 화수회를 조직하여 매년 4월 중순 도평리와 오계리, 보광리를 돌면서 총회를 열고 있다.
[관련 유적]
정신재공파 백심이 주상면 도평리 서쪽 마을 냇가 부엉 바위 아래에 지은 영귀대(詠歸臺)가 있고, 남상면 오계리에는 수원 백씨 백낙윤 처의 ‘열부 유인 밀양 박씨 사적비’가 있다. 주상면 보광리에는 회남정(回南亭)과 시조 송계공의 망제단비가 서 있다. 최근에는 주상 초등학교 밑에 ‘수원 백씨 입향조 세거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