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320
한자 鐵原上路里地硬-
영어공식명칭 Cheorwon's Heritage, Sangnori Jigyeongdajig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식
[상세정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로 227-19[상노리 627-59]지도보기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7월 1일연표보기 - 철원상노리지경다지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재지정
소재지 상노민속전수회관 -
문화재 지정번호강원도 무형문화재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무형문화재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서 전하여 오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개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서 전승되는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는 집터를 다지는 작업인 지경다지기를 민속놀이화한 것으로, 1998년 인제군에서 개최한 제16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4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 7월 1일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이를 근거로 2002년에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상노민속전수회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명예보유자 안승덕과 전수교육 조교인 서용석, 김종길, 임영준 등이 지역민을 대상으로 전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철원의 부자 마을 상노리]

철원군은 강원도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원도의 화천군과 경기도의 포천군·연천군에 인접하여 있다. 분단 이전에는 철원이 서울에서 원산까지 가는 경원선의 중간지였고, 철원역을 시발지로 하는 금강산 전기철도는 종착역인 내금강까지 116.6㎞의 거리를 운행하였다. 물론, 금강산 전기철도는 지하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는 목적으로 부설된 것이지만, 강원도 김화군 지역 학생들의 통학 기차, 그리고 금강산 수학여행 기차 등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여타 지역에는 평야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 철원군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들인 철원평야가 있다. 철원군은 현재 강원도의 김화군과 평강군 일부 지역을 편입하고 있는데, 과거에도 김화군이나 평강군에 속한 여러 마을에서는 명절이나 잔치 때면 가까운 지역의 장을 두고 규모가 큰 철원읍의 장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분단으로 경원선이 종착역인 함경남도 원산시까지 달리지 못하지만, 남북으로 갈리기 전까지만 하여도 원산에서 생선을 기차에 싣고 철원장에 오는 상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편, 동송읍은 철원군 내에서도 논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철원군 읍면의 논 면적은 철원읍 28.612㎢, 갈말읍 14.301㎢, 김화읍 11.274㎢, 근남면 9.057㎢ 등으로 동송읍의 49.816㎢보다 좁다. 동송읍의 이러한 논 면적은 철원군 전체 논 면적인 122.95㎢의 40.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에서 벼농사를 많이 짓는 까닭에 동송읍에는 예로부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집을 지을 때도 주변 마을보다 좀 크게 건축하였다.

[울력으로 도와주기]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가 마을에서 전승될 수 있었던 요인은 경제적 풍요와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집의 규모에 따라 기초공사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네 칸짜리 집을 지을 때와 열 칸짜리 집을 지을 때가 다르고, 기와집·초가집·너와집과 같이 집의 크기와 지붕의 재료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곧, 집의 규모가 작고 지붕이 가벼운 경우는 주춧돌 위에 바로 기둥을 올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제법 큰 집을 지을 때는 지반을 다지는 작업인 지경다지기를 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집이 기울게 된다. 이에 우리 선조들은 건축할 때면 먼저 주춧돌이 놓일 자리를 단단하게 다지고 나서 기둥을 세웠다. 상노리에서는 이렇듯 규모가 큰 집들을 자주 지었기에 지경다지기가 전승될 수 있었다.

상노리는 상길성·중구재·썩은오리·새청벌·동이터·사청동·샘말·행길미·연승동·등촌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마을은 대체로 집성촌으로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집을 새로 짓거나 증축을 할 때면 일가인 이웃들이 모여서 지경다지기를 하였다. 지경다지기는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얼었던 땅이 녹을 무렵인 3~4월과 초가을에 주로 행하였다. 그래야 여름 장마철 전이나 겨울 추위가 오기 전에 집 짓기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경다지기는 여러 사람이 힘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상노리에서는 지경다지기를 할 때 품갚음을 해야 하는 품앗이로 하기보다는 울력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낮에는 자신의 일을 하고 여가를 이용하여 이웃을 돕는 울력이므로 품삯이 없는데, 집주인은 늦은 밤까지 지경다지기를 하는 이들의 노고에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여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열 명에서 스무 명 남짓한 지경꾼들을 대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으로 지경다지기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새로 집을 지을 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이 나올 때까지 다져라]

지경다지기를 할 때면 낮에는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지경다지기 할 집에 모여 황덕불[화톳불]이나 횃불로 주위를 밝히고 집터를 다진다. 횃불로 주위를 밝힐 때는 사람이 들고 있기도 하였지만, 마당 곳곳에 기둥을 세워 횃불을 고정하여 놓기도 하였다. 집터를 다질 때는 지경돌이나 지경목을 사용하는데, 상노리에서는 지경목을 사용하였다. 지경목이 없을 때는 망가진 나무절구에 줄을 매서 지경다지기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여러 명이 함께 올리고 내려야 하는 지경다지기의 특성 때문에 지경목이 바르지 않으면 지경줄의 좌우 흔들림 탓에 제대로 다지지 못한다. 이에 상노리에서는 정말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큰 나무 둥치로 지경목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황덕불이나 횃불로 불을 밝히고서라도 밤에 지경다지기를 하는 까닭은 일손이 바쁜 농민들이 낮에는 농사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신(地神)이 활동하지 않는 낮에 지경을 다지면 고사를 지내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상노리에서는 집터를 닦기 전에 돼지머리와 팥시루떡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낸다. 그리고 액을 막고자 집터의 네 귀퉁이에 돌아가면서 소금을 뿌리고 쑥을 태웠다. 그다음에는 기둥이 들어설 자리에 둘레 1m와 깊이 1m 정도로 둥그렇게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나무기둥이 상하지 않도록 구리를 넣었다. 그런 다음에는 고춧가루·쑥·소금·목화씨 등을 넣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액을 막으려는 조치이다.

준비가 되었으면 본격적인 지경다지기로 들어간다. 구덩이에 돌과 모래를 섞어서 넣고 열 명 남짓한 일꾼들이 지경목에 줄을 달아 선소리꾼의 소리에 맞춰 지경목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땅을 다졌다. 지경다지기를 할 때면 한곳에서 70~80회를 다져야 제대로 다져진다고 한다. 토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만한 횟수의 지경다지기를 하여야 땅에서 물이 나오고, 지경꾼들은 땅에서 물기가 나와야 땅이 제대로 다져진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한다. 땅이 잘 다져졌으면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이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과정은 지경다지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지경다지기로 집터를 다질 때에는 힘을 모으고 노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소리를 하기 마련인데,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에서도 「지경소리」를 선후창으로 부른다. 상노리에서 지경다지기를 할 때 부르는 소리를 ‘지경소리’라고 명명한 것은 후렴구인 “에얼싸 지경이요.”에서 ‘지경’이 유의미한 음가를 가진 단어이기에 지경소리라 한 것이다. 전국의 여러 지역에는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와 같은 땅 다지는 작업에 쓰이는 소리가 분포하고 있는데, 「달구소리」·「상사소리」·「어여라차소리」·「지경소리」·「망깨소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소리들은 후렴구에 따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집터를 다지는 이 소리들 중에서 「달구소리」는 묘를 다질 때에도 불리며, 「상사소리」는 모 심을 때와 논을 맬 때, 「어여라차소리」와 「망깨소리」는 말뚝을 박을 때 등의 상황에서도 불리므로, 집터만을 다지면서 부르는 소리는 「지경소리」가 유일하며, 전국적으로도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

[집터는 명당이다]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가 1999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고 2000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될 때, 연희는 모두 일곱 마당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러한 연희 과정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의 일곱 마당은 크게 제의-지경다지기-여흥놀이, 이 세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마당인 길놀이와 횃불 입장, 둘째 마당인 터 잡기, 셋째 마당 개토제는 제의 부분에 속하고, 넷째 마당인 가래질, 다섯째 마당인 지경다지기, 여섯째 마당인 집 세우기는 지경다지기 과정에 속하며, 마지막 일곱째 마당인 놀이마당은 여흥놀이 과정에 속한다. 그런데 첫째, 여섯째, 일곱째 마당인 길놀이와 횃불 입장, 집 세우기, 놀이마당은 지경다지기 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약하다. 지경다지기 작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터 잡기, 개토제, 가래질, 지경다지기 등으로, 이 마당들이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의 중심이다.

터 잡기는 지경다지기 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지경다지기를 할 때 지관이 와서 집터의 좌향을 본 후에 기둥 자리를 마련하여 둔다. 이러할 때 지관의 모습을 상노리에서는 「터잡는소리」라 명명하여 “강원도라 금강산/ 금강산 명기가 줄줄 내려와서/ 이 자리에 좌정하고 보니/ 좌청룡 우백호가 감돌아 들어서네/ 이 자리에 주춧돌을 놓으세/ 앞산에 노적봉이 우뚝 솟았으니/ 여기는 광 터일세/ 우측을 바라보니 문필봉이 서려 있네/ 여기는 대문 터이고 좌측을 바라보니/ 장군봉이 서려 있네/ 이 자리는 성주 주춧돌을 놓으세.” 등과 같이 집터가 좋아 당대나 후손 때에 복이 닥칠 것이라는 덕담의 내용으로 소리를 한다.

개토제에서는 지관이 토지신에게 땅 파는 것을 아뢰며 집안의 안녕을 비는 축문을 읽는다. 축문 내용은 “건축고유축 기지지신 신위/ 유세차 경진구월 기축삭 이십팔일 병진/ 유학 ○○○ 감소고우/ 기지지신 택지우차 영건주택/ 금이길진 착수개기 신기보우/ 비무장애 근이주과 경전 궐거/ 상향[建築告由祝 基地之神 神位/ 維歲次 庚辰九月 己丑朔 二十八日 丙辰/ 幼學 ○○○ 敢昭告于/ 基地之神 擇地于此 營建住宅/ 今以吉辰 着手開基 神基保佑/ 俷無障碍 謹以酒果 敬展 厥居/ 尙饗].”과 같다.

가래질은 지경다지기 작업에 앞서 땅이 고르도록 일을 하는데, 이때는 선후창으로 소리를 한다. “어어 차/ 어어 차// 가래질하세/ 어어 차// 우리 모두 가래질하세/ 어어 차// 오른쪽으로 한 걸음씩/ 어어 차// 주춤주춤 나가면서/ 어어 차// 던진가래질해 보세/ 어어 차// 던진가래질할려면은/ 어어 차// 흙 뜰 적엔 허리를 굽히고/ 어어 차// 흙 나갈 적엔 허리를 젖히며/ 어어 차.”와 같이 가래질하는 요령의 내용을 사설로 구성한다.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의 중심은 땅 다지기인데, 지경목에 지경줄을 매고 나서 한 줄에 세 명씩 십이지간 방향으로 총 서른여섯 명이 지경다지기를 행한다. 이때도 선소리에 맞춰 선후창으로 「지경소리」를 부르는데, “이 땅은 어디멘고/ 에이얼싸 지경이요// 우주 안에 대한민국/ 강원도의 철원이요/ 에이얼싸 지경이요// 반만년의 우리 철원/ 에이얼싸 지경이요// 역사를 살펴보면/ 에이얼싸 지경이요// 신라국 말기 시에/ 에이얼싸 지경이요// 궁예왕의 도읍지요/ 에이얼싸 지경이요// 국호는 태봉국이요/ 에이얼싸 지경이요// 철원에 지역 보면/ 에이얼싸 지경이요// 금학산이 명산이요/ 에이얼싸 지경이요// 금학산이 높이 솟사/ 에이얼싸 지경이요// 정기는 감돌고요/ 에이얼싸 지경이요// 칠만암 고석정은/ 에이얼싸 지경이요// 우리의 자랑일세/ 에이얼싸 지경이요// 넓은 뜰 황금 파도/ 에이얼싸 지경이요// 옥토를 이루우고/ 에이얼싸 지경이요// 유유한 한탄강 물/ 에이얼싸 지경이요// 굽이굽이 치는곳/ 에이얼싸 지경이요// 기름진 이 들판에 / 에이얼싸 지경이요// 곡창을 이루우고/ 에이얼싸 지경이요// 천만년 이어 나갈/ 에이얼싸 지경이요// 우리의 철원일세/ 에이얼싸 지경이요// 아름다운 철원 땅에/ 에이얼싸 지경이요// 풍천임씨 가문에서/ 에이얼싸 지경이요// 자손만대 잘살려구/ 에이얼싸 지경이요// 터전을 정할 적에/ 에이얼싸 지경이요// 풍수님을 모셔다가/ 에이얼싸 지경이요// 좌향을 살펴보니/ 에이얼싸 지경이요// 좌청룡 우백호는/ 에이얼싸 지경이요// 화가가 그린 듯이/ 에이얼싸 지경이요.”와 같이 지역의 역사, 명승지 등을 나열하고 집터 또한 명당에 자리 잡았기에 후손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덕담의 내용으로 사설을 엮는다.

[전통을 잇는 마을]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이전 시대에 비해 급격히 빠르게 변화하기에 소위 전통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부분의 문화는 우리 곁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문화는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띠는 까닭에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어 전승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전승의 저변에는 변화에 의한 변이가 발생되며, 이것이 무형문화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현실에도 상노리에서는 전통 집터 다지기인 지경다지기를 지역의 유산으로 인식하여 지역민들에게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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