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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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琳 |
영어공식명칭 | Yoo Rim |
이칭/별칭 | 여온(汝溫),충장(忠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출생 시기/일시 | 1581년 - 유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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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유림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유림 훈련도감 초관(哨官)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1년 - 유림 이성현감(利城縣監), 이산군수(理山郡守)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유림 충청도수군절도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6년 - 유림 광주목사(廣州牧使)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유림 영변부사(寧邊府使)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유림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여 김화 백전 전투에서 승리 |
몰년 시기/일시 | 1643년 - 유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44년 - 유림 좌의정에 추증 |
부임|활동지 | 황해도병마절도사영 - 황해남도 해주시 |
부임|활동지 | 평안도병마절도사영 - 평안남도 안주시 |
부임|활동지 | 삼도수군통제사영 - 경상남도 통영시 |
사당|배향지 | 충렬사(忠烈祠)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대표 관직 | 평안도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철원 지역 출신의 무신.
[개설]
유림(柳琳)[1581~1643]은 병자호란 당시 수원 광교산 전투와 더불어 유일한 승전으로 평가되는 김화 백전 전투에서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가계]
유림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字)는 여온(汝溫),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아버지는 현감 유회(柳淮)이고 어머니는 사평(司評) 박염(朴恬)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부모가 일찍 사망하여 사촌형 유형(柳珩)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활동 사항]
유림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고, 1609년(광해군 1) 훈련도감 초관(哨官)에 제수되었다. 1611년 이성현감(利城縣監)을 거쳐 이산군수(理山郡守)를 역임하였다. 1618년 충청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였고, 이듬해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어 해주성(海州城)을 축성하였다. 이후 장흥부사(長興府使)와 남양부사(南陽府使)를 거쳐 1626년(인조 4)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있을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축조하였다.
유림은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재임 중이던 1630년 평안도 가도(椵島)에서 발생한 유흥치(劉興治) 등의 난을 평정하고 영변부사(寧邊府使)를 거쳐 1634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부총관, 포도대장, 경상좌병사 등의 내외 요직을 거쳐 1636년 다시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홍명구(洪命耈)와 함께 청나라 군대에 맞서 김화 백전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하였지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여 진군을 멈추었다. 유림은 이후 지중추부사와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43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644년 인조는 유림에게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좌의정에 추증하였다. 유림은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