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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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廉墓碣 |
영어공식명칭 | Jangryeom Tombstone[Myoga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산23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645년 12월 - 장렴 묘갈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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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장렴 묘갈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산238[성주동] |
성격 | 비[묘갈] |
양식 | 비좌원수(碑座圓首) 형태 |
관련 인물 | 장렴 |
재질 | 대리석[비신]|화강암[대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63㎝[전체 높이]|138㎝[비석 높이]|73㎝[폭]|13㎝[두께] |
소유자 | 진천장씨 종중 |
관리자 | 진천장씨 종중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장렴의 묘갈.
[개설]
장렴(張廉)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진천(鎭川)이고 아버지가 강릉대도호부사 겸 병마절도사를 지낸 장사준(張思俊)이다. 장렴은 1404년(태종 4)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청송부사(靑松府使)를 역임한 후 흡곡현령(歙谷縣令)을 지냈다. 세종 때 황영(黃永) 군수가 김화 객사가 낡아 신축해야 하는 애로가 있자 장렴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자진하여 밭 수백 정[町]을 김화현의 객사(客舍) 터로 헌납하고 스스로 나무를 베고 기와를 만들어 건물을 완공하였다. 장렴 묘갈(張廉墓碣)은 1645년(인조 23) 12월 건립되었다.
[위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삼거리에서 국도 제43호를 따라 생창리 방향으로 가면 탱크저지선 방벽이 나오고 왼쪽으로 성주동 방향 군사도 제227호가 갈라진다.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군부대 사격장이 나오고 사격장 오른쪽 끝에 장렴의 묘와 묘비가 있다.
[형태]
장렴 묘갈은 비의 머리 부분이 둥근 비좌원수(碑座圓首) 형태로 대석은 마멸이 심해 문양은 파악하기 어렵다. 전체 높이는 163㎝이고, 비석 높이는 138㎝, 폭은 73㎝, 두께는 13㎝이다. 비신은 대리석, 대석은 화강암 재질이다.
[금석문]
장렴 묘갈은 전액(篆額) ‘흡곡현령장공묘갈명(歙谷縣令張公墓碣銘)’이라고 쓰여 있다. 앞면에 ‘통훈대부행흡곡현령장공지묘(通訓大夫行歙谷縣令張公之墓)[숙인청주한씨부좌(淑人淸州韓氏祔左)]’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유명조선국 통훈대부행흡곡현령 장공지묘갈명(有明朝鮮國通訓大夫行歙谷縣令張公之墓碣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경석(李景奭)이 찬하고 심구(沈絿)가 썼으며 김경기(金京蘷)가 새겼다.
[현황]
장렴 묘갈은 묘비 앞뒤로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풍화로 인한 마모가 심하여 묘비의 글씨는 판독이 어렵다.
[의의와 평가]
장렴은 김화현 객사 터를 헌납하고 스스로 건물을 완공하여 김화현의 새로운 역사를 연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