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12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서 전개되었던 항일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에게 도착하였고, 철원 천도교 교훈 최병훈에게 200매, 김화 천도교인 채장숙에게 150매가 전달된 것이 강원도 철원 지역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가 읍내 한복판을 지나기에 서울의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
-
조선 전기 철원 지역이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편입되는 과정. 강무(講武)는 조선 시대 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 행사이다. 군사가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동원되었다. 대규모 행사를 치르는 강무장이 있는 군현은 강무장 관리에 온 힘을 쏟아야 하였고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가중되는 피해로 인하여 철원군은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관되었다. 강무장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피...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었던 도립병원. 1931년 개원한 강원도립철원의원은 철원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2층 벽돌 건물에 연면적 1,520㎡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60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었다. 철원 군민의 건강 증진과 의료혜택 확대를 위하여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설립되었다. 강원도립철원의원은 철원 군민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조선총독부의 관...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에서 철원번영회가 추진했던 강원도청 철원 이전 운동 캠페인. 철원군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한 것은 경원선 부설과 금강산 전기철도 건설이다. 철원 자체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경원선이 놓이면서 주위의 각종 산물이 모이게 되었고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상업도시로 성장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철원군이 강원도에...
-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겸재 정선의 그림 여행 따라가기. 조선 시대 선비들은 금강산에 가서 그 아름다운 풍광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최고의 풍류로 여겼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금강산 탐방객들이 몰려들어 경원선과 금강산 전기철도를 이용하여 금강산에 접근하였다. 조선 시대든 일제 강점기든 지금의 서울에서 금강산에 가려면 우선 강원도 철원 지역을 거쳐...
-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철원군과 육군 5군단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 포사격장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송호동으로 이전한 사업. 고석정 Y진지 이전 사업은 철원군 관광 이미지 제고와 관광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송호동에 새로운 훈련장을 조성하여 고석정 포병훈련장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재산을...
-
6·25전쟁 중 1951년 5월부터 1953년 휴전이 될 때까지 중부전선 강원도 철원 일대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이 중반으로 접어들고 1951년 5월부터는 휴전협정이 진행되면서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휴전 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전선이 중부전선에 고착되며 강원도 평강·철원·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 일대에 위치한 고지에서 전사자만 늘어나는 소모...
-
1946년 3월 5일 북한 지역에서 단행되었던 토지 재분배 조치. 북한 지역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입각하여 토지 재분배가 이루어졌다. 소작을 주지 않고 자작하는 농민의 토지[자작지]는 3정보[약 2만 9752㎡, 9,000평]까지 몰수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하여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리하여 철원 지역에서도 1946년 3월 5일을 기하여 토지개혁이 전격적으로 단...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금융기관의 건물 터. 금융조합은 농공은행[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하여 설립된 은행]의 보조기관으로, 1907년부터 전국 각지에 설립되어 일제 강점기 지방에 존재하였던 식민지 금융기관이다. 형식상으로는 서민들을 위한 조합이었으나 식민성, 수탈성을 가진 금융기관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당시 철원읍 시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교회. 철원 제일교회는 일제 강점기 철원 지역을 대표하는 기독교 교회로 1905년 건립되었으나, 1936년 7월 부지 3,372㎡[1,020평], 건평 654㎡[198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신축하였으며 당시 교인 수가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교인들은 일제 강점기 철원읍 3·1운동에 적...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던 경찰서. 강원도 철원군은 일제의 잔재가 스며 있는 유적과 6·25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유적이 많은 지역으로 구 철원경찰서 터는 이 둘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던 구 철원경찰서는 일제 하에서는 항일투쟁에 대한 탄압과 식민지화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해...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던 읍사무소. 6·25전쟁 전까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6번지에 있던 읍사무소로 대지 1,279㎡에 연건평 317㎡ 규모의 단층 기와집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의 행정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6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의 가구수는 4,269가구였고 인구는 1만 9693명이었으며 19...
-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에서 마을의 치안을 담당했던 민간인 조직. 국군치안대원들은 우익 청년들로 조직되었으며, 미군과 국군의 지시를 받아 마을의 질서 유지와 치안을 담당하였고, 무기를 갖추기도 했던 준군사조직이었다.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가면서 점령하는 접촉 지구였던 철원은 미군과 국군이 북진하여 인민군이 물러가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강원도 철원 지역의 역사. 1895년(고종 32) 부제(府制)가 실시됨에 따라 춘천부 철원군이었다가 다시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도제로 환원되면서 강원도 철원군이 되어 동별면, 갈말면, 서변면, 신서면, 송내면, 관인면, 북면, 어은동면, 묘장면 등 9개 면을 관할하였다. 개항기 철원에서는 의병 부대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1905년 11월...
-
일제강점기에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었던 사유 철도 회사. 1919년 쿠메 타미노스케[久米民之助]가 설립한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는 조선 최초로 전기를 동력으로 이용하여 열차를 운행하였던 철도 회사이다. 일제강점기의 철도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교두보 마련과 군사수송, 식민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는 관광을 목적으로 금강산 전기철도를 건설한 점...
-
일제 강점기 철원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모집된 금강산 탐방 현황. 일제 강점기 전국적으로 금강산 탐방단이 모집되었다. 금강산 탐방단은 모집 광고가 신문에 실렸다. 특히, 강원도 철원 지역은 경원선의 중심역이었던 철원역이 있어 금강산 탐방의 중심지였다. 금강산 탐방단 모집 광고를 보면 탐방단의 규모, 일정, 비용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일제 강점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6·25전쟁 중 1953년 6월과 7월 지금의 철원 지역인 김화에서 한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금성지구 전투는 지금의 철원군 지역이 포함된 당시 강원도 김화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금성지구 전투는 1953년 6월과 7월 금성지구 북방에 위치한 중공군이 중동부 전선에 돌출된 한국군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중공군 4개 군[54군·60...
-
조선 시대와 현대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발생한 기상이변 상황. 한반도 중심부 내륙에 위치한 강원도 철원 지역은 종종 늦여름 태풍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가끔 국지성 호우가 집중되어 커다란 피해를 입기도 한다. 철원 지역 근현대사에서 가장 컸던 홍수 피해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1996년 집중호우이다. 특히 1996년 집중호우는 1996년 7월 26~28일까지 3일...
-
조선 후기 발생한 병자호란 당시 현재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 김화 백전 전투(金化栢田戰鬪)는 병자호란 종반부인 1637년 1월 28일 남한산성을 지원하기 위하여 남진(南進)하던 평안도 근왕군(勤王軍)과 이를 차단하려는 청군(淸軍) 사이에 일어난 전투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인조 14) 12월 8일 청이 13만 병...
-
6·25전쟁 당시 김화 지역에서 인민군들이 자행한 반공 인사 78명 집단학살 사건. 수복지구인 철원 지역은 6·25전쟁 동안 수차례 점령자가 바뀌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하였다. 낮에는 한국군, 밤에는 인민군 패잔병들이 번갈아가며 마을에 들어와 상대편을 죽였다. 전체적으로 희생자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화 지역에서 발생한 반공애국순의자 피살...
-
1919년 3월 말과 4월 초 강원도 철원 지역이었던 김화에서 전개되었던 항일 만세 운동. 강원도 철원군은 경원선 철도가 읍내 한복판을 지나기에 서울의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강원도에서 가장 빠르게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천도교와 기독교 조직을 중심으로 민중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1919년 3월 2일과 3일 천도교인들이 철원군내에 「독립선언...
-
1948년 4월부터 1950년 9월 28일까지 공산 치하 철원의 김화 지구에 침투하여 반공 투쟁을 하였던 단체. 김화지구 화랑공작대는 8·15해방 이후 김화가 38선 이북 공산 정권에 속하자 남한으로 탈출하여 김화 지역 일원에 반공 활동의 거점을 구축하고 반공 투쟁을 감행하였던 단체이다. 김화 지역 북한군에 대한 군사정보와 공산당의 활동 상황, 주민들의 동태...
-
해방 직후 강원도 철원 지역을 비롯한 남한에서 토지소유권을 경작자에게 넘겨주어 경작인 보호에 중점을 두었던 개혁. 농지개혁은 1949년 6월 21일 제정·공포된 「농지개혁법」에 의거하여 1950년에 실시한 것이다. 당시 농지개혁을 하여야 했던 이유는 첫째, 8·15해방 직후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민주국가 건설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광복 당시 전체 농지 222만 6000㏊...
-
6·25전쟁 중 1951년 6월 9일부터 6월 14일까지 철원 지역 대성산 1042고지에서 한국군이 중공군을 섬멸한 전투. 대성산(大成山)[1,175m]은 6·25전쟁 이후 널리 알려진 산으로 한북정맥(漢北正脈)에 해당한다. 한북정맥은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평강군의 추가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의 강구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한북정맥은 동...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일원에 있는 철원평야의 남쪽 민통선 이남 후방지역. 철원평야는 지금으로부터 54만 년~12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 말에 철원 북방 평강 일원에 위치한 680고지와 오리산[鴨山, 454m]의 화산 폭발로 인하여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이 철원 일원의 계곡과 낮은 지역의 기반암[화강암]을 덮으면서 탄생한 용암대지이다. 당시 분출된 용암은 추가령...
-
강원도 철원에서 6·25전쟁 당시 국군을 도와 마을 치안을 담당하였던 우익 청년 단체. 해방 후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철원은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둔 뒤 북진하던 국군이 10월 10일 철원군 철원읍에 진주하자 열성 공산당원들의 간섭과 핍박에 시달렸던 철원 주민들과 대한청년단원들은 국군...
-
1955년 11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조성된 난민 정착촌.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동온동(冬溫洞)마을은 고잔벌, 고잔평, 드르니라고도 불리어 왔다. 6·25전쟁 전에는 거의 아무도 살지 않았고, 수복 이후 실향민과 제대군인, 상이용사들이 정착하면서 새로운 마을이 들어섰다. 동온동은 한겨울에도 춥지 않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5년 11월 철...
-
6·25전쟁 중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철원 지역 백마고지에서 한국군이 중공군 공격을 격퇴한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휴전회담이 난항을 겪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평야 요충지인 백마고지[395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한국군 제9사단 백마부대가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 혈전을 벌여 1만 4...
-
병자호란 김화 백전 전투에서 6·25전쟁 오성산 상감령 전역까지 철원군 김화 지역 주민들의 국난 극복사. 철원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의 길목이라 외적이 침입하거나 분단 시대에 철저하게 유린당하였다. 멀리는 삼국 시대에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100년 간격으로 번갈아 점령하였다. 6·25전쟁 중에는 1951년 봄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
강원도 평강군 봉래리와 남양리 사이에 있는 1923년 철원 지역 축조 저수지. 일제강점기 봉래호(蓬來湖) 저수지 축조는 철원군의 농업을 통한 경제적 번영의 근간이 되었다. 여기에는 식민지 시대 일제의 수탈과 착취로 인한 철원 지역 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1923년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흐르는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 상류를 막아 관개용 인공저수지 봉래호를 건설하였다. 봉래...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에 설립된 일본인 농장. 불이흥업주식회사(不二興業株式會社)는 일제 강점기 철원중앙수리조합을 설립하여 조선인 소작농들을 착취한 일본 농업회사였다. 불이흥업은 전북농장·서선(西鮮)농장·옥구농장·철원농장·군산불이농장·군산지소부 등의 6개 농장을 운영하였고, 미곡 무역과 개간, 수리 관개 일을 도맡아 하는 농업회사였다. 불이흥업은 조선총독부로부터 황무지...
-
8.15해방 이후 북한에 속한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행하여진 공산주의 강습 실태. 8.15해방 이후 삼팔선을 경계로 하여 강원도 철원군은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공산 치하에서는 마을 단위[리]로 민청, 농민회, 군중회, 여성동맹 등이 조직되어 있었다. 1주일에 5일 정도는 일과가 끝나면 그룹별로 2~3시간 정도 공산주의 강습에 참가해야 하였다. 강습 내용은 공산주의 혁명과 막...
-
일제 강점기 일제가 본토 식량 부족 해결을 위해 강원도 철원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에서 실시하였던 식량 증산 계획. 토지조사사업으로 상당히 많은 땅이 조선총독부 소유지가 되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확보된 토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하여 일본인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산미증식계획의 목표는 일본으로의 쌀 유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쌀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한국에...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의 삼부연폭포를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삼부연(三釜淵)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서 용화동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20m 높이의 커다란 폭포이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은 금강산(金剛山)으로 가던 중에 스승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만세 운동.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에서 일제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주민들이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은 각각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하였고 농업과 광업이 성행하여 경제 규모 면에서 당시 춘천과 원주에 필적할 만한 거대한 군이었다. 철원군과 김화군은 서...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일대에 이루어진 상수도 건설.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의 발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상수도이다. 옛 철원읍 시가지 중심가에서 율이리로 향하는 길의 야트막한 고개가 새우젓고개이다. 새우젓고개 바로 옆 서쪽에 철원읍 시가지 상수도의 정수장 역할을 하였던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이 있다. 당시 수도국은 금학산 골짜기인 안양골 취수...
-
강원도 철원군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우리나라의 성씨는 277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영조 때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고종 때 발행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296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0년 국세조사(國勢調査)에서는 250성, 1960년 국세조사에서는 2...
-
조선 전기 세종이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실시하였던 군사훈련 및 사냥 행사. 강무(講武)는 조선 시대 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행사였다. 국왕의 사냥 행사에는 많은 군사와 백성이 동원되기에 엄격한 명령체계가 유지되어야 했고, 사냥에는 무기까지 동원되기에 강무라고 칭하였다. 강무 의식 절차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조선 전기 왕들은 왕권 확립 및 안정과 군사력 증대를...
-
세종대왕의 강무장에서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가 되기까지 철원평야 개척과 번영의 발자취. 철원군은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로서 전국 최고의 밥맛을 자랑하는 철원오대쌀을 생산하고 있다. 철원군은 경제 활동의 80%가 농업에 의존하는 농업군이고 그중 벼농사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금의 이러한 벼농사 기반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수리조합 설립과 대대적인 철원평...
-
일제 강점기 농지개량과 식량증산 사업을 위해 강원도 철원 지역에 설치된 법인체. 수리조합은 1906년 3월 통감부가 대한제국 정부를 통해 제정한 「수리조합 조례」에서 비롯되었다. 1908년 「수리조합 설치 요강과 모범 규약」이 제정 공포되어 1908년 12월 옥구서부수리조합을 필두로 전국에 수리조합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수리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민 수탈의 대명사였다. 수리조합을...
-
강원도 철원군과 같이 6·25전쟁 전 북한에 속하였다가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접경지역. 수복 지구는 6·25전쟁 전 38선 이북 지역으로 강원도 철원군, 김화군, 화천군, 양구군, 고성군, 양양군, 인제군, 춘천시의 전부 또는 일부가 포함된다. 경기도의 연천군과 포천군 북부, 가평군 북면 일부도 해당된다. 철원군은 전체가 다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있었고 6·25전쟁...
-
1954년 11월 17일 공포된 수복 지구에 대한 행정구역 설정과 행정권 특별 조치에 관련한 법률.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은 주로 군정 아래 있는 수복 지구의 행정 지역을 변경하는 데 주안을 두었는데, 1954년 10월 21일자로 제정된 법안 내용에 수복 지구 행정 지구는 연천군만을 경기도에 두고 철원군, 김화군, 화천군, 인제군, 양구군, 고성군, 양양군 등 7개군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일대 일제 강점기 나무 땔감 시장 개설 문제. 강원도 철원군의 중심지는 철원도호부가 있었던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일대이다. 반면 지금의 철원군 중심지인 철원군청이 있는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와 상가가 밀집된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는 농토는 물론 집들이 거의 없는 두메산골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외곽 지역에는 산지가 많아 대부분 주민...
-
해방 직후 공산 치하의 강원도 철원군에서 반공 활동을 하였던 비밀결사 조직. 신한청년회는 1946년 3월 철원제일감리교회 부목사였던 김윤옥 목사가 주도하고 장흥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반공 비밀결사조직이다. 분단 초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철원 지역 주민들, 특히 철원제일감리교회와 장흥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나중에 통일될 것에 대비한 예비 모임의 성격이 짙었다. 독립운동가이자...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 심원사에 있는 석조 불상. 심원사 석조지장보살상(深源寺石造地藏菩薩像)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 심원사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불상이다. 심원사(深源寺)는 철원·연천 보개산(寶蓋山) 석대암(石臺庵)이 확장되어 형성된 절이다. 석대암은 신라 시대 720년(성덕왕 19) 사냥꾼 이순석(李順石)이 출가하여 창건하였고, 859년(헌안왕 3...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암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다리. 암정교(巖井橋)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암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다리로 철원 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량이다. 일제 강점기 번성하였던 김화군을 상징하는 다리로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암정리와 용양리 경계 화강(花江)에 1917년 총 공사비 2,800원을 들여 건설되었다. 일제 강점기 김화군에...
-
강원도 철원 지역 역사 인물인 궁예·최영·박용만에 관한 이야기. 철원군은 한반도의 중심부이고 지정학적 요충지이기에 여러 국가가 대립하는 분열의 시기에는 서로 뺏고 뺏기는 쟁패의 대상이 되었다. 삼국 시대 때 백제, 고구려, 신라가 100년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철원을 차지하였다. 철원 지역은 점령자들이 수시로 바뀌어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었다....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강원도 철원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김일성은 1949년 3월 소련을 방문하여 조·소 경제 문화 협정을 체결하고, 소련과 중국은 1950년 2월 우호 동맹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은 소련과 중국 양 후원국으로부터 원조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만반의 준비를 한 김일성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이루고자,...
-
6·25전쟁 당시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었던 수복 지구 철원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과 애환. 6·25전쟁 당시 철원 사람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반격하고 인민군들이 쫓겨갈 때 철원 주민들의 80%를 끌고 올라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열성분자들의 횡포가 싫은 사람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국군과 인...
-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철원 지역 주민들을 안전한 후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작전. 6·25전쟁 당시 철원 주민들의 이동 경로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월남한 부류로 당시 전체 철원 주민의 5% 미만이다. 두 번째가 1950년 가을 인민군들이 퇴각 할 때 북으로 올라간 부류이다. 자습당원이나 열성당원들은 이미 인민군의 전세를...
-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강원도 철원과 김화 지역에서 일제에 대항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던 인물. 강원도 지방은 한말의병(韓末義兵)의 진원지이자 웅거지였다. 철원 지역은 의병 투쟁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으나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 시기에 연기우(延基羽), 왕회종(王會鍾), 김진묵(金溱黙), 허위(許蔿) 등 의병장이 철원 지역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적성·마...
-
1946년 4월 24일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 이길리 농민들이 개최한 반공 집회.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이북이었던 철원군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어 공산 통치가 시작되었다. 공산주의자들로 인하여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길리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이길리 마을 청년들이 주역이 되어 각...
-
1946년 경 공산 치하 강원도 철원군 인목면 일대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반공 비밀결사. 애국동지회는 공산 치하 철원 주민들 중 남한을 동경하고 정세에 밝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무너뜨려 보자는 목표 아래 결성한 비밀지하조직이다. 1946년 철원군 인목면에 거주하는 박주환과 허담이 주동이 되어 인근 내문면과 마장면의 학교 교사들을 주축으로 정당과 사회단체에 속한 개인들을 9...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철원읍 일원에 있는 철원평야의 북쪽 민통선 전방 지역. 철원평야는 지금으로부터 54만 년~12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 말에 철원 북방 평강 일원에 위치한 680고지와 오리산[鴨山, 454m]의 화산 폭발로 인하여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이 철원 일대 계곡과 낮은 지역의 기반암[화강암]을 덮으면서 탄생한 용암대지이다. 당시 분출된 용암은 추...
-
6·25전쟁 중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철원 지역 저격능선에서 한국군과 중공군이 치른 전투. 저격능선 전투는 전선이 중부전선에 고착되고 고지전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42일간 김화 북방 7㎞ 지점인 저격능선에서 국군 제2사단[사단장 정일권]과 중공군 제15군이 벌인 전투이다. 저격능선 전투...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있는 병자호란 김화 백전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 근왕군 합장묘. 전골총(戰骨塚)은 병자호란 당시 1637년 1월 28일 김화 백전(柏田) 전투에서 평안도관찰사 홍명구 군대가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 전사한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묘(墓)이다. 김화 백전 전투 지휘관이었던 홍명구가 전사한 것을 보면 홍명구의 휘하에 있던 군사...
-
1924년 조선총독부가 철원평야 개발을 위해 전국에서 소작민들을 이주시킨 사건. 조선중앙수리조합이 결성된 후 저수지를 만들고 새로운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1924년 조선총독부는 철원평야 개척과 소작을 담당할 노동자들을 전국으로부터 대거 모집하여 이주시켰다. 조선총독부에서는 1,500호의 조선인 노동자를 철원으로 대거 이주시켜 조선...
-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 정자연의 풍광을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정자연(亭子淵)은 남방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남한 지역 한탄강의 최상류이며, 주상절리 절벽과 강물, 그리고 강변의 푸른 숲이 어우러진 곳이다. 정연(亭淵)은 조선 광해군(光海君)[1575~1641]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던 월담(月潭) 황근중(黃謹中)[1560~1633] 때문...
-
1949년 공산 치하 철원에서 남침 전쟁 준비를 위하여 행하여진 전방위 군사훈련과 인민군 강제징집. 6·25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부터 북한은 인민유격대를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고 인민들에 대한 군사 훈련과 징집을 강화하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북한 인민에 대하여 1948년까지는 만 17세부터 50세까지의 전 남성 대상으로 직장에서 일하면서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강원도 철원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지방행정 조직은 1413년(태종 13)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관찰사(觀察使)[종2품]를 두고, 그 밑에 유수부(留守府) 1개, 부(府) 6개, 대도호부(大都護府) 5개, 목(牧) 20개, 도호부(都護府) 74개, 군(郡) 73개, 현(縣) 154개를 두었다. 이에 따라 철원은 도호부가 되었고 관원으로는 부사(府使)[...
-
조선 시대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지진 상황. 자연재해 중 지진(地震)은 지각이나 상부 맨틀층이 충돌하거나 급격하게 이동할 때 진원에서 나온 지진파의 진동을 가리킨다. 즉,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지표로 나와 땅이 갈라지며 흔들리는 현상이다. 이로 인하여 지상이나 지하의 구조물이 붕괴하거나 도로나 교량이 유실되거나, 해일이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도 기상이변, 지...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개성[현재 북한 지역] 간 철도 부설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운동. 강원도 철원군 발전의 핵심 요소는 경원선 부설과 금강산 전기철도 건설이다. 철원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경원선이 설치되면서 각종 산물이 모이는 산업 및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었고 자연스럽게 정치·경제·사회적 중심지가 되었다. 강원도 철원과...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와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를 지나는 금강산 전기철도의 교량.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鐵原金剛山電氣鐵道橋梁)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와 갈말읍 정연리를 지나는 일제 강점기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이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경원선의 중심역이었던 철원역에서 출발하여 종착지인 내금강까지 총 28개의 역이 있었고 길이는 116.6㎞이다. 19...
-
1946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건립된 노동당 철원군지부 건물. 강원도 철원군은 38선 이북에 있어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동시에 소련군이 진주하였고 인민위원회가 설치되어 공산 정권 아래에 들어갔다. 철원군은 경원선의 중심역인 철원역의 소재지였고 분단 직후 일시적이나마 북강원도 도청 소재지였을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남북 분단...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농산물검사소. 철원 농산물검사소(鐵原農産物檢査所)는 일제 강점기 철원평야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 품질을 검사하던 공공기관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이다. 철원 농산물검사소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620-1번지에 있다. 철원 농산물검사소는 1936년 시멘트 벽...
-
1927년 강원도 철원지역의 일본인 농장에서 오디를 따던 조선인 여자아이를 일본인 농장주가 흉기로 상해하여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사건. 철원사형사건(鐵原私刑事件)은 1927년 여름 강원도 철원에 사는 8살 조선인 여자 아이가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수원에 들어가 오디를 따먹다가 잡혀 두 군데나 허벅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상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여 전 국민 분노가 폭발하...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수도 저수 탱크 시설.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鐵原水道局-給水塔)은 일명 ‘수도국지’라고 하며, 강원도 내 최초의 상수도 시설로 일제 강점기 구(舊) 철원 시가지 상수도 공급을 위하여 설치한 저수(貯水) 탱크 및 관리소 건물이다. 1937년 발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당시 급수 인구는 500가구에 2,500명...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문혜리를 잇는 6·25전쟁 때 완공된 다리. 강원도 철원군 북방 북한 땅에서 발원한 한탄강(漢灘江)은 철원군 한가운데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 포천·연천으로 흘러간다. 한탄강은 현무암 용암 대지가 움푹 파여 형성된 강이라 강 양쪽에 높이 20~30m 기암절벽이 발달하여 있다. 그래서 한탄강은 예로부터 주민들의 동서 교류를 가로...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얼음창고 건물. 철원 얼음창고는 1936년 식당을 경영하던 일본인이 개인 사업용으로 설치한 얼음 보관 창고이다. 겨울철마다 산명호의 얼음을 채취하여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여름철에 다른 업소에 팔며 이용하였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대부분 얼음은 천연빙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얼음은 공급적인 측면에서는 지난 겨울...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었던 소를 사고파는 시장.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서 철원역까지는 3㎞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 남북으로 신작로가 뚫려 있었다. 철원 도심이 점차 커지면서 새로운 공공시설을 건설하려면 구도심권에 설치할지 아니면 미래를 보아서 외곽의 역세권에 설치할지 논란이 일었으며, 거주민 간에는...
-
6·25전쟁 중 1·4후퇴 때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시가지를 파괴한 작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시가지는 이미 전쟁 초기에 미군 비행기 사격과 폭탄 투하로 불바다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1·4후퇴 때 미군들이 퇴각하면서 시설이 적에게 이용될 것을 염려해 노무대원들에게 모두 불질러 파괴하라고 명령하면서 도시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6...
-
조선 전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기구. 강원도 철원은 1394년(태조 3) 경기좌도에 속하였고, 1413년(태종 13)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434년(세종 16) 경기도에서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 1413년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 군 가운데 1,000호...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 단체.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은 1919년 3·1운동 후 서울에서 결성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 대한독립애국단의 강원도 지부인 철원군단으로 1919년 8월 결성되었다. 강원도의 조직을 총괄하며 애국단강원도단, 철원에서 조직되었고 철원에 본부를 두어 철원애국단으로 불렸다. 독립운동 자금 모금 및 송금 등 상해임시정부를 국...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었던 철도역.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만나는 철도역이다. 철원역은 경원선 중심역이고 금강산 전기철도 출발점이다. 1914년 9월 16일 원산에서 전 노선 개통식을 가졌는데 총연장 221.4㎞ 중 철원역에서 서울 용산까지 97.3㎞, 2시간, 원산까지는 124.1㎞, 3시간이었다. 1931년 7월 1일 개통된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
-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10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서 전개되었던 항일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서울로부터 강원도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에게 도착하였고, 철원 천도교 교훈 최병훈에게 200매, 김화 천도교인 채장숙에게 150매가 전달된 것이 강원도 철원 지역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철원 지역에서는 철원읍에서 1919년 3월 10일과 11일에...
-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던 누에고치를 수집하여 명주실을 생산하던 공장. 삼정(三井)재벌[현 미쓰이그룹]의 계열사인 종연방적(鍾淵紡績)주식회사가 세운 철원제사공장은 철원, 평강, 김화, 연천, 포천, 금성, 화천 등지에서 수집한 누에고치로 견사(絹絲)를 생산하여 미국에 수출하였던 제사공장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기업들은 우리나라 각 지방에 기업체를...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는 홍명구와 유림을 기리는 사우(祠宇) 및 터. 철원충렬사지(鐵原忠烈祠址)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는 충렬공 홍명구(忠烈公 洪命耈)[1596~1637]와 충장공 유림(忠壯公 柳琳)[1581~1643]의 위패를 모신 사우(祠宇)이자 터이다. 홍명구와 유림은 병자호란 당시 김화 백전(柏田) 전투에서 청나라 군에 맞서 큰...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에 있는 철원향교의 터. 철원향교지(鐵原鄕校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에 있는 옛 철원향교 터이다. 철원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어 6·25전쟁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철원 지역 유교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철원향교지는 2006년 7월 28일 강원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철원향교의 창건 연대는 기...
-
6·25전쟁 중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강원도 평강, 철원, 김화 지역을 잇는 삼각축 선의 지형. 6·25전쟁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인 1951년 5월부터는 전선이 중부전선에 고착되고 고지전에 집중되면서 전사자만 늘어나는 소모적인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휴전회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강원도 평강, 철원, 김화 지역을 잇는 삼각축 선을 기준으로 치열한 전투가 반복되었다...
-
6·25전쟁 중 평강·철원·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6·25전쟁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인 1951년 5월부터는 전선이 중부전선에 고착되고 고지전에 집중되면서 전사자만 늘어나는 소모적인 공방전이 지속되었다. 휴전회담은 지지부진하고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치열한 전투가 평강·철원·김화를 잇는 삼각축 선을 기준으로 반복되었다. 북으로 갈수...
-
1967년에 미국 키와니스 클럽 후원으로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지리 일대에 건설된 화전민 정착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지3리는 1965년 정부가 철원군 일대 담터, 김화, 신수리, 잠곡리 산간지역과 화천, 홍천 등지에 산재한 화전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켜 조성한 마을이다. 워낙 황폐하고 물이 없어 초기에는 농사지을 수 없었다. 정부는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
조선 전기 태종이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실시하였던 군사 훈련 및 사냥 행사. 강무(講武)는 조선시대 국왕이 직접 참여하는 군사 훈련을 겸한 사냥 행사이다. 국왕의 사냥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엄격한 명령 체계가 유지되며, 사냥에 무기를 사용함에 따라 군사훈련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강무라고 칭하였다. 강무는 의식 절차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06년(태종...
-
6·25전쟁 휴전 직후 강원도 철원의 수복 지구에서 불법적인 토지 거래를 주도한 사람들. 철원군은 6·25전쟁으로 원주민들의 70% 이상이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고향을 찾은 토박이들은 15% 내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방인 철원에 가면 주인 없는 땅이 많다는 소문이 퍼졌고,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남쪽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철원으로 몰렸다. 전쟁 중...
-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수행을 도운 한국인 노무자 부대. 6·25전쟁 중에 철원 주민들은 남으로도 북으로도 가지 못한 채 전쟁터에 남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되었고 1951년 봄, 철원 주민들은 미군의 주민 소개 작전으로 후방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경기도 포천 문하리가 철원 피난민 1차 집결지였는데, 이때...
-
한반도 중심부 철원 지역 주민들의 유사 이래 세 번에 걸친 대규모 집단 이주와 정착 이야기. 철원은 사민(徙民)의 땅이다. 궁예가 철원에 태봉국 철원성을 건설하고 도읍을 정할 때 청주 사람 1,000호를 이주시킨 이래 1,000여 년간 사민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철원평야에 향도농장·불이농장·팔랑농장을 개척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조선총독...
-
1975년부터 정부가 시책 사업으로 시행하였던 접경지역 각 시군 도읍 정비 및 환경개선 사업. 한수 이북 정돈 사업의 핵심 사업은 도읍 정비 사업이었다. 도읍 정비 사업으로 도로포장과 상가 경관 개선, 주택 신축을 하였고, 소규모 환경 개선 사업으로 주택 개량, 지붕 도색, 담장 개량, 하수구 정비 등이 실시되었다. 강원도 철원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
6·25전쟁 발발 이후 중부지방 한탄강 일대에서 발병한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전선의 유엔군 800여 명이 괴질로 사망한 사건으로 인하여 유행성 출혈열이 한반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유엔군뿐만 아니라 중공군도 병영에 괴질이 돌아 한강 이남을 넘어오지 못하였다. 그 괴질이 유행성 출혈열로 추정된다. 당시 피해가 심각하였던...
-
1999년부터 2009년까지 강원도 철원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였던 한탄강댐 건설 반대 운동.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에 산사태와 하천 범람이 잦아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반복되었다. 1999년 임진강 하류 지역 수해 방지 종합 대책으로 한탄강댐 건립을 추진하였고, 2007년 2월 착공하여 2016년 완공되었다. 한탄강댐 건설 반대운동은 강원도 철원, 경...
-
해방 이후 현재까지 강원도 철원 지역의 역사. 1945년 조국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소 열강에 의하여 38도선을 경계로 갈라졌다. 8·15 해방이 자력 아닌 연합군에 의한 해방이었기에 우리 민족의 비운과 수난의 역사는 그때부터 내재돼 있던 것이었고, 국토 분단과 사상이념의 갈등이 반세기 이상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1...
-
조선 후기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의 자모산성 근처에서 벌어진 김화 백전 전투를 소재로 하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화강백전(花江栢田)」은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완성자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김화 백전 전투 현장에 들러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김화 백전 전투(金化栢田戰鬪)는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당시 김화읍 생창리 성재산(城...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원에 있는 6·25전쟁 당시 고지전이 벌어졌던 고지.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395m] 서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한 해발 281m의 고지이다. 화살머리고지 이름은 고지 아래로 흐르는 역곡천이 곡류하면서 화살촉 모양의 하식애(河蝕崖)[하천 침식으로 만들어진 절벽]를 만들어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