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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 경기도 부천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부천 지역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수도 서울과 인접했기에 서울 방어와 탈환을 위한 공방전이 전개된 지역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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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자연 마을. ‘가운데당아래’는 당아래 길을 경계로 해서 생긴 마을명이다. ‘당아래’는 ‘당재 너머에 있는 아랫마을’이라는 뜻으로 ‘당아래’라고 했으며, ‘당아래’는 ‘양지말, 가운데당아래, 너머당아래’라고 하는 3개의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당아래’를 혹 ‘당하리’라고 표기한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가운데당아래는 당아래 고갯길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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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골짜기. 가재골은 가재를 많이 잡아 가재골이란 명칭이 붙었다고도 하지만, 그 어원은 ‘갗의골’이 ‘갗애골’로, 이것이 ‘가재골’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따라서 가재골이란 ‘갗골’로서,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겉저리를 흐르는 앞개울 상류가 ‘고비골·가재골’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이 골짜기는 고비골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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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산언덕. 갈막에서 ‘갈’은 ‘갈라진’의 뜻으로 보이며, ‘막’은 ‘메’가 그 원형으로 보인다. 대리미재하고 산언덕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부리는 산이라는 백제어이다. 벌응절리에 있는 알묏부리와 그 뜻이 같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등성이라는 뜻의 갈멧부리가 갈막부리로 발음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갈막부리는 일명 갈망아리로도 불리는 곳으로, 중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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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던 골짜기. 갓골이란 ‘갗의 골’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갓골이 나와 있지 않고 가곡현으로 가골고개으로 소개되고 있다. 갓골고개는 갓골과 고얀 마을 사이에 있는 산언덕 고개이다. ‘갗’은 가장자리를 뜻하는 말로 ‘연아봉의 맨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아름다운 골짜기를 뜻하는 가곡(佳谷)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연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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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에는 곳산면 괴안리에 속하는 가곡현으로 ‘가골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갓골은 본래 ‘[邊]’의 ‘가(가장자리)’라는 뜻으로 ‘’이 ‘갓’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골은 골짜기이다. 따라서 갓골고개는 고얀 사람들이 새장터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벼리거나 사기 위해 왕래하던 고개로 갓골 가에 있던 가파른 고개이다. 일부에서 갓(모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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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2동에 있는 고개. 거칠고개는 원종2동사무소 앞에 있던 작은 포구인 거칠개를 갈 때 이용하던 고개로 것친고개에서 유래되었다. 거칠개를 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가 바로 거칠고개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것친고개로 되어 있다. 것친의 의미를 겹친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것친을 ‘겹친’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거칠고개는 본래 ‘거츨다[荒]’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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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에는 옥산면 항동에 속하는 건지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세어에서 ‘다’는 종(宗)·건(乾)·재(裁)·부지(不知)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크다·마르다·재단하다·모르다’의 의미로 쓰인다. 『부천시사』에서는 이 ‘마르다’의 어원이 ‘’에서 온 것으로, ‘’는 고대어에서 종(宗)·동(棟)·산(山)의 의미로 ‘크고 높고 신성한 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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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던 자연 마을. 겉저리에서 ‘겉’의 어원은 ‘갗’이다. 갗이 겉으로 변한 것으로, 가장자리를 뜻한다. 곧 겉저리는 중동 벌판을 내다보는 춘지봉이 있는 춘의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준다. ‘저리’는 들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들이’가 변한 말이다. 곧 겉저리는 ‘중동 벌판을 내다보는 산 끝자락에 있는 들’이라는 뜻으로 갗들이가 갗덜이, 갗더리로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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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자연 마을. 게레울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 ‘계리월(鷄里月)’이 바뀌어 된 말로 보는 설이다. 이는 닭이 아름다운 달을 보고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한자를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둘째, ‘계리월’은 ‘게레울’의 잘못된 표기로 그 어원을 ‘골의울’로 보는 설이다. ‘골의울’이 ‘고래울’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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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원종리에 포함된 계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고대어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닭미’로 읽는 것이 옳다. 닭미는 ‘달미’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달’은 ‘달(達)’로 표기한 것으로 높다는 의미이다. ‘달’이 첫째 음절에 오면 높다는 의미이고, 뒤에 오면 산의 의미이다. 높다는 의미의 ‘달’을 훈차(訓借)한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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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고개. 계수동은 계일에서 ‘계’와 수로동에서 ‘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동으로 동의 이름을 따서 계수리고개가 되었다. 숲이 우거진 불당고개 옆으로 새로 도로가 뚫리면서 최근에 새로 생긴 고개이다. 계수리고개는 계수동에 있는 고개로 시흥시에 인접해 있다. 현재 부천과 시흥의 경계에 있는 계수동은 시흥시 지역에 가깝게 편재되어 있다. 지금은 부천과 시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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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고리울에 있는 고개. 고리울 동쪽에 있는 곰달래고개는 한자로 ‘고음월령(古音月嶺)’이라 했다. 부천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한 고개인데, 우선 ‘고음’에서 ‘곰[熊]’이 되었다. 곰은 고대어에서 ‘구마[金馬]’라고 했다. ‘구마’에서 ‘고마→곰’이 된 것인데, 족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달(達)은 ‘산(山)·고(高)’를 의미하므로 곰달은 곰이 살던 산,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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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1동에 있던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석촌면 속하는 깊은구지를 심곡리(深谷里)으로 표기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깊은구지에서 ‘깊은’은 ‘깊다’는 우리말이고, ‘구지’는 ‘곶’이 그 원형으로 ‘곶’을 ‘고지·구지·꽃’으로 발음하였다. 그러므로 깊은구지는 골짜기에서 들판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에 있어 붙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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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이 지역에 야생화가 많이 피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데, 한자로는 화곡(花谷)이라 한다. 꽃구지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삼진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꽃구지를 지나 도당동으로 가는 도로가 새로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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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내촌리(內村里)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내동이 삼정이나 약대, 도당에 비해 뒤늦게 생긴 동네임을 보여준다. 우리말로 안말이지만 동네 이름이 내촌주막과 육형제마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촌의 옛 말은 안말·안약대이다. 안쪽에 위치한 약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내촌주막은 땅 이름으로 보아 부평으로 가는 대장 한다리, 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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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넘말은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장말[중동]에서 작은 산을 넘으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넘말은 간람말이라고도 한다. 간람말은 간담말의 잘못된 표기로 가운데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간뎃말→간담말로 변하고 다시 간람말로 변하여 중리(中里)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이 되었다. 원래 중리는 농경지 중심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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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들. 『조선지지자료』에 도당리에 속하는 녹교지들이란 지명이 나온다. 녹교는 한자로 ‘돌모양 녹(碌)’자, ‘다리 교(橋)’자로 돌다리를 뜻한다. 녹교지들 내촌 부근의 들을 상아재들이라고도 하였다. 상아재의 어원은 앗재로, ‘’은 쌀의 고어이고, ‘앗’은 밭의 고어이다. 즉 ‘밭에서 나는 쌀이 많은 재’라는 뜻으로, 앗재가 살앗재→상앗재를 거쳐 상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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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오정마루 서남쪽 아래 능성에 있던 마을이다. 지형이 마치 누런 소가 누워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누른말이라 하였으며, 한자로 와우리(臥牛里)라 표기하였다. 한편, 마을에 나루터가 있어 누른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누른’ 또는 ‘누룩’은 나루를 가리키는 말로, ‘’에서 ‘노’가 되고 이것이 누른, 누룩을 거쳐 나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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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고개. 『조선지지자료』에는 작동에 속하는 우리말로 ‘능고개’이고, 한자 표기로는 ‘능현(陵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너머고개는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전에는 능고개라고 하였을 것이고, 능고개는 ‘는고개’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봉배산이 이어진 범바위산이 동쪽으로 쭉 늘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고개라는 이야기이다. 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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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골짜기. 능골은 식골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봉배 능선의 골짜기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리동에 속하는 ‘능곡(陵谷)’, 능골로 표기하고 있다. 소탈미[벌응절리 건넌말 뒷산의 이름]의 두 번째 골짜기였다. ‘능골’이란 ‘는골’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늘어진 골짜기를 말한다. 봉배산 줄기에서 늘어져 있는 골짜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능골은 고리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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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의 굴포천에서 경기도 부천시 약대동 묵시통 앞까지 직포를 파면서 양쪽으로 둑을 쌓아 생긴 하천. 원적산으로부터 흘러 나온 갈래가 직포천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갈래가 김포 쪽의 굴포천으로 연결되어 제법 큰 내를 이루었다. 고유어로 한다리천이라고 부른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한다리천을 대교천이라 하였다. 한은 ‘크다와 많다’의 뜻으로 대전을 ‘한밭’이라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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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던 들. 대월들은 『조선지지자료』에 옥산면 항동에 속하는 대월평(對月坪)으로 표기되어 있다. ‘월(月)’은 산을, ‘대(對)’는 마주 대한다는 뜻으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들’이라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들을 가리켜 냇가 아래에 있는 채들이라는 뜻으로 하채들이라고도 하였다. 용문내 냇가에 있는 들이라는 뜻이다. 대월들은 북쪽으로 건지산, 갈가메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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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논. 덕배미는 땅이 기름진 논이라는 뜻이다. ‘배미’는 논배미의 준말로 논의 뙈기를 세는 단위이다. ‘덕(德)’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덕스럽다’는 뜻이지만, 고어에서 ‘덕’은 가파른 언덕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논’을 뜻하기도 한다. 덕배미 주위에 저수지가 있어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예부터 농민들의 입을 통해 “소래산의 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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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산. 덕산에서 ‘덕’은 중세어에서 훈차한 ‘붕(棚)’을 의미한다. 이는 선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파름’을 뜻한다. 산은 ‘뫼’라고 했으므로 ‘붕뫼’였던 것이 붕을 음차한 ‘덕’과 ‘뫼’에 음차한 ‘산’을 합성하여 ‘덕산’이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는 가파른 산이라는 뜻이다. 후에 덕이 있는 산이라 하여 ‘덕산(德山)’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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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둑. 데부둑은 경기도 김포시에서 지금의 대장동 큰말을 지나 삼정동을 거쳐 약대, 사래이, 구지말까지 뻗어 있던 둑이다. 일본말로 둑이라는 뜻인 ‘데보’에 우리말 ‘둑’이 합쳐진 데보둑이 변화하여 ‘데부둑’으로 불렸다. 굴포천의 직포가 서해의 바닷물이 밀려들어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 한강 물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중국 노동자들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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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도당동과 여월동에 걸쳐 있는 산. 도(陶)는 본래 도(徒)에서 나온 말로 ‘무리’를 뜻한다. 이 도(徒)가 질그릇 도(陶)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당(唐)이라는 말은 당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둑’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도당이라는 땅이름은 물가에 막아 놓은 둑을 의미한다. 이 둑이 삼한시대 이전에는 성(城)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도당산이란 물을 막아 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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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던 고개 이름. 독을 굽는 가마가 고개 아래에 있다 하여 독쟁이고개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벌응절리에 속하는 독정현(篤亭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독쟁이고개라는 말에 초점을 두고 땅이름을 맞춘 느낌이다. 독정현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도타운 인정이 많은 정자가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독쟁이고개는 덕쟁이고개라고도 하였다. ‘덕(德)’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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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들. 된벌은 1923년 한강수리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 서해조수가 밀려오던 지역에 위치한 윗산 자락에 만들어진 들(논)이다. 즉, 물가에 접해 있던 윗산[上山] 자락에 만들어진 논으로 된벌의 된은 ‘큰·높은·세찬’의 의미를 갖는데, 이 중 ‘높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서해조수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상살미 높은 지대의 벌을 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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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둔’의 어원은 ‘둠’으로 ‘둥근·둘러싸인·뭉침·덩이’의 의미로 쓰인다. ‘대’는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둔대는 둥근 터나 둥그런 산을 의미한다. 이 ‘둠’이 고구려와 신라시대에 오면서 한자로 표기되면서 ‘진칠 둔(屯)’으로 바뀌었다. ‘둔대골’의 안마을과 건너마을을 모두 일러 벌응절리라도 불렀으며, 둔대골의 이름은 둔대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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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들. 범박마을 뒤에 있는 들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태봉 줄기에서 시작해서 양지마을 앞을 지나고 숙공산 남쪽 아래에 평쳐져 있는 들이다. 범박마을 앞으로는 암우들이라는 들이 있고, 뒤로는 뒷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범박마을은 예전에 농사를 지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한강이 정비되기 전에는 이곳까지 물이 들어찼고, 지금도 농토가 있어 농사를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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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원미산 골짜기.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일본군과의 접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망골이라 불린다고 하나, 망골(亡谷)은 죽은 골짜기가 아니라 ‘바라다’ 또는 ‘빌다’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망골(望谷)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원미산 장대봉 북쪽 기슭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첫 번째 골짜기인 큰망골과 두 번째 골짜기인 작은망골로 나뉘어 불린다. 망골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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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도당동과 춘의동에 걸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에 상오정면 도당리에 속하는 매봉재산으로 되어 있다. 성이 있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매봉재라 하였다. 매봉재란 매봉에 재를 덧붙인 것으로 ‘재’는 높은 산의 고개를 나타내므로 ‘현(峴)·령(嶺)·치(峙)’ 등을 나타낸다. 지금까지 재를 ‘산’으로 해석하여 ‘매봉’을 ‘빙 둘러싸인 산’의 의미로 소개했다. 그러나 고대어에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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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있던 자연 마을. 먹적골은 그 원형이 막잣골이다. 앞 글자 ‘막’은 ‘막히다’의 뜻이고, ‘잣’은 ‘자+ㅅ’을 가리킨다. ‘자·재’는 ‘성(城)·산(山)’의 의미이고, ‘ㅅ’은 중세어의 합성어 조어법에 들어간 사이시옷으로 관형격 ‘의’로 쓰였다. 따라서 막잣골의 의미는 ‘막힌 산의 골짜기’란 뜻이다. ‘막잣골’이 막작골이 되었는데, 이는 말음 ‘ㅅ’이 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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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자연 마을. 멧마루의 멧은 산을 뜻하는 ‘메’와 같은 뜻의 말이다. 마루는 신라시대에 왕이 높은 곳에서 나라를 다스렸다는 데서 나온 말로 으뜸, 높은, 또는 등성이를 뜻한다. 그러므로 원종동인 멧마루는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물가에 접해 있는 ‘으뜸언덕마을’로 풀이할 수 있다. 부천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부천군 오정면 원종리 지역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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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산. ‘명산(明山)’에서 ‘명(明)’은 ‘’의 훈차이며, ‘산’은 ‘뫼’의 훈차이다. 천신제를 지낸 산을 보통 ‘명(明)·광(光)’이라는 단어로 훈차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천신제를 지낸 산이라고 하여 명산이라고 한 듯 싶다. 봉배산과 그 뜻이 같다. 명산은 서해 조수가 밀려오는 포구 마을 위에 있는 산이다. 꼭대기에서 나지막하게 내려오게 되면 중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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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3동에 있던 연못. 목시통은 바닷물이 마치 화살통으로 들어가는 화살과 같다고 해서 목시통(木矢筒)이라 붙여진 것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한자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약대리에 속한 목시통으로만 되어 있다. 목시통은 목숙통·묵숙통·목수통(木水筒)으로도 불렸다. 『부천시사』·『부천시연구』·『부천문화의 재발견』 등에서는 목시통을 목숙으로 보고, 소와 말의 먹이인 거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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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골짜기. 한자로는 율곡(栗谷)이라고 하는 밤골의 어원은 반골이다. ‘반’은 ‘벌어진’과 뜻이 같은 ‘발아진’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반골이 방골이 되고, 다시 밤골이 된 것이다. 밤나무를 많이 심어 밤골이라는 지명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밤골은 원미산 장대봉 자락과 장자봉 산자락이 맞물리는 곳으로 여월마을 바로 곁에 있어 여월 사람들이 산으로 나무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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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서 밖오쇠리마을로 연결되어 있던 둑. 『조선지지자료』에도 대장리에 속하는 방오리보라는 지명이 나온다. 방오리보(方五里洑)는 지금의 대장동 큰말에서 오쇠동 앞들로 연결된 둑이다. 둑의 길이가 오리(五里)쯤 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1890년경 지금의 대장동 지역에 물길을 대기 위하여 만들었으며, 둑길은 부평도호부에서 한다리를 거쳐 서울로 가는 마찻길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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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뱀골은 둔대골 옆 부천역곡초등학교 뒤쪽으로 나 있는 계곡의 하나이다. 둔대산 남쪽 기슭에는 여러 개의 골이 있는데, 뱀골은 북쪽 첫 번째에 있는 골짜기이다. 『부천사연구』에, 뱀이 많이 나와서 뱀골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쓰여 있다. 또한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서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뱀골의 어원은 골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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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들. 뱀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농사를 짓던 들을 가리킨다. 조선지지자료는 벌응절리에 속하는 사곡평(蛇谷坪)으로 나와 있다. 뱀골들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뱀골의 수량이 아주 풍부했다고 한다. 뱀골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감배산 아래에서 세제골·둔대골 물과 합류하였다. 더 아래쪽으로는 멀미 미골에서 내려온 물과 할미산 연아봉의 갓골과 그개골에서 흘러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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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1동에 있던 들. 벌막은 『조선지지자료』에 옥천면 심곡리에 속하는 만석평(萬石坪)으로 기록된 곳으로 만석이들이라고 했다. 만석이들에서 ‘만(萬)’은 말[馬]에서 ‘ㄹ’이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돌을 뜻하는 ‘석(石)’은 ‘돌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또한 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제 홍천이 휘감고 내려가는 곳에 벌막이 있었던 것을 보면 ‘돌다’의 의미가 있는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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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조선지지자료』에는 옥산면에 속하는 벌응절리(伐應節里)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대로 풀이를 하면 ‘치고 응하는 마을’, 즉 싸움에 대응해서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벌응절리 뒷산을 둔대라고 하는 데, 이 둔대를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고 해석을 해서 군대가 치고 응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벌응절리에서 ‘벌(伐)’은 개간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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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던 들. 벌판이라는 의미로 벌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벌터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벌판이고 밭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해서 해방 후에는 10여 채가 되었다. 주로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에 허름한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할미산 중턱이어서 영신과 더불어 신앙촌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1970년대에 제작된 지도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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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 멀미산 칠일약수터에서 발원하여 성곡동, 원종동, 오정동으로 흘러드는 하천. 『조선지지자료』에는 하오정면 여월리에 속하는 별인천으로 별인내로 표기되어 있다. 베르네의 명칭은 베르네·비린내·비리내 등으로 불린다. 내[川]는 하천을 의미하고, 별·베리·비린·비리는 어원적으로 벼랑을 의미한다. 원래, 벼랑·낭떠러지를 베락·벼락·별·벼루·비루·베리·비리 등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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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골짜기. 봉황이 날아와 깃들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골짜기라는 뜻으로 봉골, 또는 봉황골, 봉곡이라고 한다. 고리울 봉배산을 깃점으로 해서 봉안산, 봉천이골, 봉골이 땅이름이 갖는 의미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 봉골 주변에는 도당산이 있어 안골, 새경골, 가마골 등 여러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성골 뒷산을 아미산으로 표기했고, 점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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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과 시흥시 대야동 사이에 있는 산. 봉배산은 태양신에게 길흉화복을 묻기 위해 보내는 봉황이 살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봉배라는 명칭이 붙은 곳이면 자연스럽게 신령스런 산이라는 의미가 된다. 봉(鳳)은 삼한 시기 이전에는 신과 인간을 매개해 주는 중요한 영물이고, 배(倍)는 태양신을 의미하는 ‘’에서 나온 말이므로, 봉배산은 태양신에게 길흉화복을 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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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산. 봉(鳳)은 봉황을 지칭하며, ‘안(鞍)’은 ‘구르·기르·고르’로 바다나 하천의 고대어형이다. 따라서 봉안산은 봉황이 사는 산이 서해 조수와 접해 있는 의미로 풀이된다. 까치울의 봉배산에서 살던 봉이 날아와 봉천이골에서 물을 마시고 봉안산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봉배산의 봉(鳳), 봉천이골의 봉(鳳), 봉안산의 봉(鳳)이 삼각형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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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깨를 많이 재배하여 돈을 많이 번 봉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봉천이골이라고 설화가 전해 온다. 그러나 이 봉천이골은 봉천이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봉배산(鳳倍山)에 사는 봉황이 물을 먹던 샘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 봉천곡이라고 해놓은 것이 그걸 증명한다. 이 일대의 지명에 봉황을 뜻하는 봉새 봉(鳳)이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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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는 산. 부엉이가 산꼭대기 바위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봉배의 다른 말이 부엉이로, 곧 수리부엉이 바위산이라는 뜻이다. 여우고개로 갈라지기 전에는 봉배산과 같은 산으로 보아서 봉배의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봉배산과 이웃한 산인데 이름이 부엉산과 봉배산으로 나뉜 것이다. 소새에서 시흥으로 가려면 여우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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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73년까지 경기도 부천을 관할한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구한국시기 부·군·면의 행정구역을 정리하는 과정으로서 1914년 3월 1일 부·군을 폐합하고, 4월 1일에는 면의 폐합을 단행하였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기준으로 부(府)는 조계지를 포함하여 시세시행(市勢施行) 지역과 동일하게 하였다. 군은 면적 약 40방리(方里)에 인구 1만 명 정도, 면은 면적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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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고개. 『조선지지자료』에는 불당현(彿堂峴)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여기서 ‘당(堂)’이란 부처를 모신 불당(佛堂)이 아니다. 불당의 ‘불’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말하고 ‘안’은 안쪽이다. 현은 고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남자의 사타구니 안쪽 고개라는 뜻이다. 남자의 사타구니처럼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고, 생김새가 사타구니 안처럼 빽빽한 숲이 우거져 사람의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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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던 고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범박동 망현(望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망현’에서 망(望)은 ‘빌다’의 뜻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빌고개라는 땅이름을 망현이라는 한자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개가 빌고개인 것이다. 범박에서 웃고얀으로 가는 길로, 웃고얀에서 양지마을을 거쳐 시흥 뱀내장을 보러 다닐 때 이용하던 고갯길이었다. 고갯길 중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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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사래울은 ‘새를’이라고도 부르고, ‘사하리(沙下里)’·‘사리월(士里月)’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부천시사』나 『부천사연구』 등에서는 죽산박씨 박철정이라는 선비가 와서 정착을 했다고 해서 사래리(士來里)라고 부른다고 했다. 또 사래울에서 ‘사래’라는 말을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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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명칭의 유래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홍수 때 산에서 모래가 마을이나 논까지 많이 밀려와 사래이라 하였다는 설, 서촌말이나 주변 마을 지주들이 묘지기나 마름에게 보수로 사례를 한 땅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 장말과 솔안말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사래이라고 하였다는 설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부평군 석천면 상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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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고개. 사루개의 ‘사루’는 어원이 ‘살’이다. ‘살’은 ‘물가’라는 뜻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살우, 사루로 발음이 변하였다. ‘개’는 포구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사루개는 ‘물가 위에 있는 포구’를 뜻한다. 사루개에서 건너다보면 까치울 삼태기산이 바로 보인다. 서해의 조수가 밀려들 때면 삼태기산 아래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따라 배를 띄웠을 것으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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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부천의 산맥은 부천과 시흥의 경계에 있는 소래산 지맥으로 인천의 주안산, 부평의 계양산, 김포의 가현산, 통진의 문수산으로 이어진다. 소래산은 양지산으로 연결되어 성주산[200m], 할미산[153.2m], 원미산[123.8m], 춘의산[106m], 봉배산[86m] 등 부천 남부 및 동부 권역의 산지로 이어진다.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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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고개. 산문은 사문(四門)과 관계가 있는 말로 보여 진다. 사문은 네 개의 문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문은 살문에서 온 듯하다. 사문은 네 개의 문이 아니라, 살문[梐·枑]에서 온 것으로 마름쇠(끝이 날카롭고 서너 개의 갈래가 되게 만든 물건)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끝이 뾰족하게 나 있으며 몇 개의 갈래로 나 있는 고개라는 의미로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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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산에 우물이 있어 마을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마을이나 산쪽에 우물이 있게 마련이다. 장말에서 보는 관점에서는 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지만 장말하고는 그 거리가 상당히 멀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산우물은 솔안말 검디의 산자락 아래에 있어 검디와의 연관성으로 풀어야 옳다. 산우물은 삼우물을 산으로 잘못 표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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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삼막골은 『조선지지자료』에 삼막곡(三幕谷)으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 말로는 삼말골·삼막골 두 가지로 불리고 있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삼말골은 포기하고 삼막골만 선택해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삼말골을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삼(三)의 고대어가 시(枾)이고 말은 마(馬)를 뜻한다. 삼정(三井)의 고대어가 시우물에서 찾아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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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 웃고얀 앞에 있는 골짜기. 삼자골에서 ‘골’은 골짜기를 가리키고, ‘자’는 산꼭대기라는 의미의 ‘잣’에서 ‘ㅅ’이 탈락해서 ‘자’가 되었다. 이것이 다시 재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재는 산이나 언덕을 가리키는 재[峴]로 쓰였다가, 신라 경덕왕 이후 재가 들어간 땅이름은 성(城)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산이나 언덕을 가리킨다. 삼자는 셋이라는 숫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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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산. 삼태기산은 옛날부터 아녀자들이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던 산으로, 범바위산 줄기로 뻗어 내려오다 시루뫼 너머에서 멈춘다. 삼태기란 재를 퍼낼 때 쓰던 농기구로, 이 삼태기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는 인간의 탄생과 생명의 연장을 주도한다고 여겨지는 삼태성의 다른 말로, 삼태기산이라 명명한 것으로 보아 삼태성을 삼태 또는 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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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산. 삼태봉은 범박파출소를 중심으로 뒷산과 옆산 그리고 빌고개가 있는 산을 합쳐 봉우리가 세 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태의 의미는 삼태기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할미산을 신성한 산으로 여기면서 그 주변에 있는 산도 하늘의 별자리처럼 신성한 의미로 보아 삼태성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는데, 그것보다는 높은 봉우리 세 개를 지칭하여 삼태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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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내동, 오정동 산마루. 상아재란 앗재가 그 어원으로, 은 살로 사루개·사루지에서 뜻하는 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쌀의 고어이기도 하다. 경상도에서는 쌀을 살로 발음한다. 밭은 고어로 ‘앗[田]’이다. 그러므로 상아재는 ‘밭에서 나는 쌀이 많은 재’를 뜻한다. 앗재가 살앗재가 되고 이것이 상앗재로 변천한 것이다. 상앗재가 다시 상아재로 바뀐 것이며, 지금도 상앗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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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지지자료』에는 새기보가 수역리보(壽域里洑)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수역리는 ‘목숨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수역리는 수여기라는 말을 취음(取音)한 것으로, 이는 수오기에서 파생한 말이다. 수는 숲, 오기는 마을의 옛 말인데 수오기는 숲이 우거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부천 문화의 재발견』에 따르면 새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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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골짜기. 『부천사연구』에서는 춘덕산 앞에 있는 야산의 이름으로 ‘세재골’을 표기해 놓고 있다. 세제란 새재의 오기로 ‘사이’라는 뜻이다. 망골과 둔대골 사이에 있는 언덕을 가리켜 새재라고 부르다가 세제로 바뀐 것이다. 이 새재의 골짜기를 새재골이라 한다. 새재골 골짜기 오른쪽으로 평평한 들판이 있는데, 이곳에는 포도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벌응절리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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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샘말은 『조선지지자료』에는 간촌(澗村)으로 표기되어 있어 물가 옆에 있는 마을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말로는 섬말로 표기되어 있다. 샘말은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섬말이 샘말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섬말은 섬처럼 물길이 휘돌아 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강상골이나 응구리에서 보았을 때 마을이 마치 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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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샛말 뒤쪽에 있는 산. 샛말산의 ‘샛말’은 새로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사이마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샛말산 남쪽으로는 대머리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뒤골[後谷]이 자리 잡고 있다. 샛말은 고강본동사무소 부근이며, 뒤골은 고강아파트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샛말산 아래로는 샛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샛골은 샛말에서 뒤골 쪽으로 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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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서름이골은 서늘한 지역이라는 의미로, 봉배산 줄기에 공동묘지가 위치하고 있는 작동의 골짜기이다. 서름이골은 서름이터라고도 하며, 서름이는 서늘이 그 어원이다. 서늘하다에서 온 이 말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 늘 시원한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이곳에 서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서름이가 나중에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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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섬말은 한강수리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독립적인 섬이었던 곳으로 섬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섬말이라 불린 듯하다. 한강수리조합이 생긴 뒤에도 서해 조수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는 나무토막과 널빤지를 이어 만든 다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다리가 없어지고 섬말과 큰말 사이에 징검다리가 놓였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흔적인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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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과 인천광역시 남동구, 시흥시 대야동 사이에 있는 산. 성주산이라고 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도서관 심곡분관 자리에 1938년 일본왕에게 참배를 강요하던 소사면 신사가 세워졌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산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 이전에는 와우산 또는 댓골산이라고 불렸다. 특히, 하우고개가 있는 부분은 『조선지지자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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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골짜기. 고리울에서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으로 가는 길과 오정대로였던 봉오대로가 갈라지는 삼거리 왼쪽 둔덕을 소두머리라 하고, 그 앞쪽 봉오대로를 포함해서 오쇠동 무덤골을 지나 김포공항 앞까지의 골짜기를 말한다. 이곳은 고강 1동에 속한다. 소두머리골은 소머리골이라고도 하나 이는 단어 의미를 그대로 해석해서 생긴 오기이다. 골은 골짜기를 가리키며,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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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산. 조선지지자료에 옥산면 범박리에 속하는 숙곡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숙곡은 숫골이다. 숫골이란 소골이고, 소골은 소도골을 말한다. 소도는 족장이 살았던 마을에 신성한 지역을 골라 솟대를 세워 사람들의 범접을 금했던 곳으로, 오로지 족장만이 그곳에 갈 수 있었다. 이 솟대가 있던 골짜기가 바로 숫골이며, 공숫골이란 솟대가 없는 골짜기를 말한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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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산. 일설에는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산이라는 데서 시루뫼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루뫼는 『조선지지자료』에 한자로 병산(甁山)으로 표기해 놓고 시루뫼라고 하였다. 산이 떡을 찌는 시루를 의미하려면 증산(甑山)이어야 하는 데 병산(甁山)으로 되어 있다. 시루의 옛말은 시르인데, 어휘의 변천에서 시르가 시루로 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시루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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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한자로 식곡(植谷)이라고 표기하는데, 숨쉬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식곡(息谷)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나무가 우거진 골짜기라는 뜻이다. 부천문화원에서 펴낸 『부천문화의 재발견』에서는 시골[蒔谷]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는 심을 식(植)과 같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모종을 심는 것이니까 씨앗이 있는 곳을 의미하므로 생명의 근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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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들. 이 지역을 새롭게 개간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들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기에 크게 개발되지 않고 13만여 평이 넘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신기들 북서쪽 인접한 부근에는 지금도 개간을 해 밭으로 사용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경인고속국도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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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상동에 있던 자연 마을. 홍수 때 산에서 내려온 모래가 마을과 논·밭으로 많이 밀려와 다래이라 하였다. 다래이의 발음이 변하여 사래이가 되었고, 다시 상리로 발음이 변하였다. 신상리는 새로 만들어진 상리라는 뜻이다.사래이, 상리는 장말과 구지말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부평수리조합이 설립된 뒤에 생긴 마을이다. 부평수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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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아미산(蛾眉山) 동남쪽, 도당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도당동 쪽의 개롱지에서 절고개를 넘어 여월로 넘어가는 곳 안쪽에 깊숙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안골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아미산(蛾眉山)이라고 하고, 안골 서남쪽에 위치한 산을 춘의산, 도당산, 매봉재, 개롱지산이라고 한다. 안골은 아미산(蛾眉山), 도당산에서 제일 골짜기가 길고 깊어서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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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1동 깊은구지 앞에 있던 언덕. 『부천시사』에는 ‘안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성주산이 깊은구지 쪽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멈춘 곳이 앞뫼로, 깊은구지에서 보면 바로 눈앞에 있던 언덕이었으므로 앞뫼라 하였다. 지금의 심곡본1동 성주기도원 근처에 있던 언덕으로 성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일부이다. 바로 아래에 극동아파트가 있고 그 아래로 심곡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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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둑. 앞보둑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지지자료』에는 원종리보(遠宗里洑)로 기록되어 있다. 멧마루에는 앞보둑과 함께 뒷보둑도 있었다. 앞보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론할 뿐이다. 앞보둑은 원종동 219-1, 6, 28번지 일대 한아름아파트 주변 지역으로, 현재는 매립되어 생활 하수가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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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양안리의 한자 표기는 ‘볕 양(陽)’, ‘편안할 안(安)’으로 안(安)은 하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양안은 ‘볕이 잘 드는 하천과 접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듯하다. 양은리라고도 불렀다. 송내동 377번지 유성기업과 (주)삼정임대공단 사이에 있던 마을로 10여 가구가 살았다. 양안리 부근을 지나던 경인고속국도 변에 주막집이 몇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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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에 있는 고개. 한자로 여우고개[如牛峴]라 한 것으로 보아 산의 형세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므로 소와 같다 하여 여우((如牛)고개라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하우고개에 더 해당하는데, 하우고개를 일명 와우(蝸牛: 소가 누워 있는 형상)고개로 부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우고개는 한자로 훈차한 호현(狐峴)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는 이곳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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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서 대장동까지 흐르는 하천. 부천시 춘의동 멀미산의 칠일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여월동 방골에서 흘러 내려온 물과 합류하여 CU 부천오정구청점에 이르러 좌우로 나누어지는데, 이때 오정구청 쪽으로 흐르는 하천[좌류]이 베르네천이고, 오른편으로 흐르는 하천이 여월천이다. 부천시 원종동 463-6번지에서 시작하여 대장동 552-34번지에서 끝나는 길이 4.14㎞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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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있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역으로 부역명은 가톨릭대이다. 역곡역은 1974년 8월 15일 경인선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경인선의 노선 가운데 하나인 부천역 관리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관할기관은 코레일수도권서부본부이고, 역번호는 146번이며, 역등급은 3급이다. 1983년 8월 6일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 10월 23일 역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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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산봉우리. 연아봉은 연화봉(蓮花峰)이라 해서 연꽃이 연이어 피어 있는 모습이라고 하나 이는 연아봉의 잘못된 표기이다. 한자로는 연아봉(延阿峰)이라 하는데 이는 언덕이 이어져 있는 봉우리를 가리킨다. 연아란 ‘연이어 있다’라는 말이다. 할미산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신라 경덕왕 이후에 한자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연아봉 골짜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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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던 들 용은 해신(海神)의 용이다. 해신은 용궁신·해룡신·미륵신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미륵은 미르에서 나온 말로 용을 미르라고 한다. 미르는 땅이름에 별로 쓰이지 않고 직접 용이라는 말이 쓰였다. 미르는 고려 후기 이후에 사어가 되고 대신 미리의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다. 용은 땅이름에서는 크다는 말로 쓰인다. 구리는 굴로 골짜기를 의미해서 용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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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자연 마을. 까치울고개 위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웃말의 아래쪽에는 응달말이 있다. 성곡중학교를 지나 까치울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까치울고개에 있는 마을로 작동 126번지 일대를 말한다. 까치울초등학교에서 능안골 방면으로 진입하여 약 700m 정도를 가면 우측에 산마루촌이라는 식당이 있고 왼쪽에 ‘민자방 화유옹주 묘’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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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골짜기. 원골은 『부천사연구』에 완곡(阮谷)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원곡(源谷)으로 표기되어 있다. 원(源)은 바다나 하천을 의미하므로 원골은 할미산에서 흘러내린 물가에 닿아 있는 계곡이라는 뜻이 된다. 해골동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였다. 약대초등학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원골로 원골내가 흘렀다. 약대초등학교 뒤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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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미동과 춘의동·소사동·역곡동 사이에 있는 산. 원미산은 멀미산으로, 멀미의 ‘멀’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머리는 ‘’에서 나온 말로 ‘꼭대기·마루’를 뜻하며, ‘크다·신성하다·존엄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미’는 산의 고유어로 ‘미·메·뫼’ 등이 쓰였다. 그러므로 멀미산은 아주 ‘신성한 큰 산’이라는 뜻이다. 이는 역전앞처럼 동의어 반복으로 별다른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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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괴안동에 있는 산. 원산은 일명 멀미라고도 한다. ‘멀’은 ‘머리’로 보아 ‘크다·신성하다·둥글다’의 의미로 해석하고, ‘미’는 ‘산’의 의미이므로 ‘크고 신성한 산’으로 볼 수 있다. 고얀의 앞마을에는 말무덤이 있었다. 보통 임진왜란 때 죽은 말을 묻은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삼한시대 이전의 족장의 무덤을 가리킨다. 족장의 무덤이 고랠에 있고 그 윗산인 멀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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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개통 예정인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서해선의 역. 원종역은 서해선 구간으로 운행하다가 장래에는 경의선, 신안산선 일부 구간에서도 운행될 수도권 전철 운행 계통이다. 이 노선의 계획 명은 원래 ‘소사원시선’이었으며,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8-207호에 따라 2018년 4월 6일 ‘서해선[소사-원시]’으로 노선명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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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자연 마을. 육형제마을은 내촌주막[현 시흥시 뱀내장, 김포군 황어장과 현 인천시 계양구 장기동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형성되어 있던 마을]에서 현재 구 오정구청 쪽에 있는 낮은 고개 너머에 있었다. 도시 계획이 진행되면서 내촌주막이 내동고갯길로 갈라졌다. 내촌이라는 동네는 옛날에 안말·안약대라고 불렀는데 내촌은 내촌주막과 육형제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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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성곡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은데미에서 ‘은’은 응달의 첫 음절인 ‘응’에서 따온 말이고, ‘데미’는 둥근 산을 뜻하는 ‘둠’에서 나온 말이다. 둠이 덤이 되고 덤에 접미사 ‘이’가 붙어 ‘덤이’가 되었으며, 다시 발음이 변하여 더미→데미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은데미는 응달진 산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언담리(彦淡里)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풀이하면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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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자연 마을. 1960년대 말 가로수용 은행나무를 많이 심어 단지를 형성한 데서 은행단지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고강동의 옛 지명은 고리울[古里洞]과 강장골[康莊谷]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로 높은 야산과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앞으로는 서쪽 부평평야, 뒤로는 동쪽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관악산, 북쪽으로는 한강을 굽어 보던 곳에 있던 마을이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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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응달이 지는 마을이어서 응달말로 불렸는데, 이는 마을 동남쪽에 있는 시루뫼에 가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이 허물어져 해가 늦게 뜰 이유가 없어졌다. 베르네천 지류의 중류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물이 풍부할 때는 마을 앞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도 많이 잡았다. 작동으로 시루뫼 북쪽 지역이다. 현재 응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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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던 골짜기. 마리란 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란 이 산꼭대기나 으뜸의 뜻을 지닌 말이다. 따라서 가 마리가 된 것이다. 말무덤은 말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족장의 무덤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 골이라 불렀다가 마리골이 된 것이다. 남쪽은 성주산[217m] 자락을 따라 높은 지형이라 골짜기와 고개가 많다. 작은마리골이 있는 심곡본동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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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범바위산 아래에 있는 약수터. 본래는 장수천약수터라 불렀으나, 약수터에서 북쪽으로 30m 위에 청백리로 이름 높은 전라도관찰사 잠조당 박처륜 묘가 있어, 박처륜의 청렴한 정신을 본받기 위해 잠조당약수터로 명칭을 바꾸었다. 범바위산 아래 신작동 지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소사본3동 사무소에서 시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사공원 위 범바위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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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장개의 어원은 잔개로 ‘잔’은 ‘작다’, ‘개’는 포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장갯말은 작은 포구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장끼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부천은 예부터 고리울, 약대, 겉저리, 장말, 구지리를 거쳐 서해 조수가 한강 하구를 통해 밀려드는 드넓은 갯벌 지역으로 해산물이 풍부했다. 장갯말도 서해 조수가 밀려들어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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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장말은 장씨 마을의 줄임말로 덕수장씨가 이 지역에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덕수장씨 시조 장순룡의 12세손인 장몽기가 경기도 평택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조선 중기 이후 4백여 년 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말의 장자는 긴 ‘장(長)’자로 성씨 ‘장(張)’자와 다르다. 이는 곧 장씨가 정착하기 전에도 장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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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에 있던 자연 마을. 장승이 세워진 마을이어서 장승백이라 하였다. 장승의 어의는 반도를 뜻하는 갑, 곶, 단, 감, 두, 말과 같이 경계를 뜻한다. 장승백이가 있던 주변의 논들을 장승백이들이라 하였다. 신흥동 70~80번지 일대의 마을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에 들어오려는 악귀를 쫓기 위해 장승이 세워졌다. 부천 IC에서 서쪽으로 300m되는 경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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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있던 고개. 시흥으로 넘어가는 장승백이고개와 계수리로 넘어가는 길고개가 만나는 곳에 아마도 장승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던 장승은 거리 표지판의 역할까지 하였다. 시흥 뱀내장을 보고 온 마을 사람들은 이 장승을 보고 안심을 했을 것이고, 장승백이를 거쳐 시흥으로 갔던 계수리 범박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까지 거리를 추산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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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골짜기. 장자골의 어원은 잔잣골이다. 잔은 ‘잘디 잘다’는 뜻으로 작다는 의미이며, 잣은 ‘위·산꼭대기·등성마루·산·고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장자골은 ‘작은 산’을 말한다. 멀미의 장대봉에 비하면 작은 봉우리이고 작은 골짜기라는 것이다. 장자봉을 장좌봉으로 해석해서 ‘장수가 산봉우리를 깔고 앉아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한자로 쓰여진 이름을 재해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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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안골에서 개롱지로 오르는 고개. 절고개은 개롱지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당동과 약대동에서 여월·까치울·온수동 쪽으로 넘어갈 때 거쳐야 했다. 절고개는 매봉을 등산하는 사람들의 등산로이면서 매봉 봉우리에 있는 군부대의 군사 도로로도 이용되고 있다. 군부대가 있어서 매봉 정상으로는 통하지 못하고 이 고개를 넘어 안골약수터를 거쳐 춘지봉으로 넘어간다.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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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던 마을 이름. 『조선지지자료』에는 점촌(店村)인 점말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 박해를 받던 천주교 신자들이 이 마을로 들어와 생계를 위해 질그릇을 구운 데서 옹기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마을 이름에 ‘점’자가 들어간 동네는 거의 옹기나 그릇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1866년(고종 3)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를 피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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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마을 이름. 정주는 우리말로 ‘살말’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살’은 물가, ‘말’은 마을을 뜻한다. 곧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정주는 물가에서 조금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작은 마을은 골·굴·실·말 등으로 표기하고 한자로는 골 곡(谷)자를 써서 표기하는데, 고을 주(州)로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꽤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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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 있던 마을 이름. 조선지지자료에 옥산면에 속하는 한자로는 조종리(朝宗里)라 표기하였다. 조마루에 가장 먼저 정착한 사람은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조씨가 종가를 이룬 마을이라 하여 처음에는 조종리(曹宗里)로 불리다가 한자가 바뀐 조종리(朝宗里)가 되었고, 이를 풀어 조마루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성씨 조(曺)’가 언제부터 ‘아침 조(朝)’로 바뀌었는지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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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내동에 있던 통나무 다리. 내동에서 삼정, 약대로 가는 길에 조석다리와 얼미다리가 놓여 있어 자유롭게 왕래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도길이 놓여져 이 길로 마차가 다녔다. 내동에는 삼정·도당과 마찬가지로 둑을 쌓아 들이 많은데, 조석다리들·얼미다리들·녹교지들·상아재들·천척골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예부터 바닷물이 올라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둑을 쌓아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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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원종동 논에 있는 둑. 중보둑은 조선 지지자료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제 시대 때 건설된 것으로 여겨진다. 원종2동 주민센터 앞에 있는 베르네천 복개천일대이다. 베르네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둑이 있었다. 베르네천 여월지역은 상류인 상보둑이고, 오정동 지역은 하류인 하보둑으로 여겨진다. 베르네천 둑 중간에 있다해서 중보둑이라고 한 것이다. 중보둑은 원종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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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던 마을. 진말에서 ‘진’은 ‘보배 진(珍)’이다. 이 ‘진’은 ‘돌·도르·돌·드르’로 읽히며, 바다나 하천을 의미한다. 진말 앞으로 큰내가 지나갔다. 진말은 긴말에서 온 말이기도 하다. 긴말이 진말로 바뀐 것은 우리말의 구개음화 현상에서 생긴 것이다. 긴등이 진등으로 바뀐 것이 그 예이다. ‘말’은 ‘마을’을 가리키고, ‘긴’은 ‘길다’의 뜻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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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선사시대부터 있던 우물. 찬우물은 물맛이 좋고 아주 차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사유적지 선사인들이 이용한 우물이기도 하고, 장갯말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을 대동우물이기도 했다. 봉배산 중턱 선사유적지는 청동기시대에 주택지가 발견된 곳으로써 한강 지류 지역인 부천의 선사시대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봉배산 아래로는 아직도 밭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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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일대에 있던 들. 『조선지지자료』에는 옥산면 괴안리에 속하는 청등평(靑登坪)으로 되어 있다. 청등들은 보리와 벼 등 곡식들이 자라는 푸른 들판이라는 뜻이다. 계곡 위쪽으로는 밭농사를 짓고 아래로는 미나리꽝이 있는 등 푸른색이 짙어 유래된 이름이다. 현대빌라가 있는 97-24번지에 큰 당산나무인 느티나무가 있어 청등들에서 일하던 웃고얀 사람들의 쉼 터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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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과 도당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와우산의 봉우리 중 하나. 춘의봉(春宜峰)은 96m의 야트막한 봉우리이고, 춘의동과 도당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와우산(臥牛山)의 봉우리 중 하나이다. 와우산은 춘의산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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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할미산 구부골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하천. 원미산 중기가 뻗어내린 벌막을 크게 휘돌아 흐른다고 해서 돌내라고 불렀다.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큰내를 홍천(洪川)으로 쓰게 되고 석천(石川)이 된 것이다. 사실 내가 돌아 흐른다고 해서 돌내이므로 회천(廻川)으로 표기해야 옳다. 큰내 아래쪽에 진말에서 벌말로 가는 곳에 만들어진 다리를 홍천교(洪川橋)라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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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던 목. 전국적으로 터진목을 가진 땅이름은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면 마천리 건너마을 동남쪽에 있는 터진목들,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백산리 와우 동쪽에 있는 터진목들,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유곡리 새무실 서남쪽에 있는 터진목 골짜기,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용리 용수말 남쪽에 있는 터진목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성산리 수마포 동쪽에 있는 터진목마을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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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골짜기. 당아래에서 겉저리로 가는 중간에 전씨와 박씨가 운영하는 옹기점이 있었는데, 여기서 화분을 구웠다고 풍무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 의하면, 풍무골은 풀무골 어원으로, ‘풀’은 어원이 ‘불’이다. 중동 풀치군논에서의 ‘풀’과 의미가 같다. 이는 ‘’으로 태양신을 의미한다. ‘’은 광명을 비춰주는 높은 곳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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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의 전통 취락 형성과 관련된 자연 환경과 인간의 길흉화복 관계. 풍수지리는 어떤 지역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즉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속에 돌아다니는 생기(生氣)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으로 도성·절·집·무덤 등을 만드는데 있어 지상(地相)을 판단하는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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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있는 고개. 하우고개가 있는 성주산을 일명 와우산(臥牛山)으로 부르기 때문에 이 산을 넘는 고개도 와우고개라 하였다. 또한,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산이므로 와우산이라 했고, 와우산에 있는 고개이기 때문에 와우고개라 한 것이다. 이 ‘와우’가 초성의 동음이라 강하게 발음하려는 이화현상에 의해 ‘하우’로 발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천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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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다리.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청구도(靑邱圖)」 등 조선시대의 지도 자료에는 한다리가 대교(大橋)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 자료에는 한다리를 석교리(石橋里), 돌다리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 말에서 보통 ‘한’의 뜻은 ‘크고 넓다’라는 뜻이다. 이 다리를 한다리라고 한 것은 놓여진 다리가 커서일 것이다. 한자로 대교(大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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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던 들. 우리나라 말에서 보통 ‘한’은 ‘크고 넓다’라는 뜻이다. 한다리들은 ‘한다리’가 놓여 있던 일대에 펼쳐진 들이라는 뜻이다. 다리 이름을 ‘한다리’라고 한 것은 놓여진 다리가 커서일 것이다. 한자로 대교(大橋)라고 한 것도 크다는 뜻을 살린 것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나 다리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다리들은 수해가 나면 농사를 작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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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소사본3동과 시흥시 대야동 사이에 있는 산. 모양이 노파와 같아 붙여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할미산은 ‘한메’, 즉 ‘큰 산’을 뜻한다. 큰 내가 ‘한내’, 큰 밭이 ‘한밭’이 되듯이 큰 뫼는 ‘한메’가 된다. 이것이 ‘할 매’·‘할미’로 발음되어 ‘할미산’이 되었다. 즉 한메에서 한미산·할미산, 그리고 노고산으로 바뀐 것이다. 부천은 남동부가 높고 북서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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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산. 함박산은 ‘크고 밝게 빛나는 산’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뫼가 바로 함박산의 어원으로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은 ‘밝은, 빛나는’의 뜻으로 삼한시대 이전 태양신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던 말이다. 뫼는 산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족장들이 살고 있던 신성한 마을의 뒷산을 가리켜 함박산이라고 명명했다. 한자로 함박산(咸朴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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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오정초등학교에서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쇠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를 헐떡거리면서 오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그 원형은 활터고개이다. 오정초등학교 근방에서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활터고개의 어원은 솔터고개인데, 이는 까치울 활터고개처럼 이곳에 솟대가 세워져 있었음을 말해 준다. 솟대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을 달아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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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있는 산. 호랑바위산 또는 호암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범을 호랑이로 고친 것에 불과하다. 전국 땅이름 중에 범바위는 호랑이가 출몰해서 붙여진 이름보다는 틈이 벌어진 바위를 가리킨다고 해서 번바위의 뜻으로 쓰인 것이 일반적이다. 범바위는 번바위를 그 어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러므로 틈이 벌어진 바위라는 뜻으로 보인다. 범바위산을 토박이 말로 봉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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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약대동에 있던 포구 이름. 부천의 옛모습은 고리울, 약대, 겉저리, 장말, 구지리를 거쳐 서해 조수가 한강 하구를 통해 밀려들어오는 드넓은 갯벌 지역으로 해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다. 화개라는 지명도 부천에 서해 조수가 밀려들어 여러 개의 포구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지명이라고 볼 수 있다. 화개는 한자로 화포(華浦)라고 표기한다. ‘화’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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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여흥민씨가 조상의 산소 앞에 세워 놓은 솟대가 있는 골짜기란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불을 질러 땅의 경계를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까치울[작동]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작미골·절골·화죽골·탑골·지골·까치울 등의 골짜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변함이 없다가 중동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삼태기산과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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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서 신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활터고개는 까치울[현 작동]에서 신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활터고개는 소도가 있는 곳을 의미하여, 솔터고개라는 의미로 솟대가 서 있었을 것이다. 까치울에서 응달말로 가는 사거리 지역에 과녁터가 있었다는 말이 전해 온다. 활터고개에서 활을 쏘면 까치울마을을 지나 마을 앞에 있는 과녁터에 화살이 꽂혔다는 것이다. 이렇게 활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