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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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보령의 지방 제도]
고려의 지방 제도 정비는 성종(成宗)[재위: 981~997] 초부터 시작되어 현종(顯宗)[재위: 1010~1031] 대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5도 4도호부 8목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을 두었다. 보령 지역에는 보령현과 남포현의 2개 현이 설치되었는데, 남포현은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개칭된 명칭을 그대로 따랐다.
남포현은 신라 웅주(熊州) 서림군[서천군 서천읍]의 영현(領縣)의 하나였으나 1018년(현종 9) 가림군[부여군 임천면]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현재의 보령시 남포면 양기리 일대이다.
보령현의 명칭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이 신라 경덕왕 대 신읍현으로 고쳤던 것을 고려 초에 개칭한 것이다. 현종 9년에 홍주의 속현이 되었지만 예종(睿宗)[재위: 1105~1122] 대 고을 사람들이 유망(流亡)하자 중앙에서 지방관을 직접 파견하여 다스렸다. 보령현의 위치는 현재 보령시 주포면 지역이며, 치소(治所)는 보령리 구성재에 비정된다.
군현 이외에 특수 행정 구역으로 향·소(所)·부곡(部曲)을 두었는데, 보령 지역에는 부곡으로 현하부곡[대천]·보원부곡[청라]·금신부곡[오천]이 있었으며, 소로는 박평소[미산]·횡천소[미산]·건자산소[청소] 등이 있었다.
보령 지역은 서해 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조운로(漕運路)를 비롯해 관방(關防)의 요충지였다. 그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무력적 충돌이 발생하였다. 대몽항쟁 과정에서는 삼별초가 고란도(孤蘭島) 부근에서 전함 6척을 소각하고, 조선소(造船所)를 기습하여 일본 정벌 병력과 물량 운송을 위해 건조 중이던 전함을 파괴하였다. 이때 홍주부사 이행검(李行儉)[1225~1310]과 함께 결성과 남포의 감무가 잡혀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삼별초가 공격한 ‘고란’[고만]이라는 지명은 현재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에 남아 있고, 송학리에는 고란도[고만도]로 추정되는 솔섬이 있다. 그로 인해 고만도는 고정리에 있는 고만마을이나 송도에 비정되고 있다. 그런데 고란도를 원산도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380년(우왕 6)에는 남포현이 왜구의 침략을 받았으며, 1381년(우왕 7)과 1388년(우왕 14) 왜구가 보령현에 침략하여 백성들이 유망하고 농토가 황폐화하였다. 이에 1390년(공양왕 2)에 이르러, 처음으로 남포현에 진성(鎭城)을 설치하고 유망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기록상 보령 지역에 대한 왜구의 침략 사례는 많지 않지만 주변 지역인 서천과 홍성 일대에 대한 침략이 다수 확인되는 점으로 볼 때 보령 일대에 대한 왜구의 침략은 훨씬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
고려 시대 보령 지역의 불교 문화도 여전히 번성하였다.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사(聖住寺)가 법맥(法脈)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법회 등을 통해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하였다. 무염(無染)[800~888]의 법손(法孫)인 현휘대사(玄暉大師)[879~941]의 탑비인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문(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文)」에 성주산문(聖住山門)은 천하에 견줄 만한 데가 없다고 기록한 내용이 보인다. 비록 역사 자료에서 성주사 관련 기록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성주산문이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물로는 고려 중기 백임지(白任至)[1130~1191]와 백문절(白文節)[?~1282], 백이정(白頤正)[1247~1323]이 확인된다. 남포 출신 백임지는 원래 농부였으나 군인으로 선발되어 무신집권기에 승진을 거듭하여 종2품의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지냈다. 충렬왕 대 관직에 진출한 백문절은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으며, 백문절의 아들 백이정은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배워 안향과 함께 고려에 보급한 인물이다. 백이정의 묘소는 보령시 웅천읍 평리에 있으며, 백이정의 후손들이 남포현 지역에 세거하였다. 이 외에도 죽도 앞바다에는 해로를 통해 운송 중이던 선박의 침몰로 인해 고려청자가 매장되어 있는 해저유물 매장지가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상감청자에는 '기사(己巳)'라는 이름의 간지가 새겨져 있어 제작 연대를 밝히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