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063
한자 蘆川‒
이칭/별칭 노전간석지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노천들 - 충청남도 보령시
해당 지역 소재지 노천들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에 있는 해안 평야.

[개설]

후빙기 초기의 익곡(溺谷)[지반의 침강이나 해면의 상승으로 육지에 바닷물이 침입하여 해안에 생긴 골짜기] 만입지(灣入地)는 점차 메워지면서 만입지 자리에 간석지(干潟地), 사구(砂丘), 사취(砂嘴)[모래가 해안을 따라 운반되다가 바다 쪽으로 계속 밀려 나가 쌓여 형성되는 해안 퇴적 지형. 한쪽 끝이 모래의 공급원인 육지에 붙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등의 지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차(潮差)가 크고 만입지가 많은 보령 지역에서는 특히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간석지는 계속 성장하게 되면 고도가 높아져서 보통의 사리 때에는 물에 잠기지 않아 염기가 많은 환경에서도 견디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이 성장하는 염생습지가 내륙 쪽으로부터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염생습지를 보령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농경지로 이용해 왔는데, 이것은 일종의 해안 평야 지형이며, 동시에 바다의 퇴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해성(海成) 퇴적 평야이다.

보령 지역에서 해성 퇴적 평야 형태의 평야는 남곡동평야, 웅천읍 독산리평야, 간사지들[오천면 원산도 북부 해안], 노천들[웅천읍 노천리], 신현들[천북면 신죽리]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해안 평야는 대부분 간척되어 논으로 변한 간척 평야에 해당한다.

[명칭 유래]

노천들은 평야가 자리하고 있는 ‘노천리(蘆川里)’의 지명을 그대로 따라 부른 것이다.

[자연환경]

웅천읍 노천리웅천천의 하류, 만입지의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간척 사업을 하기 전에는 논이 없고, 수원(水源)으로 이용할 하천물도 닿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웅천천의 전기회사 앞에 보(洑)를 축조하고 물을 끌어들여 간척을 한 뒤로 노천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5년에 측도한 지형도에도 노전(蘆田)마을 독자굴 앞에까지 간척이 이루어져 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일제 강점기 이전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노전마을의 한글 표기가 ‘가랏티’인데, 옛날에 같대밭이 있던 곳에 마을이 생겼기 때문에 ‘가랏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에 중앙대학교 재단에서 노전마을 앞에 간척지를 축조하여 현재와 같은 간척지로서 노천들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가 지나면서 노전마을 앞의 갯벌은 모두 간척지화되었는데, 노천들 이외에 노전간석지(蘆田干潟地)라고도 부른다.

노전간석지는 구간사지와 신간사지로 구성되는데, 신간사지는 노전마을 앞에 있는 간석지로 1960년대 중앙대학교 재단에서 막은 것을 지칭한다. 노천들의 아래쪽은 웅천천과 접하고 있다. 노천들의 남쪽 끝에서 웅천천의 지류인 노천천이 유입되어 노전마을 앞을 지나고, 노전마을과 사천(沙川)마을 사이를 지나서 노천리 좌측에 인접한 구룡리로 빠져나간다.

[현황]

노천들의 핵심 마을은 노전마을이다. 노천들 주변에는 노전 이외에도 동뜸, 중뜸, 서뜸, 큰샘, 앞발, 독자굴, 원논, 물탕 등의 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은 대부분 노천들과 배후 산지 사면 사이의 골이나 경사변환선(傾斜變換線)에 들어서 있으면서 노천들에서 벼농사에 종사한다. 노천리는 본래 옛날 간척 사업을 하기 전에는 논이 없고 하천물도 닿지 않아 일대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마을이다. 1988년 이전에는 대천리에서만 물을 끌어왔으나, 1988년 용못 밑에 양수장을 만들어 가동한 뒤로는 물 걱정이 없어졌다.

노천리에는 예로부터 수리계(水利契)가 있어 보와 도랑[수로]을 관리하였다. 못자리하기 전에 전 부락민이 나와서 대천리의 보부터 손질하고 도랑을 정비하였다. 이때 비용을 계산하여 논의 면적이 많은 사람은 돈을 내고, 논이 적은 사람은 품삯을 받았다. 현재도 수리계가 있어 보를 관리하고 비용을 부과하였다. 옛날에 노전마을에는 나무가 없어 바다를 건너 안산에서 나무를 하였다. 안산은 노전 앞쪽, 즉 대창리 접동굴에 속하는 산이다. 물이 빠져도 1m 정도 되는 바다를 건너다녔다. 모두 장수 황씨(長水 黃氏)의 종중산으로, 나무를 하는 대가로 곡식을 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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