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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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望奎 |
영어공식명칭 | Shin Manggyu |
이칭/별칭 | 문수(文叟),송와(松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41년 - 신망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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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01년 - 신망규 사망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경상도 영덕현]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수청산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평산(平山)[영해(寧海)]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신망규(申望奎)[1641~1701]는 영덕 출신의 처사(處士)로 「송와일고(松窩逸稿)」를 남겼다.
[가계]
신망규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문수(文叟), 호는 송와(松窩)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신이겸(申履謙), 어머니는 선교랑(宣敎郎) 이의주(李宜澍)의 딸 의인(宜仁) 여강이씨(驪江李氏),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신호(申灝), 증조할아버지는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지낸 신경제(申經濟)이며, 부인은 박초(朴濋)의 딸 무안박씨(務安朴氏)이다.
[활동 사항]
신망규는 어린 시절 감영(監營)에서 편을 나누어 문장을 겨룬 적이 있는데, 관찰사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 특이하게 생각하였다. 혼인할 때 운을 불러 주어 칠보시(七步詩)를 지으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이를 통해 문명(文名)을 떨치게 되었다.
향시(鄕試)에는 여러 차례 입격하였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과업을 그만두고 고향집을 ‘송와(松窩)’라고 편액한 뒤 은거하였다. 정랑(正郎) 박호(朴滈)가 천거하려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신망규의 시(詩) 20수와 제문(祭文)·행장(行狀)을 엮은 「송와일고」가 『예주세록(禮州世錄)』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수청산(水靑山)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