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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향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23
한자 楊州鄕校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 1423[유양동 26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운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01년연표보기 - 양주향교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양주향교 임진왜란으로 소실
훼철|철거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양주향교 6·25 전쟁으로 소실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0년연표보기 - 양주향교 재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9월 19일연표보기 - 양주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주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양주향교 복원
현 소재지 양주향교 -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 1423[유양동 266]지도보기
성격 향교
정면 칸수 5칸[명륜당]
측면 칸수 2칸[명륜당]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관립 교육 기관.

[변천]

양주향교(楊州鄕校)는 1401년(태종 1)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다시 세웠다. 이후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다.

[형태]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이 앞에 오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홍전문(紅箭門)[홍살문]이 있는 외삼문(外三門) 좌우로 돌담장을 둘렀다.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외삼문은 14㎝가량의 1단 화강석 물갈기 기단 위에 화강석 주초를 놓고, 원통형 기둥이 문의 하중을 받게 한 후 익공을 짜 올린 초익공식 건축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무출목 초익공 양식이다. 자연석 쌓기를 한 73㎝ 화강석 기단에 방형 화강석 주초석이 겹처마를 한 팔작지붕과 사각기둥을 떠받들고 있으며, 창호는 정면 5칸마다 이분합(二分合)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 형식은 무출목 무익공으로 보아지[기둥과 보가 서로 연결되는 부분을 보강해 주는 건축 부재]가 있다. 내부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벽체는 콘크리트이고 단청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우측 1칸은 개조하여 온돌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널마루를 깔았다.

명륜당 뒤편으로는 내삼문인 솟을삼문이 있다.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마당 좌·우측의 동서 행랑과 정면 기단 위의 대성전에 이른다.

배향 공간인 대성전은 장대석을 고르게 쌓은 5㎝ 기단을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시시리를 한 원형 화강석 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통형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한식 골기와를 얹은 단층 맞배 형식의 겹처마 건물로 단청이 화려하다.

창호는 정면 중앙 칸은 사분합(四分合) 띠살문이며, 양옆 칸의 창호는 이분합 띠살문과 이분합 여닫이 들창을 달고 그 위에 각각 교창(交窓)[분합 위에 가로로 길게 짜서 끼우는 채광창]을 달았다. 건물 전면에 퇴량(退樑)[툇기둥과 안기둥에 얹는 짧은 보]을 두었고, 내부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내부 부재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공은 사다리꼴이며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공포는 무출목(無出目) 초익공(初翼工)이고 살미[공포에서 기둥 위의 도리 사이를 소의 혀 모양으로 꾸민 부재의 짜임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형식은 수설형(垂舌形)이다. 별도의 행공(行工) 첨차(檐遮)는 걸지 않았으며, 보를 지지하는 보아지가 있다.

[현황]

양주향교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고대 중국 오성(五聖)의 위패를 봉안한 지방 문묘로서 유현들의 강론장으로 사용되었다. 대성전에는 중국의 오성인 공자(孔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증자(曾子)·맹자(孟子)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동무 및 서무에는 삼국 시대의 대표적 유현인 신라의 설총(薛聰)[655~?]과 최치원(崔致遠)[857~?]을 비롯하여 고려의 안향(安珦)[1243~1306]·정몽주(鄭夢周)[1337~1392], 조선의 김굉필(金宏弼)[1454~1504]·정여창(鄭汝昌)[1450~1504]·조광조(趙光祖)[1482~1519]·이언적(李彦迪)[1491~1553]·이황(李滉)[1501~1570]·김인후(金麟厚)[1510~1560]·이이(李珥)[1536~1584]·성혼(成渾)[1535~1598]·김장생(金長生)[1548~1631]·조헌(趙憲)[1544~1592]·김집(金集)[1574~1656]·송시열(宋時烈)[1607~1689]·송준길(宋浚吉)[1606~1672]·박세채(朴世采)[1631~1695]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매월 삭망분향(朔望焚香)과 춘추 2·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 의식을 봉행하고, 국가에 일이 있을 때에는 수시로 작헌례(酌獻禮)를 봉행한다. 1949년 전국 유림 대회의 결의로 오성위(五聖位)와 송조(宋朝) 2현위[주자(朱子)·정자(程子)]만을 봉안하고, 그 외 중국의 유현 113위는 매안(埋安)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을 성묘에 승봉종향(承奉從享)하고 춘추석전(春秋釋奠)을 폐하였으며, 공자탄일인 음력 8월 27일에 기념 석전을 봉행하였다. 그러나 3년 후에 다시 석전을 춘추로 환원하여 봉행하는 등 모든 제도를 혁신하고, 윤리 기강 확립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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