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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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淳昌農林中學校襲擊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담순로 1411[장덕리 10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철희 |
[정의]
1951년 전라북도 순창군의 순창 농림 중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가 빨치산의 습격을 받은 사건.
[역사적 배경]
순창 지역은 1950년 10월경 경찰과 국군이 진입하여 일부 지역을 수복하였으나 치안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쌍치면을 비롯한 산간 지역은 미수복 지구로 남아 군경과 빨치산 사이의 교전이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순창 농림 중학교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
[경과]
6·25 전쟁이 교착 상태에 접어들자 국군 제11사단[사단장 최덕신]은 사단 사령부를 남원에 두고, 예하 제20연대는 순창군 일대에서 1950년 11월 6일부터 1951년 3월 30일까지 빨치산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다. 1951년 4월부터는 제8사단에게 호남 지구 토벌 작전을 인계하였다. 군경과 빨치산의 교전이 지속되던 1951년 1월 1일 빨치산이 순창군 순창읍 장덕리 순창 농림 중학교[현 순창 제일 고등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제11사단 제20연대를 습격하였다. 그 후에도 부대가 토벌 작전을 위해 구림면으로 가던 중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같은 해 2월 5일에는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1대대 1중대장이 금과면에 주둔하면서 지서장과 음주를 하던 중 빨치산 부대 ‘독수리 병단’과 ‘기포 병단’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1대대 1중대원]에 따르면, “당시 국군이 토벌 작전을 나간 사실을 알게 된 빨치산이 기습하였는데, 중대장은 감기 때문에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관사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다른 군인[국민 방위군 특별 소대장]은 “이 사건 이튿날 중대 본부 가는 길에 시체가 즐비하였으며 중대에서는 내통자가 있기 때문에 빨치산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사한 결과, 방위군 2명이 그 자리에서 총살되었다.”라고 진술하였다. 이처럼 1951년 1월부터 2월 초 사이 순창 농림 중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은 빨치산의 기습으로 피해가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