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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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總角 |
이칭/별칭 | 「성악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죽곡리|금과면 발산리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12월 - 「성낭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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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성낭 고개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죽곡리와 금과면 발산리 사이 |
성격 | 풍수담|교훈담 |
주요 등장 인물 | 할머니|김 영감|노총각 |
모티프 유형 | 명당을 얻어 흥한 사람|당부를 어겨 망한 사람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죽곡리와 금과면 발산리를 이어 주는 성낭 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성낭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은 노총각이 지관의 도움으로 명당을 얻어 부자가 되고 자식까지 번성했지만, 일곱 아들을 두면 묫자리[거문고혈]를 바로 옮기라는 당부를 어겨 자식도 가산도 잃게 되어 망했다는 풍수담이다. 이를 「성악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48~49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성낭 고개 아래 산촌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매일 떡을 만들어 순창읍에 나가 팔고는 저녁이면 이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루는 떡을 팔고 다음날 떡을 만들 찹쌀과 팥을 사가지고 고갯길을 넘어오는데 고갯마루에 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남녀가 유별이라 모른 척하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사람 살리라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또다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사내는 배가 고파 탈진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집으로 달려가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와 그 사내에게 주었다. 사내는 음식을 먹고는 고맙다는 사례를 하고 떠나려고 하였다. 할머니가 본즉 어디 머물 곳도 없을 것 같아 할머니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다. 사내는 할머니를 따라와 할머니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사내는 매일 밥만 먹으면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면 돌아오곤 하였다. 사실 이 사내는 곡성에서 풍수지리설을 배우고 실제 답사를 하기 위해 순창의 아미산에 왔다가 배가 고파 탈진한 김 영감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을 할머니에게 하지도 않았으며, 할머니도 묻지를 않았다.
할머니 집에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노총각이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 노총각의 신세를 안타까워하였으나 마땅히 도와줄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노총각에게 “이대로 언제까지 노총각으로 늙어 살려 하느냐. 우리 집 영감에게 부탁하여 묫자리를 하나 얻어 사람답게 살 방도를 찾아보라.” 하였다. 할머니는 영감이 지리에 통달한 사람임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총각에게 권하였던 것이다.
노총각은 그 말을 듣고 김 영감에게 매달려 사정을 하였다. 영감은 처음에는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다가 할머니가 말했다는 것을 알고는 할머니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노총각에게 묫자리를 알려 주었다. 영감은 내심 할머니의 장례를 이 노총각에게 부탁할 요량도 하고 있었다. 영감은 노총각에게 묫자리를 정해 주고는 곧 만석 거부가 될 것이고 장가도 들어 일곱 아들을 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반드시 묘를 옮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할머니와 헤어져 떠나 버렸다.
이른 봄날 총각이 할 일이 없어 양지쪽에 누워 있는데 아미산 쪽으로 상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묘를 만들어 놓고 상주들이 다 간 후에 노총각이 그 묘에 가 보니 봉분은 엄청나게 큰데 제사를 지낸 흔적이 없고, 봉분 옆에는 큰 바위가 붙어 있었다. 노총각은 이상하게 여겨 그 바위를 힘으로 밀어 보니 바위 뒤에 굴이 있었다. 바위는 이 굴의 문이었던 것이다. 굴속에 들어가 보니 여러 가지 보화가 가득 차 있었다. 노총각을 그 돈으로 정말 만석 거부가 되었고, 장가를 들어 일곱 아들을 두게 되었다.
총각은 김 영감이 처음에 당부했던 말을 까맣게 잊고 풍족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들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 가기 시작했고, 재산도 차츰 줄어들어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겨우 막내아들 하나가 남게 되었을 때 이를 본 할머니가 빨리 영감님을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곡성 땅을 물어물어 영감님을 찾아가니 영감이 하는 말이 “이제는 너무 늦었다. 내 일곱 아들을 두면 묫자리를 바로 옮기라 하지 않았느냐?” 하였다. 영감님 말은 그 묫자리가 ‘거문고혈’인데, 거문고는 소리를 낸 후 줄을 풀어 놓아야 하는데 줄을 풀지 않아 거문고가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만석 소리를 듣고 일곱 아들까지 두며 풍족하게 지내는 사이 영감님이 당부했던 말을 잊었던 것이다.
[모티프 분석]
「성낭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을 얻어 흥한 사람’, ‘당부를 어겨 망한 사람’ 등이다. 지관의 도움으로 명당을 얻어 부자가 된 이야기는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노총각이 묫자리를 얻어 부자가 된 것은 순전히 마음 착한 떡장수 할머니 덕이었다. 영감이 부자가 되면 묫자리를 반드시 옮겨야 한다는 당부를 노총각에 했던 것은 떡장수 할머니의 도움과 자신의 처음 위치를 잊지 말고 마음에 새기라는 일종의 충고였다. 그러나 노총각은 풍족한 삶에 안주하여 그만 그 당부를 잊고 말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결국 그는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온 것이다. 「성낭 고개 떡장수 할머니와 노총각」은 현재의 삶에 안주하여 어려웠던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일종의 교훈담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