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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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服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현정 김순영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혼례 때 입는 옷.
[개설]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혼례 의식을 치렀거나 현재까지 순창군에 거주하고 있는 대상자들에 대한 민속 조사를 통해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혼례복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사 대상자는 총 다섯 명으로 양상화[남, 83세], 조귀례[여, 82세], 성남진[여, 78세], 제영옥[여, 58세]은 순창군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으며, 양옥남[여, 75세]은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출생하여 순창군으로 시집온 이후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복식 용어는 순창군의 토속어를 먼저 쓰고 괄호 안에 표준어를 넣었다.
[연원]
혼례복의 경우 20세기 중반까지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결혼식에는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고 폐백에는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형태]
혼례복은 전통 혼례복과 현대의 혼례복으로 나눌 수 있다. 신랑의 전통 혼례복은 사모, 관복, 각대, 목화로 구성되며 이를 사모관대라고 불렀다. 관복은 주로 짙은 회색 또는 남색이었다. 신부의 혼례복은 족두리와 원삼으로 구성된다. 신랑 예복은 1990년대 말부터 비즈니스슈트에서 서양식 남자 예복인 연미복과 턱시도 등으로 바뀌었으며,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시대별 유행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착용되고 있다. 폐백에서는 여전히 전통 혼례복인 사모관대와 원삼, 족두리를 착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 지역의 공통된 현상으로 혼례복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 부모의 예복으로는 양측 모두 아버지는 수트를 입고 어머니는 한복을 입는데, 신랑 어머니는 보통 푸른색 계통의 한복을, 신부 어머니는 보통 붉은색 계통의 한복을 입는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통식 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사례로 진행되었다. 이 중 친영은 현대의 결혼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것인데 혼례식은 보통 신부 집 마당에서 행한다. 1949년에 결혼한 양상화·조귀례 부부의 경우, 혼례식은 신부 집 마당에서 하였으며, 신랑은 말을 타고 신랑 아버지는 사행교를 타고 신부 집에 왔다. 혼례식을 한 후 신랑 아버지는 당일 돌아가고, 신랑은 신부 집에서 이틀 자고 3일째 되는 날 신부와 함께 신랑 집으로 갔다. 이를 신행(新行)이라고 한다.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갔으며, 이때 신랑은 사모관대,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를 착용하였다.
신랑 집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식사 후에 신랑과 신부는 신랑의 부모와 가족에게 인사를 드리는 구고례(舅姑禮)[폐백]를 하였다. 구고례의 순서는 제일 먼저 시부모, 조부모, 숙부 등 아버지의 동항[형제들], 신랑의 동항, 마지막으로 신랑의 조카들 순으로 하였다. 역시 신랑은 사모관대를,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를 착용하였다.
현대의 결혼은 남녀의 결혼 합의 후 양쪽 부모님의 승낙을 얻어 하게 된다. 결혼식은 보통 예식장에서 하며, 주례의 입회 아래 진행되는 결혼 예식과 신랑의 부모에게 인사하는 폐백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양복이 들어오면서 결혼식에서 신랑은 서양식 예복을,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었지만 서양식 예식 후에 다시 집에 와서 전통 혼례복을 입고 전통 혼례 의식을 치르거나 혹은 폐백 의식만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예식이 집이 아닌 예식장에서 이루어지지만, 서양식 예복으로 예식을 하고 전통 혼례복으로 폐백을 올리는 예복 체계는 현대까지 계속되고 있다.
순창군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 혼례복으로 전통 복식을 착용하였다. 혼례복은 신부의 집에서 만들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련해 두고 빌려 입었다. 1949년에 결혼한 양상화는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부 집에 갈 때 바지, 저고리,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은 후 사모관대를 착용하였다. 관복은 짙은 회색이었으며 흉배가 달렸다. 1956년에 결혼한 성남진과 1960년에 결혼한 양옥남의 경우, 신랑은 역시 바지, 저고리,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은 후 사모관대를 착용하였으며, 관복은 남색이었다. 가을에 결혼한 양옥남의 경우, 신랑이 사모 안에 복건을 착용하였는데 당시 날씨가 추울 때는 이와 같이 하였다.
1949년에 결혼한 조귀례는 남색 치마와 깃·고름·끝동에 홍색 회장이 달린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후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하였다. 원삼은 초록색 길에 소매에는 색동이 달리고, 끝 부분에 흰색 한삼이 달려 있었다. 원삼 및 신부 옷은 모두 친정어머니와 손위 올케들이 집에서 짠 명주로 만들어 주었다. 속옷으로 저고리 아래에는 광목 적삼을, 치마 아래에는 흰색 속치마, 밑이 막힌 단바지[단속곳], 뒤쪽만 트인 고쟁이, 다리속곳 순으로 착용하였다. 1956년에 결혼한 성남진과 양옥남 역시 치마와 저고리 위에 초록색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하였다.
한편 조귀례는 본인의 원삼은 초록색이었으나 어릴 적 청색 원삼을 입고 혼례를 올리는 신부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혼례복으로 착용하는 원삼은 대부분 녹색이지만 전라북도의 경우 녹색과 함께 청색 원삼도 착용되었다. 전라북도 여러 지역에서 착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 청색 원삼은 녹색 원삼과 색만 다를 뿐 일반 서민용 혼례 원삼의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에 결혼한 양상화와 조귀례의 장남 결혼식에서 신랑은 검정색 비즈니스슈트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신부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며, 폐백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전통 혼례복을 착용하였다. 1981년에 결혼한 제영옥의 경우에도 신랑은 검정색 비즈니스슈트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신부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폐백에서는 신랑은 남색 관복을, 신부는 꽃분홍색 치마에 노란색 색동저고리를 입은 후 홍색 원삼을 입었다.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 부모의 예복으로는 양측 모두 아버지는 슈트를 입고 어머니는 한복을 입는다. 양상화·조귀례 부부의 경우 아들 결혼식 때 아버지는 검정색 슈트를, 어머니는 진한 초록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으며, 딸 결혼식 때 아버지는 검정색 슈트를, 어머니는 아이보리색 저고리에 자주색 치마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