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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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창리 은안티 백자요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형순 |
소재지 |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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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백자 가마터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위치]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원은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사면 하단부가 바다와 닿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현재는 사면 하단부에 넓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는 서산시 부석면 창리의 북쪽 마룡리와 인접한 지역의 서사면 일대에서 확인되는데, 서쪽으로는 용못간사지들이 전개되어 있다. ‘창리’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 시대 주사창(舟師倉)이 설치되었던 곳에서 기원한 것으로, 조선 후기 창리 일대가 수군(水軍)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음을 알게 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현황]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에 대하여 정식 발굴 조사가 진행된 바 없어 구체적인 유적 현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지표 조사와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 일대에 민가가 조성되고 밭이 경작되는 과정에서 다량의 백자편과 가마 벽체편, 요도구 등이 지표에 노출되었다.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창리 가마터 1·2, 2개소의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유적의 분포 상태 및 지형 등을 고려할 때 기존의 창리 가마터 1·2를 중심으로 주변에 가마터와 가마 부속 건물 및 관련 유적들이 폭넓게 존재할 것으로 판단된다.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접시, 대접, 종지 등의 일상생활 용기가 주종을 이루며, 굵은 모래비짐을 활용해 포개구이 한 조질의 백자들로서, 민수용의 백자를 대량으로 생산하였던 곳으로 여겨진다. 내저면에 원각이 뚜렷하게 조성되어 있고, 굽 안 바닥을 거칠게 돌려 깎은 특징을 보이며, 거친 모래비짐으로 포개구이 하는 등의 제작 양상으로 보아 17세기 이후에 조업이 이루어진 가마로 추정된다. 한편,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로부터 북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는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가 위치하는데, 두 가마의 생산품을 비교해 볼 때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서 칠전리로 가마가 옮겨 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창리 은안티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 서산 및 태안반도 일대의 백자를 공급하였던 가마터로,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와 함께 조선 후기 서산 지역 일반 사람들의 생활 용기 제작 양상 및 유통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