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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생계거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9004
지역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노현

소년 구보의 어머니는 혼자 몸이었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 짓는 공사장의 잡부가 되었다. 다행히 집짓는 일거리가 끊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번 돈을 조금씩 떼어 벽돌을 사다 날랐다. 그리고 저 아래쪽 개천의 모래를 퍼다 날랐다. 어머니도 형도 누나도 그리고 소년도 틈만 나면 개천의 모래를 세숫대야로 퍼다 날랐다. 그리고 시멘트를 사다가 조그만 집을 지었다. 집이랄 것도 없었다. 처음엔 방 1칸이었다. 그리고 한 1년 2년 지나 그 옆에다가 방을 하나 이어냈다. 그리고 5년 정도 지나서는 그 요상한 집을 헐고, 정식으로 집을 지었다. 방 2개에 부엌이 하나씩 딸려있는 그런 집이었다. 소년 구보는 유독 집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다른 기억은 없어도 집에 대한 기억은 정확했다.

집 주변에는 아직 노는 땅들이 많았다. 아직 집들이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거기다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조도 심고 호박도 심고 고구마나 감자도 심었다. 어머니는 새벽이나 저녁 늦게는 밭을 갈았고, 낮에는 나가서 일을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녀 넷을 키워냈다. 그래도 집안은 늘 가난했다. 그래서 소년 구보의 누나와 형은 일찍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누나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그만두시고, 형은 그때 좀 어느 정도 똑똑해 가지고 중학교까지 다니고 고등학교까지 다녔었는데, 그 고등학교가 국가에서 인가나지 아니한 고등학교를 다녀서 거기 졸업해 봤자 인가가 안 났으니까 말하자면 인제 자격증이 없는 것처럼 됐었는데, 그래서 우리 형이 그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검정고시를 해가지고 다시 따야 되겠다 해가지고 검정고시를 중학교, 고등학교를 땄어요. 그러고 누나는 생활도 어렵고 그러니까 서울 동대문 미싱사로다가 10년 15년 계속적으로 다니면서 엄마 도와서 이렇게 하고”

소년 구보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스스로도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공부 좀 잘하고 똑똑했으면 고등학교까지는 갔을 것이다. 소년 구보는 첫 직장을 상대원1동 쪽으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상대원공단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로 서울 쪽에도 가서 일하고 광주 쪽에 가서도 일했다. 주방에서 그릇 닦기도 했고 중국집에서 배달도 했다. 그렇게 소년네 식구들은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는 방을 늘려 세를 놓았다.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어머님이 그렇게 해서 가정을 꾸려 나가시고 그러다가 방을 이제 하나 둘 세 개, 세 개 있는 집을 지면서 방 세 개니까 하나를 또 세를 놓으시더라구요. 그 당시에 내가 열 네 다섯 살 때 그 무렵 쯤 된 거 같애요. 방을 세놓고 세 받아가지고 꾸려나가시고 이렇게 하다가 집을 한번 또 다시 진 거 같애요. 여유가 또 생기고 그러니까 집을 그 당시에 하나 둘 방 세 개에 부엌 두개 정도 되는 그러고 방 하나 세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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