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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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祠宇 |
영어공식명칭 | Sau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근대 |
집필자 | 최장순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 있는 사우.
[개설]
사우(祠宇)는 선조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한 해에 수차례 제향을 행하는 사당을 말한다. 강원도 삼척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사우는 다음과 같다.
소동사(召東祠)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 1길에 있다. 1824년(순조 24)에 홍면섭(洪勉燮), 이우석(李禹錫)을 비롯한 사림이 익성공황희(黃喜)[1363~1452]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산양서원(山陽書院)으로 발전하였다.
정양재(正養齋)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도촌에 있었으며, 명종 때 효자 최연(崔連)이 세워 후생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 후 영조 때 해운(海雲)홍계하(洪啓夏)[1714~1784]가 해운정(海雲亭)으로 이건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부사 이광도(李廣度)가 중수하고 홍진국(洪鎭國)이 중수기를 지었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모현사(慕賢祠)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 심방골에 있었다. 1822년(순조 22) 최종원(崔鍾遠)과 정이간(鄭履侃) 등이 창건하였다. 정양재(正養齋)를 창건한 효자 최연과 부사 홍견(洪堅), 처사 홍계하 등 삼현(三賢)을 모셔 제향하고 후생을 양성하던 곳이다. 처음에는 맹방리 후촌에 건립되었다가 1851년(철종 2)에 상맹방리 심방골로 이건하였다. 홍면섭이 양송(梁頌), 현감 유한지(兪漢芝)가 편액을 썼다. 부사 이헌규(李憲圭)가 봉안문(奉安文)을 지었다. 1868년(고종 5)에 있은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지되고 학전(學田)은 삼척향교로 귀속되었다.
치엄당(致嚴堂)
삼척시 맹방리 구산에 있다. 교수 홍준(洪濬)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1808년(순조 8) 부사 홍경두(洪景斗)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고, 1846년(헌종 12) 후손 홍진국(洪鎭國)과 홍진민(洪鎭民)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치엄당(致嚴堂)’은 솟을대문과 묘당, 그 양쪽에 동재와 서재를 갖추고 있다. 전면에는 ‘남양홍씨세천비(南陽洪氏世阡碑)’가 건립되어 있다. 솟을대문의 전면에는 ‘구산문(龜山門)’, 후면에는 ‘남양홍씨재사(南陽洪氏齋舍)’ 제액이 각각 게판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에는 각각 ‘인청재(寅淸齋)’와 ‘담숙당(湛肅堂)’ 제액이 게판되어 있다. 선조 6위의 위패를 모신 전면 3칸 규모의 묘당 전면에는 ‘치엄당(致嚴堂)’ 제액이 게판되어 있다.
도원재(桃源齋)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에 있다. 장사랑(將仕郎) 홍달신(洪達臣)의 부인 김씨(金氏)와 아들 연복(衍福)을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다. 1808년(순조 8)에 부사 홍경두(洪景斗)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였다.
삼척시 당저동에 있다. 1840년(헌종 6)에 김학조(金學祚)와 김흥일(金興一) 등이 실직군왕(悉直郡王)김위옹(金渭翁)을 위하여 건립한 사당으로,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사를 올린다. 수차례에 걸쳐 많은 중축을 하였으며, 삼척 김씨 시조의 재사이다. 단(壇) 밑에는 1847년(헌종 13) 봄에 건립된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가포재(佳苞齋)
삼척시 근덕면 교곡리에 있다. 1802년(순조 2)에 감찰을 지낸 김자현(金子鉉)의 부인 오씨(吳氏)를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1808년(순조 8)에 중수하였으며, 후손 김응조(金膺祚)가 지은 당시의 중수기가 있다. 1855년(철종 6) 봄에 옛터의 서쪽으로 이건하였으며, 후손 김구혁(金九爀)이 지은 당시의 중수기가 있다. 1924년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김연우(金演禹)의 기문(記文)이 있다.
모선재(慕先齋)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도창촌에 있는 재실이다. 1874년(고종 11)에 현령(縣令)을 지낸 박세검(朴世儉)을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진사 홍병석(洪秉奭)의 시가 있고, 후손 박달호(朴達浩)의 기문이 있다. 건물이 노후해서 1993년에 밀양 박씨 문중에서 중건하였다.
감모당(感慕堂)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봉기동(鳳基洞)에 있는 재실이다. 1875년(고종 12)에 계성군(鷄城君)김임건(金任建)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이조참판(吏曹參判) 남정익(南廷益)의 기문(記文)과 부사(府使) 심영경(沈英慶)의 시가 있다.
백련재(白蓮齋)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백련동에 있는 재실이다. 1879년(고종 16) 4월 15일에 중랑장(中郎將) 김광유(金光裕)를 위하여 건립되었다. 후손 김조영(金祚榮)의 제액이 있다.
영모재(永慕齋)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창박곡(昌朴谷)에 있는 재실이다. 1901년(고종 38) 병조판서 박걸남(朴杰男) 장군을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다. 묘소 바로 아래쪽에 있으며, 후손 박동식(朴東植)의 기문(記文)이 있다.
엄경재(嚴敬齋)
삼척시 근덕면 상맹방리 심방골[심방곡(尋芳谷)]에 있는 재실이다. 대사간(大司諫) 최수(崔修)를 위하여 1804년(순조 4) 봄에 건립되었다.
숙모재(肅慕齋)
삼척시 미로면 상정리 재궁동(齋宮洞)에 있던 재실이다. 진사 박순(朴淳)을 위하여 1924년에 건립된 사당이다. 1952년 후손 박동대(朴東大), 박인영(朴仁榮), 박인식(朴仁植), 박태희(朴泰熙) 등이 현 위치에 다시 창건하였다. 밀양 박씨 휴천공(休川公)파의 입삼척(入三陟) 시조를 위한 재사이다. 최중희(崔中熙)의 제액이 있다.
영원재(永遠齋)
삼척시 갈천동 청고재[청고치(聽鼓峙)] 밑에 있는 재실이다. 진사 김세민(金世敏)을 위하여 1941년에 건립되었다. 후손 김연선(金演善)이 양송(梁頌)하고 정인보(鄭寅普)의 기문(記文)과 최중희(崔中熙)의 제액이 있다. 김세민의 묘소와 얽힌 청고재의 전설이 있다.
무릉재(武陵齋)
삼척시 근덕면 무릉동에 있는 재실이다. 1942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김홍보(金弘寶)를 위하여 건립되었다.
첨사재(瞻思齋)
삼척시 근덕면 부남리에 있는 재실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윤방(金允昉)을 위하여 1943년에 건립되었다.
선흥재(善興齋)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재실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자기(金子琦)를 위하여 1944년 10월에 건립되었다.
보본재(報本齋)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성지골(聖池谷)에 있는 재실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박운손(朴雲遜)을 위하여 1948년 3월에 건립되었다. 후손 박형진(朴衡鎭)의 실기(實記), 최만희(崔晩熙)의 기문(記文), 최중희(崔中熙)의 제액이 있다.
성경재(誠敬齋)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다리목(橋項)에 있는 재실이다. 참봉(參奉) 김은철(金殷哲)을 위하여 1956년 10월에 건립되었다. 후손 김연찬(金演贊)이 기문(記文)을 짓고 김영경(金英卿)이 제액하였다.
기산재(杞山齋)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杞谷里)에 있는 재실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응룡(金應龍)을 위하여 1947년에 건립하였다.
구산사(龜山祠)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재실이다. 솟을삼문과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 전면에는 ‘구산사(龜山祠)’ 제액이 게판되어 있으며, 묘정에는 ‘척주구산사정비(陟州龜山祠庭碑)’가 세워져있다. 비 연혁은 ‘안동김윤동 찬(安東金潤東 撰)’하고 ‘은진송재성 서(恩津宋在晟 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