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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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倭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개설]
임진왜란 당시 포천 지역은 왜군이 북으로 진격하는 경로에 있어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 결과로 한때 포천은 영평에 소속되기도 하였다. 한편 임진왜란 기간 중 포천 지역과 관련된 인물인 이항복(李恒福), 권종(權悰), 이성길(李成吉) 등은 전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일을 하였다.
[역사적 배경]
1592년 4월 13일 부산으로 상륙한 왜군은 5월 3일 도성을 함락한 뒤 담당 지역을 나누어 북상하였다. 이 중 함경도를 맡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군대가 금천(金川)~이천(伊川)~곡산(谷山)을 경유해서 함경도로 들어갔다. 또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가 지휘하는 부대가 가토 기요마사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김화(金化)와 금성(金城)을 거쳐 회양(淮陽)으로 북진하였다. 이런 중 포천은 이들이 함경도로 가는 진격로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경과]
포천은 서울 이북에서 함경도로 통하는 중요 교통로에 위치한 관계로, 함경도 일대로 진출하는 왜군의 주요 통과 지역이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1593년(선조 26) 1월경 포천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인근의 김화나 철원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와 연락하며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화나 금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 부대의 일부가 한성의 동대문까지 진출하여 진을 치고는 여성 15명을 사로잡았는데, 이들을 포천현 앞길에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한편 포천과 관련된 인물의 활동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항복은 선조를 의주로 호종(扈從)하고 근왕병 모집에 힘쓰는 한편, 명나라의 원군을 맞이하는 원접사로 활동하였으며 임진왜란 기간 중 병조 판서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권종은 전쟁이 일어난 던 해 금산 군수로 부임하여 병졸 수백 명을 모집하여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에게 지원을 요청한 뒤 대거 내습해 온 적과 격전 끝에 순국하였다.
이성길은 경성(鏡城)에서 정문부(鄭文孚)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길주성·명천·쌍포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고, 그 공으로 수성도 찰방에 임명되었다. 황정욱(黃廷彧)은 호소사(號召使)로 왕자 순화군(順和君)을 배종하여 강원도에 들어가 의병을 소집하는 격문을 8도에 돌렸으며, 회령에서 모반자 국경인(鞠景仁)에 의해 임해군(臨海君)·순화군 두 왕자와 함께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이듬해 부산에서 석방되어 돌아왔다.
[결과]
임진왜란 당시 포천 지역은 많은 피해를 보게 되면서 고을의 백성이 모두 흩어지고 관청 건물뿐 아니고 민간 건물까지 거의 대부분 불타 버렸다. 이렇게 되면서 고을을 유지하기가 힘들게 되자 1593년 9월에 포천을 영평으로 옮겨 소속시켰다가, 1594년(선조 27) 다시 환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