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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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姓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기중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해오던 성씨.
[개설]
한국에서 성씨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나 실제로 성씨 체계과 확립된 것은 고려 왕건 때부터이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이후 통치 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전국의 군과 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토성(土姓)을 분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각 군현에 각기 출신지와 거주지 토성이 성립되면서 한국의 성씨 체계가 확립되었다.
한편 한국의 성씨가 본래 중국에서 유입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한국의 성씨는 성과 이름에서 가문과 세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성씨와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성과 본관은 곧 개인의 가문을 나타냈고, 이름은 그 가문의 세대를 알려 주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성되었다. 이때 본관은 본래 성씨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성만으로는 가족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도입된 것으로 처음에는 시조의 발상지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점차 본관 내에서도 여러 계파가 형성되고 분관(分貫), 분적(分籍)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직계 현조(顯祖)의 관작 명칭 또는 후손의 일부가 새로 이주한 곳 등을 본관지로 삼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니는 성씨는 대체로 16세기까지 양반층만이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일반 양민부터 천민층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씨를 취득하게 되었다.
[남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경기도 남양주시는 조선 전기까지 경기도 양주군의 속현인 풍양현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풍양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진접읍·오남읍 일대를 일컫는다. 풍양현은 중종대 이후 폐지되어 경기도 양주군의 직할지로 변경되었다. 이에 본래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세거하였던 토성(土姓)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경기도 남양주시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당시에는 경기도 양주군의 속현이었던 ‘풍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일부 존재한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풍양현의 토성은 조(趙)이고, 망성(亡姓)은 이(李)·강(姜)·윤(尹)·유(劉)이다. 토성인 풍양 조씨는 고려의 개국 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둔 성씨이다. 조선 후기 세도 가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조현명·조인영 등 영의정 2명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남양주의 성씨와 본관]
경기도 남양주시 내 성씨와 본관은 다음과 같다.
김씨(金氏)[김해, 경주, 광산, 안동, 강릉], 이씨(李氏)[전주, 경주, 광주, 연안, 함평], 박씨(朴氏)[밀양, 반남, 순천, 무안, 함양], 최씨(崔氏)[경주, 해주, 전주, 강릉, 수원], 조씨(趙氏)[한양, 배천, 풍양, 함안, 양주], 정씨(鄭氏)[경주, 연일, 하동, 동래, 초계], 윤씨(尹氏)[파평, 남원, 해평, 칠원, 해남], 장씨(張氏)[인동, 안동, 결성, 단양, 흥덕], 강씨(姜氏)[진주, 전주, 금천, 대전], 한씨(韓氏)[청주, 곡산, 경주, 충주], 신씨(申氏)[평산, 고령, 영월, 아주, 파평, 경산], 안씨(安氏)[순흥, 죽산, 광주, 탐진, 태원], 오씨(吳氏)[해주, 동복, 보성, 고창, 나주], 홍씨(洪氏)[남양, 풍산, 남영, 남해], 서씨(徐氏)[달성, 이천, 대구, 남양, 부여], 임씨(林氏)[나주, 평택, 예천, 부안, 풍천, 경주], 류씨(柳氏)[문화, 진주, 고흥, 전주, 서산], 황씨(黃氏)[평해, 창원, 장수, 상주, 덕산], 송씨(宋氏)[여산, 은진, 예산, 진천, 김해], 권씨(權氏)[안동, 예천, 경주], 전씨(全氏)[정선, 천안, 옥천, 나주, 경주], 고씨(高氏)[제주, 장흥, 개성, 횡성], 손씨(孫氏)[밀양, 경주, 평해, 안동], 유씨(兪氏)[기계, 무안, 강진], 백씨(白氏)[수원, 남포, 대흥, 태인, 임천], 문씨(文氏)[남평, 감천, 정선, 함평], 양씨(梁氏)[남원, 제주, 남양], 원씨(元氏)[원주], 조씨(曺氏)[창령, 청양], 허씨(許氏)[양천, 김해, 하양], 남씨(南氏)[의령, 고성, 영양], 우씨(禹氏)[단양], 배씨(裵氏)[경주, 성주, 김해, 달성, 흥해], 구씨(具氏)[능성, 창원, 능주], 노씨(盧氏)[교하, 광주, 광산], 지씨(池氏)[충주, 청주], 임씨(任氏)[풍천, 장흥, 곡성], 함씨(咸氏)[강릉, 양근], 주씨(朱氏)[신안, 능성, 경주], 차씨(車氏)[연안, 문화], 민씨(閔氏)[여흥, 여주], 엄씨(嚴氏)[영월], 전씨(田氏)[담양, 단양, 남양], 정씨(丁氏)[나주, 압해, 영광, 창원], 현씨(玄氏)[연주, 성주, 창원], 성씨(成氏)[창령, 강릉, 전주], 곽씨(郭氏)[현풍, 청주, 선산], 하씨(河氏)[진주, 진양, 전주], 방씨(方氏)[온양, 남원], 양씨(楊氏)[남원, 청주], 진씨(陳氏)[여양, 영양, 강릉], 나씨(羅氏)[나주, 금성, 안정], 신씨(辛氏)[영월, 영주, 영산], 유씨(劉氏)[강릉, 배천, 풍천, 거창], 염씨(廉氏)[파주, 용담], 천씨(千氏)[영양, 예양, 언양], 심씨(沈氏)[청송, 풍산, 삼척], 변씨(邊氏)[원주, 황주, 장연], 공씨(孔氏)[곡부], 채씨(蔡氏)[평강, 인천, 경주], 여씨(呂氏)[함양, 성주], 강씨(康氏)[신천, 곡산, 평양, 파주], 추씨(秋氏)[전주, 추계, 밀성], 길씨(吉氏)[해평, 선산, 성산], 노씨(魯氏)[광주, 함평, 강화], 변씨(卞氏)[초계, 밀양, 원주], 표씨(表氏)[신창], 석씨(石氏)[충주, 해주, 경주], 위씨(魏氏)[장흥, 광산], 연씨(延氏)[곡산], 신씨(愼氏)[거창], 왕씨(王氏)[개성], 마씨(馬氏)[장흥, 목천, 의성], 설씨(薛氏)[순창, 경주, 목천], 도씨(都氏)[성주, 전주], 주씨(周氏)[상주, 철원, 초계], 소씨(蘇氏)[진주], 명씨(明氏)[서촉, 연안], 반씨(潘氏)[거제, 광주, 결성], 선씨(宣氏)[보성], 기씨(奇氏)[행주], 금씨(琴氏)[봉화], 방씨(房氏)[남양], 옥씨(玉氏)[의령].
[남양주의 집성촌]
조선 시대의 각 지역에는 여러 성씨가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 특히 종법 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던 조선 초에는 사위가 처가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아, 여러 성씨가 함께 모여 사는 이성잡거(異姓雜居) 형태의 마을이 다수를 이루어졌다. 다만 마을 내 여러 성씨 중에서 주도권을 가졌던 특정 성씨가 존재하였고, 주도 성씨의 후손이 다수로 거주하였다. 이러한 주도적인 성씨가 다수를 이루며, 다른 성씨도 함께 거주하는 촌락 형태를 ‘집성촌’이라 일컫는다.
기존의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성촌의 형태는 17세기, 동족 집단의 질서가 강조되는 종법이 확립되면서 점차 같은 성씨의 동족만으로 마을을 이루는 동성 촌락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동성 촌락의 형태가 전국적으로, 특히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서도 일반적인 모습이었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은 서울특별시와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양반들은 지방의 향촌 주도권에 주목하기보다는 중앙의 정치 상황과 정치 권력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렇기에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여러 성씨들이 성쇠를 거듭하였다. 결국 지방에 오랫동안 세거하여 향촌 권력을 주도하였던 삼남 지역의 경우 동성 촌락이 형성되기에 유리하였던 반면, 그와는 다른 상황이었던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는 동성 촌락이 형성될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는 동성 촌락의 형태 대신 주도 성씨와 그외 다양한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 형태의 마을이 주로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라 집계된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의 집성촌을 조사 당시의 행정 구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별내면: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청학리[의령 남씨, 전주 이씨, 경주 정씨],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용암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광전리[광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덕송리[죽산 안씨],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화접리[밀양 박씨]
2. 진접면: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장현리[전주 이씨, 해주 최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내각리[전주 이씨, 밀양 박씨, 연주 현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해주 최씨, 원주 원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팔야리[파평 윤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진벌리[전주 김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금곡리[연안 이씨, 우계 이씨, 진주 류씨],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수산리[강릉 김씨]
3. 진건면: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사능리[강릉 최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배양리[전주 이씨, 해주 오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진관리[김해 김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신월리[전주 이씨, 함평 이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용정리[청해 이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양지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팔현리[남양 홍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오남리[평해 황씨],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송능리[경주 이씨, 남양 홍씨]
4. 화도면: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리[평산 신씨],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가곡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지둔리[원주 원씨],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녹촌리[파평 윤씨],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차산리[기계 유씨]
5. 와부면: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도곡리[순천 박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 재령 이씨],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율곡리[청주 한씨],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진중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경주 김씨, 광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삼봉리[광주 이씨]
6. 미금면: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호평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평내리[전주 이씨],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해주 오씨],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일패리[고령 신씨],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가운리[인동 장씨].
한편 1970년대 산업화 시기 이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 집성촌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산업화·도시화가 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형태의 마을이 해체되고, 도시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는 1990년대 이후에도 집성촌이 존재하였는데, 현존하는 집성촌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1리[순천 박씨],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4리[재령 이씨],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광주 이씨],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1리[전주 이씨],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기계 유씨],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팔현리[남양 홍씨],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의령 남씨],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함양 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