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30025 |
---|---|
한자 | 晉州梧坊齋所藏浩亭集冊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로 765-82[오방리 46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윤수 |
제작 시기/일시 | 1847년 3월 - 진주 오방재 소장 호정집 책판 제작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2월 3일 - 진주 오방재 소장 호정집 책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오방재 소장 호정집 책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장처 | 진주 오방재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로 765-82[오방리 469] |
성격 | 책판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45㎝[가로]|30㎝[세로]|약 2㎝[두께] |
소유자 | 진양 하씨 대종회 |
관리자 | 진양 하씨 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오방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하륜의 시문집 책판.
[개설]
하륜(河崙)의 후손인 용와(容窩) 하진현(河晉賢)이 찬술한 『호정집(浩亭集)』 발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아아, 후손이 없고 병란을 여러 차례 겪어서 남기신 문집이 흩어져 전해지지 않는다. 족인 하진달(河鎭達)이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널리 찾아다녀서 비로소 초고를 만들었다. 또 족인 하속(河涑)이 빠진 부분을 채집하여 겨우 책자를 완성하였다.” 책의 말미에는 “정미년(1847) 3월에 오방재에서 간행하다”라는 간기가 남아 있다.
발문과 간기를 종합해 보면 하진달에 의해 하륜의 유문이 일차로 수집되어 초고가 이루어졌고, 그 뒤에 빠진 부분이 보충되어 『호정집』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847년 하륜 묘 아래 재숙처인 진주 오방재에서 간행하였다. 진주 오방재 소장 호정집 책판은 2009년 12월 3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진양 하씨 대종회에서 소유하여 관리한다.
[형태]
책판의 분량은 46매 86장이며, 마구리를 포함한 전체 크기는 가로 45㎝, 세로 30㎝이다. 광곽은 크기 가로 31㎝, 세로 21.5㎝이며 목판은 두께 약 2㎝이다. 이 중 6매 12장이 결락되어 있다.
[특징]
『호정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은 시(詩), 권2는 소(疏)·차(箚)·계사(啓辭)·설(說)·서(序)·기(記), 권3은 잡저·찬(贊)·제문·묘지명, 권4·5는 부록으로 교서(敎書)·사제문(賜祭文)·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시는 새 왕조의 창건과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것을 찬양하고 왕조의 번창을 기원하며 형승(形勝) 및 한강의 위용을 노래하였다. 소는 대부분 조선 건국 초 민생 안정과 결부된 내용들로, 태종에게 태조 상중에 소복을 입고 조정에 나와서 매일 정사를 돌봐야 한다고 한 것과 노비 변정(奴婢辨正), 인재 발탁 등에 대한 기록이다.
[의의와 평가]
『호정집』 가운데 「응지논 노비 양천소(應旨論奴婢良賤疏)」에서 주장한 노비 변정에 관한 내용은 조선 초 신분 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