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30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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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震英遺品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인물/문무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제광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5월 2일 - 박진영 유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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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박진영 유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박진영 유품(1) 국립 진주 박물관에 기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9월 - 박진영 유품(3) 국립 진주 박물관에 기증 |
현 소장처 |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
원소재지 | 박성길 종택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88 |
성격 | 유품 |
재질 | 나무|종이 |
소유자 | 국립 진주 박물관 |
관리자 | 국립 진주 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박진영의 유품.
[개설]
박진영 장군 유품 은 조선 후기 무신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 남긴 유품들로,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의 밀양 박씨(密陽朴氏) 영동 정공파(令同正公派) 종손인 박성길(朴性吉)이 소장하고 있다가 2005년 후반부터 2006년 9월 9일까지 3회에 걸쳐 진주 국립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박진영은 증형조 판서 박오(朴旿)의 아들로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특히 활쏘기와 말 타기에 능하여 선조(宣祖)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워 전과를 올렸다. 이후 군자감 참봉에 이어 첨정이 되었다가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그 공을 인정받아 선무 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1599년(선조 32) 용궁 현감에 제수되었고, 1613년(광해군 5) 경흥 부사에 임명되어 북방의 방어에 주력하여 절충장군에 올랐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종군하여 신경원(辛景瑗)과 힘을 합하여 동교에서 격파하였다. 이어 평산 부사와 해서 방어사(海西防禦使)를 겸임하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병자호란 때 굴욕적으로 항복한 것을 비분강개하다 1641년(인조 19)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호는 광서(匡西),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후손이 지은 『광서 실기(匡西實記)』가 전한다.
[형태]
박진영이 평소 사용하던 유품과 명나라 제독에게 받은 장려 패문(奬勵牌文)을 비롯하여 교지(敎旨)·분재기(分財記)·토지 문서·노비 문서·호구 단자(戶口單子)·송사 문서·입안 문서·간찰(簡札) 등 모두 231점이다.
[의의와 평가]
231점의 유품 중에 각종 고문서가 들어 있어 조선 후기 사회 경제사 및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