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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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憕 |
영어음역 | Ha Jeung |
이칭/별칭 | 자평(子平),창주(滄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덕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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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위보(河魏寶)[생부]|하국보(河國寶)[양부] |
어머니 | 생모 이윤(李綸)의 딸|양모 진주강씨 |
아우 | 하변(河忭) |
출신지 | 진주 내당리(晋州 內塘里) |
성별 | 남 |
생년 | 1563년 |
몰년 | 1624년 |
본관 | 진주(晋州) |
자 | 자평(子平) |
호 | 창주(滄州) |
제향 | 임천서원(臨川書院)[경상남도 진주시] |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창주(滄州)이다. 진주 내당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균생원인 하위보(河魏寶)이고 어머니는 참의 이윤(李綸)의 딸이다. 숙부 하국보(河國寶)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기질이 순후하고 지조가 독실하여 자기를 다스리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으며 독서에 충실하여 어려운 곳은 반드시 질의와 논란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양모(養母)인 강씨가 절개를 지켜 죽었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하증 자신이 왜군에게 사로잡혀 끌려갔으나 21년 만에 절개를 온전히 지키고 돌아왔다. 당시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등 여러 현인들이 그를 중국 한나라 소무(蘇武)에 견주어 칭송하였다. 또한 조카 하지상이 6세의 나이로 적진 중에 끌려가자 힘써 구해냈으며, 아우 하변(河忭)이 적진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부산을 세 번이나 왕복하면서 구해냈다. 그때 일이 항상 응어리져서 평생토록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앉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저술]
저서로는 『계몽황극서(啓蒙皇極書)』와 『창주집(滄州集)』3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뒤에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경상남도 진주의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 에 이름이 올랐다.